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방송3사 ‘한-칠레 FTA 통과무산’ 관련보도에 대한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논평(2004.2.16)
등록 2013.08.0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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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통과 무산’은 ‘서청원 석방결의안’과 결코 같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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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상정된 지난 2월 9일을 전후해 우리 방송에서는 FTA와 관련한 온갖 편파와 왜곡, 갈등 조장이 넘쳐나고 있다. 반면 FTA 비준안 처리와 관련해 갈등의 근원과 대안 등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보도는 찾을 수가 없었다. 방송3사는 천편일률적으로 한-칠레 FTA 통과무산을 두고 재계와 정부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했으며, 농민들의 시위에 대해서는 선정적인 보도로 과격성과 충돌양상만 부각시켰다. 또 FTA 처리에 대한 입장을 ‘찬성 VS 반대’, ‘도시 VS 농촌’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보도로 갈등을 조장해 본질을 호도했다.


‘대외신인도 하락’, ‘통상미아’로 불안심리 부추겨


MBC 뉴스데스크와 KBS 뉴스9, SBS 8시뉴스는 2월 8일부터 10일까지 총 14건에 걸쳐 한-칠레 FTA 관련보도를 했다. 하지만 이들 보도를 통해 격렬하게 저항한 농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오로지 경제논리로 접근하는 정부와 재계의 입장만 있었을 뿐이다. KBS는 슈미트 주한 칠레 대사와 신장범 주칠레 대사의 입을 빌어 FTA 통과 무산으로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제품 경쟁력 하락>, 2/10)했다. KBS는 “FTA 비준이 계속 지연될 경우 칠레와 남미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 하락은 불가피하다”(슈미트 대사), “FTA 발표 없이는 한국산 자동차와 휴대전화는 물론 모든 한국산 공산품들이 칠레 시장에서 큰 타격을 받을 것”(신장범 대사)이라는 주장을 여과없이 그대로 인용했다. SBS는 재계와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를 동원해 ‘대외신인도 하락’과 ‘수출차질’을 우려했다. FTA 비준동의안이 상정되기 전날, “수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 한해만 수천억원대의 수출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수출피해 눈덩이>)고 엄포를 놓더니, 통과가 무산되자 “당장 우리나라는 국제 사회에서 통상 미아로 전락할 위기에 빠졌다.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 전반에 또 다른 대형 악재”(<통상미아 위기>)가 될 거라며 경제를 볼모로 시청자들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MBC도 마찬가지였다. “FTA 비준이 또다시 무산되면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 하락이 큰 걱정, 당장의 수출차질도 큰 문제”(<못믿을 한국>, 2/10)라고 호들갑을 떨더니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통상미아가 되는 것 아니냐”며 SBS와 똑같이 ‘통상미아’라는 불안을 조성했다.


과장, 허위, 왜곡으로 피해 부풀려


더 큰 문제는 방송3사가 이 과정에서 허위, 왜곡보도까지 서슴지 않은 것이다. SBS는 FTA 처리 지연으로 인한 피해를 과장하는데 앞장섰다. SBS는 8일 보도에서 “2002년까지만 해도 칠레 시장에서 20% 이상을 점유하며 선두를 달렸던 한국산 자동차 판매는 올 들어 3위로 주저앉았다”고 주장하더니 10일 보도에서는 “칠레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3위였던 우리 자동차가 불과 몇 달 새 5위로 추락”했다며 앞뒤 맞지 않는 주장을 폈다. ‘올 들어 3위로 주저앉았다’는 보도와 ‘불과 몇 달 새 5위로 추락’했다는 보도 중에서 진실은 무엇인가? 물론 한국자동차가 칠레에서 시장점유율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동차 판매로 인한 ‘금액점유율’은 오히려 상승했다는 조사결과 칠레 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03년 1월에서 9월까지 한국의 자동차 시장은 오히려 1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남.(전농 <한-칠레 FTA 지연이 수출부진의 핵심이유라는 언론보도에 대한 반박>, 2003. 11) 또한 KOTRA(대한무역진흥공사)가 2003년 12월 펴낸 <중남미 국별 FTA 추진현황 및 우리나라와의 추진가능성>이란 자료에 의하면, 칠레에서 1,500cc-3,000cc 승용차의 경우 2002년 대비 2003년 1/4분기 시장점유율이 11.1%에서 12.3%로 증가했다.(<중남미 국별 FTA 추진현황 및 우리나라와의 추진가능성> 209p) 도 나왔다. 또한 칠레와 아무런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의 경우, 자동차 시장점유율이 더욱 상승하고 있다하니 FTA 체결과 시장점유율 상승의 연관관계에 대해 SBS는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물론 FTA를 체결하지 않으면 ‘수출이 저하하고 대외신인도가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한 MBC와 KBS도 마찬가지다.


