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대통령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 표명 관련 주요 신문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9.6)
등록 2013.08.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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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반대 논리, 근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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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시사매거진2580> 500회 특집 대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동안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온 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정당은 대통령의 입장 표명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으며, 여당이 '폐지 당론'을 정해 국가보안법을 하루속히 폐지해 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반면 국가보안법의 존치를 주장해온 수구정당과 수구언론 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궁색한 논리로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비난했다. 심지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국가보안법은 한나라당의 존재 이유'라고까지 하면서 거세게 반발했다.
6일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신문들은 일제히 사설을 싣고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입장 표명을 '경솔했다', '혼선을 부추긴다', '건강한 의견수렴 과정을 훼손한다'는 등의 궁색한 논리로 비난하거나 '말꼬투리 잡기' 식의 딴죽을 걸었다. 수구신문들의 이같은 반발은 대통령의 발언이 여당의 '폐지당론'에 힘을 실어주는 등 국가보안법 폐지의 분위기가 확산되는 데 대한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에 다름아니다.


조선일보는 6일 1면에서 <청와대·사법부 정면충돌>이라는 제하의 톱기사를 통해 청와대와 사법부의 갈등을 부각한 데 이어, 사설 <국보법 없어야 문명국가라는 대통령의 인식>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꼬투리잡고 늘어졌다.
조선일보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대한민국이 드디어 문명의 국가로 간다고 말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대통령 이야기는 결국 국보법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야만국가라는 말과 한 가지"라고 비아냥거렸다. 또 국보법이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되어 왔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통계적 자료를 제시"하라며 떼를 쓰기도 했다. 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면 "이 법 없이도 대한민국이 북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사설 <대통령, 헌법기관과 대립각 세워서야>에서 "대통령으로서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의견을 내놓았으니 그 취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려 깊지 못했다는 지적은 면할 수 없다고 본다"며 대통령의 발언을 '신중치 못한 태도'로 몰았다.
나아가 동아는 대법원과 헌재의 견해는 존중되어야 한다며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사안별로 시비를 가려 줌으로써 사회가 극단적인 혼란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에 "대법원과 헌재의 결정은 법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며 "그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주장했다. 헌재의 '국보법 합헌'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대통령의 폐지 입장 표명과 여당의 폐지 움직임을 '헌법기관을 존중하지 않는 행태'로 몰아가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중앙일보 역시 같은 날 사설 <대통령이 보안법 혼선 부채질하나>를 통해 대통령의 '신중치못한 태도'를 문제삼으며, 국가보안법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국민 간 갈등을 부추기거나 정책의 혼선을 부채질하는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핵심기관이 보안법 개폐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며 대통령의 발언을 '혼란만 가중시키는 경솔한 태도'로 몰았다. 또 대통령의 의견 표명으로 여당 내에서 '폐지론'이 확산될 것을 염두에 두고 이를 "정부와 여권 내의 건강한 의견수렴 과정이 훼손"되는 것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나아가 중앙일보는 "보안법 개폐의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대통령이나 사법부 어느 한쪽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건 불가피하게 됐다"고 주장함으로써, 사법부에 대해 '존치론'을 강력하게 밀고나갈 것을 압박하는 듯한 인상까지 주었다.
중앙일보는 국보법이 "국가를 보위하는 순기능을 해왔음도 부인하기 어렵다"며 "지금은 보안법을 개정하고, 폐지문제는 남북한의 신뢰가 구축되고 화해협력이 무르익을때까지 기다리는 정치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며 예의 '시기상조론'을 반복하기도 했다.


우리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들의 '당혹스러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입장 표명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때늦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언론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헌법 기관을 무시한 것이다', '혼란을 부추긴다'는 식으로 비난하거나 '악용된 통계자료를 내라'는 식의 트집잡기로 반발하고 나선 것은 참으로 수준 이하다.
우리는 조선일보에 묻고 싶다. 국가보안법은 인륜을 파괴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야만적인 법으로 국제 인권단체들로부터 폐지 권고를 받는 망신스러운 법이다. 조선일보는 이와 같은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또 국가보안법이 정권 유지에 악용된 사례와 통계 자료는 인권단체, 언론 등을 통해 수도 없이 제시되어 왔다. 새삼스럽게 대통령에게 '통계자료를 내놓으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조선일보가 국가보안법의 뿌리와 악용 사례에 대해 제대로 취재를 해왔는지 의심스럽다. 조선일보야말로 국가보안법이 진정한 의미의 '국가안보'에 적용된 경우에 대해 독자들에게 명확한 통계적 자료를 제시해주기 바란다.
아울러 우리는 '사법부 존중'을 운운한 동아일보가 '3권분립'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지, 법안의 제정과 폐지가 의회의 고유 권한이라는 상식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동아일보는 어떤 근거로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만으로 대법원과 헌재의 입장을 '무시'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우리는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입법기관'의 권한 사항에 대해서까지 왈가왈부함으로써 '3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을 때 동아일보가 침묵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헌법 기관을 '무시'한 것이라고 보면서, 헌법재판소가 '3권분립의 원리'를 깬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인가?
대통령의 발언이 갈등을 부추기고 혼선을 부채질한다고 주장한 중앙일보에게도 묻고 싶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놓고 대통령과 사법부,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달라서는 안되는 것인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갈등을 조정해나가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초가 아닌가?
우리는 국가보안법이 '정권의 안보'를 위해 어떻게 악용되었는지 새삼스럽게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들이 국가보안법의 존치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무조건 '북의 위협'을 들이대거나 막연히 '국가안보에 기여하는 순기능'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국가안보가 위협을 받는다는 합당한 근거", "형법으로는 지킬 수 없는 국가안보의 심각한 상황" 등을 먼저 제시해주기 바란다. <끝>

 


2004년 9월 6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