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국교육개발원의 평준화 적용·비적용 지역간 학업성취도 분석보고서' 관련 신문 보도」에 대한 논평(2004.4.30)
뒤틀린 '엘리트주의'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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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 제기해오던 '학력 하향평준화'에 대한 우려가 연구결과 기우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의 평준화 정책에 대한 딴죽걸기가 계속되고 있다.
27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한국교육개발원 윤종혁 학교제도 연구실장이 격월간 <교육개발>에 쓴 보고서 <'하향평준화'에 대한 우려, 결국 우려일 뿐이었다>를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2001년과 2002년에 실시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및 설문조사 결과를 활용해 분석한 내용으로, 윤 실장은 보고서에서 "상위권 학생의 학력은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간에 별 차이가 없으며, 전체적으로 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학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평준화 정책 이후 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논리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신문은 엉뚱하게도 '영어는 평준화지역이 우수하고 수학은 비평준화지역이 우수하다'는 식으로 제목을 다는 등 사실을 호도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27일는 14면 <평준화지역 영어 비평준화지역 수학 더 잘한다>고 제목을 달았다. 기사 내용에서도 조선일보는 "고교평준화지역 상위권 중·고교생은 영어를, 비평준화지역 상위권 중·고교생은 수학을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사실을 부각했다.
동아일보도 27일 29면 <평준화지역 영어 비평준화지역 수학 '우수'>라고 제목을 달고 "상위 10% 이내 학생의 경우에만 수학은 비평준화지역, 영어는 평준화지역의 평균점수가 더 높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비평준화지역이 수학 더 잘한다' 운운했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기사 내에서 '고교 평준화지역 중고교생의 학업성취도가 비평준화지역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해 스스로 제목달기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경향신문은 27일 8면 <평준화지역 학생성적 더높다>에서 "고교평준화 지역 중·고생이 비평준화 지역 학생보다 영어, 수학 등의 학업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만 상위권만 비교하면 수학의 경우는 비평준화 지역 학생이, 영어의 경우 평준호 지역 학생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해 다른 두 신문과 차이를 보였다.
윤 실장의 보고서 원문에는 연구결과의 한계를 지적하며 상위권 학생들 간의 성적차에 대해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이 보고서를 가장 처음 기사화 한 연합뉴스가 처음 언급했다. 연합뉴스는 보고서를 기사화하면서 표에 기제되어 있는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을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뉴스 기사에는 '평준화가 하향평준화를 초래한다는 것이 설득력이 없다'는 요지의 내용이 실려있어 이를 배제한 조선일보의 보도내용과 차이를 보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조선일보의 27일 사설 <정부는 '평준화 효과'도 검증 못하나>이다. 조선은 이 사설에서 윤 실장의 이번 보고서를 언급하며 "평준화가 학력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던 지난 2월의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 결론과 정반대"라며 '정부가 평준화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결과도 갖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선은 "그동안 숱한 교육개혁을 시도해봤고, 입시제도도 많이 바꿔봤다"며 "그래도 사교육은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학생들 실력을 떨어지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또다시 평준화 정책과 학생들의 실력을 연결지었다. 조선은 "지금이라도 정부는 평준화 찬성측과 반대측이 모두 믿을 만한 연구팀을 구성해 평준화가 학력을 높이는지 떨어뜨리는지, 또는 계층 격차를 좁혀놓는지 벌려놓는지에 대해 전면적인 실증연구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 같은 주장은 전형적인 '물타기'다. 우선 한국교육개발원은 이번 연구에서 '평준화 정책이 학력 하향평준화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이 같은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KDI의 상반된 연구결과를 언급해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더구나 조선일보가 언급한 KDI의 보고서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방법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보고서 발표 초기부터 있어 왔다. KDI 보고서는 한 학생의 지속적인 성적향상도를 분석한 것이 아니라, 같은 해(2001년) 고교 1년생과 2년생의 성적을 동시에 측정해 '1학년이 1년 뒤 2학년 학생들의 성적으로 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성적향상도를 분석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KDI의 연구결과의 오류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채, 양측의 결과가 상반되게 나온 것만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은 입만 열면 '고교평준화 제도'가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온다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한국교육개발원이 이 역시 '근거없는 우려'라고 밝히자, 이번에는 KDI보고서를 들이대며 '어떤 것이 진짜냐'고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팩트마저 왜곡하면서까지 '평준화 정책'을 흔들려는 속셈은 무엇인가. 혹 엘리트주의에 대한 집착이 '사실왜곡'이라는 뒤틀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조선일보의 비뚤어진 엘리트주의가 딱할 따름이다.
2004년 4월 30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