이밖에도 SBS는 한-칠레 FTA 통과 무산에 의한 대칠레 수출저하를 언급하면서 직접적 관련이 없는 멕시코의 사례를 인용, “멕시코 정부가 FTA 협정을 맺지 않은 한국산 타이어에 대해 35%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며 피해를 부각시키기에 급급했다. 나아가 FTA에 대해 “상대국 수출품에 관세를 줄여 값을 낮춰주고 상대국에 투자할 때에도 세금혜택을 주자는 것”이라며 이를 ‘장점’이라고 긍정일변도로 보도했다. 그러나 한-칠레 FTA가 타결된 경우 칠레의 값싼 농산물이 마구잡이로 들어와 국내 농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농민 뿐 아니라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SBS는 이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시장 개방피해에 대해서는 예상 금액의 두 배인 1조5천억원을 지원…적어도 외형상 농업부문에 큰 피해는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라며 정부와 재계입장을 두둔하는데 급급했다. MBC는 이에 대해 교묘한 ‘왜곡’까지 자행했다. MBC는 10일 <못믿을 한국>에서 ‘WTO 가입 148개국 중’ 우리와 몽골이 FTA를 체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풀려 “지금까지 FTA를 한 건도 맺지 못한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몽골뿐”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또 “당장 내일 한국을 방문하는 무디스와의 연례 신용평가협의회도 비상”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으나 정작 무디스는 ‘FTA 무산은 신용평가와 상관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선정적 보도로 ‘본질흐리기’


이처럼 허위, 과장, 왜곡까지 동원해 정부와 재계의 주장을 대변하던 방송보도는 농민들의 생존권을 건 저항의 이유에 대해서는 사실보도조차 인색했다. 다만 농민들의 격렬한 시위와 이로 인한 경찰과의 충돌을 선정적으로 보도할 뿐이었다. 9일 보도된 방송3사의 뉴스는 하나같이 “농민과 경찰 간의 격렬한 충돌…여의도는 한 때 전쟁터와 같은 모습”(SBS), “연기 사이로 경찰과 농민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KBS), “곳곳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국회 앞은 유혈이 낭자한 전쟁터”(MBC)라며 충돌의 현장을 ‘선정적’으로 묘사했다. 뿐만 아니라 “농민들이 돌과 빈 병을 던지며 각목을 휘두르자 경찰은 물대포로 맞서…일부 농민…불을 지르기도”(SBS), “물대포를 쏘는 경찰에 농민들은 돌과 빈 병 세례”, “시위가 격해지면서 일반 주차 차량이 불타거나 부서지고 여의도 공원에 불”(KBS), “시위대는…지하철 공사장에 불을 지르기 시작…물대포가 시위대의 머리 위로 뿜어졌고 시위대가 던진 돌은 경찰을 향해 비오듯 날아”(MBC) 등, 충돌 양상을 상세히 전달하며 ‘농민이 경찰버스를 흔드는 장면’, ‘전경과 농민이 서로 싸우는 장면’, ‘불에 타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는 장면’들을 함께 보여줘 ‘대결’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췄다. FTA의 국회 비준 무산을 ‘국회의 무능’으로 몰아간 보도태도 역시 전형적인 ‘본질 흐리기’다. 방송3사는 ‘FTA 및 파병동의안 비준 무산’과 ‘서청원 의원 석방결의안 통과’를 ‘제 잇속 챙기기’나 ‘국회의 무능’으로 싸잡아 질타했다. 서의원 석방결의안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의 행태야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FTA 통과 무산’은 ‘석방결의안 통과’와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사안이다. 갈등에 대한 조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국가적 중대사의 ‘논의 과정’이 어떻게 ‘제식구 감싸기’와 같은 수준으로 다뤄질 수 있는가.


방송3사가 한-칠레 FTA 국회비준동의를 다룬 보도태도는 한 마디로 ‘거대 족벌신문이 여론을 몰아가는 행태를 그대로 답습했다’고 평가된다. 냉정하고 차분한 평가 없이 단지 ‘현상’만 나열하고, 그 현상을 과장?왜곡시켜 ‘FTA의 조속한 처리’가 당면 과제인양 여론을 몰아간 것이다. 16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비준 동의안'이 다시 한 번 국회에 상정된다. 방송들의 보도가 농민은 물론 국민 전체에 얼마나 큰 ‘책임’을 가지는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길 간절히 촉구한다.


 
2004년 2월 16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