논평_
「'이영훈 교수의 MBC100분토론 일본군 위안부 발언' 관련 신문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9.7)
조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가
..............................................................................................................................................
지난 9월 2일 '과거사 진상규명 논란'을 다룬 <MBC 100분토론>에서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발언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이 교수는 "한국전쟁때 위안소가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떳떳한 합법적인, 정책적인 지원 하에서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들을 위한 위안부가 수십만명 있었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국가 차원의 과거사 규명이 아닌 개인 차원의 성찰적 고백이 있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 이어 이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했다고 누가 주장하나", "그건 '정신대 보고서'를 안 읽어보고 하는 말"이라며 "하나의 범죄행위가 이뤄지는 것은 권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후 이 교수는 자신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자 해명서를 내고 자신은 '상업적 공창'이라는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이는 일부 언론의 잘못된 보도라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발언 취지는 '정신대 문제에 한국인이 개입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우리의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다며 변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교수의 발언은 '상업적 공창'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이를 인정하는 발언이라고 본다. 한군전쟁 당시 위안소나 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한 것은 일제시대 일본정부와 군의 대대적인 '강제동원'으로 빚어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물타기' 한 것이다. 또한 백번 양보해 '한국인 개입에 대한 자기반성'의 취지였다 해도 이 역시 국가적 차원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희석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이영훈 교수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문제가 됐던 발언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등 이 교수 발언을 '과거사 청산' 작업을 물타기하는데 이용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조선일보는 이 교수의 발언을 직접적으로 두둔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다만 일부 보도 내용에서 이 교수의 주장을 보완해주거나, 그의 해명을 적극적으로 실었으며, 크게 문제가 되는 발언은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이교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조선일보는 6일 5면 <여, 이교수 파면 요구키로>에서 이 의원의 주장 가운데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했다고 누가 주장하나", "그건 '정신대 보고서'를 안 읽어보고 하는 말"이라고 직접적으로 문제가 된 부분은 기사화하지 않았다. 대신 "일부 위안소는 한국인이 운용했고, 한국 징용군도 이용했다는 연구가 있다", "한국인 중에 이런 사실을 고백한 사람은 없다"는 등 '한국의 자기반성'과 관련된 발언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이어 <이교수 "공창 발언한 적 없다">에서는 이 교수의 해명성 주장을 보도했다. 특히 조선은 기사 말미에 "이영훈 교수는 구체적인 통계수치를 바탕으로 일제 식민지 시대를 연구하고 있다"는 설명까지 달아 이교수를 옹호했다.
7일에는 이 교수가 나눔의 집에 찾아가 할머니들께 사과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A12면에 실었으며, A23면 <사기·유괴·협박…'위안부 강제동원' 증언쌓여>에서는 "그러나 일본군 위안소의 설립·운영은 민간도 상당부분 관여했다는 연구도 있다", "1940년 무렵부터는 대부분의 위안소 설립과 위안부 모집을 민간이 담당했고 그중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는 자료" 등의 표현으로 이영훈 교수의 발언을 보완해 주었다.
중앙일보는 6일 4면 <기자파일/또 다른 '여론재판'>에서 되레 이 교수 발언 관련 논란의 책임을 '일부 언론의 잘못된 보도 탓'으로 돌리며 이를 '여론재판'으로 몰기까지 했다.
중앙은 "공개된 장소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했다"며 이 교수의 책임을 물었으나, "몇몇 언론은 이 교수의 진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일부를 부각한 뒤 자의적으로 재단, 여론을 자극했다"고 논란의 책임을 '언론탓'으로 돌렸다. 더 나아가 중앙은 "과거사 규명 논란이 이런 식의 '여론재판'으로 이어질까 걱정된다"며 과거사 규명문제를 슬쩍끼워넣어 폄훼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6일 28면 2단 <'위안부 논란' 서울대 교수 "발언내용 왜곡됐다">에서 이 교수의 해명서를 인용해 이 교수의 발언이 일부 언론보도에 의해 '왜곡됐다'는 점을 부각해 보도했다. 7일 단신으로 이 교수가 나눔의 집을 찾아가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이 기사에서 "광복 후에도 성을 착취하는 기구가 있어 왔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전달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는 이 교수의 발언을 실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다른 신문들과 달리 이 교수 발언의 문제를 조목조목 비판해 차이를 보였다.
한겨레는 4일 7면 <"위안부 강제동원 누가 주장하나" 이영훈교수 방송토론 발언 논란>에서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했다고 누가 주장하나"라고 했던 이 교수의 발언을 보도했다. 특히 7일 사설 <무엇을 위한 '정신대' 발언이었나>에서 한겨레는 이 교수에 대해 "논의의 핵심을 벗어나는 물타기식, 어영부영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 교수가 한국전쟁 당시 '위안소'와 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한 것에 대해 "국가와 군대가 나서 조직적으로 군대 위안부를 공급·관리했던 정신대 문제를 물타기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문제의 핵심이 국가의 개입 여부인데,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의 피나는 노력으로 어렵게 일본 정부가 인정하기 시작한 국가 개입과 강제연행 사실을 부인했으니 관계자들의 분노를 사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 교수가 '상업적 공창'이라고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강제 연행이 아니며 업소로 관리했다는 그의 언급은 공창 논리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과거사 규명이 국가가 아니라 '개인의 반성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과거사 규명이라는 핵심을 피해가는 궤변으로 들릴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정대협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600회가 넘는 수요집회를 개최하며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등 국가차원의 대책마련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직도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강제성이 있었다'는 인정을 일본정부로부터 받아낸 것이 지난 1993년이다. 이 교수의 이번 발언은 정신대 할머니들의 피눈물나는 노력을 외면한 것으로 이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성매매 차원으로 취급했다는 점, 일본 정부와 군의 강제동원을 부인했다는 점 등 일본의 우익과 똑같은 주장을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보고 역설적으로 '과거사 청산'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한편 오랜 투쟁을 통해 어렵게 일궈낸 역사적 진실마저 부인하고 과거사 청산을 물타기하려는 일부 지식인의 '곡학아세'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도대체 이 같은 기회주의적 지식인의 잘못된 발언에 대해 왜 일부 신문은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발언에 대하여는 온갖 꼬투리를 잡아 이를 확대재생산 해왔던 이들 신문이 왜 이교수 발언에 대해서는 이토록 너그러운 것인가. 특히 그간 정치권의 '언론탓'을 비판했던 중앙일보가 일부 언론보도를 탓하며 이번 사안을 '여론재판'으로 몰고가며까지 이 교수를 옹호한 것은 한마디로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일부 언론이 이번 사태를 유야무야하려는 것이 과거사 청산을 몰타기하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이 같은 바램과는 달리 이번 사태는 과거사 청산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끝>
2004년 9월 6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