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관련 신문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3.11.12)
왜 언론은 '화염병'만 부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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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를 다룬 일부 언론의 보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시위의 '폭력성'을 주로 부각했으며, 노동계가 주장한 '손배·가압류'와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 신문은 정부에 '강경대응'을 주문했으며, 손배·가압류와 비정규직 차별의 원인이 노동계의 '강경투쟁'에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노동자 시위의 '의도'를 계속 주장하는 음모적 시각까지 보였다.
조선일보는 11일 사설 <민노총은 이 나라를 거덜낼 셈인가>에서 "일요일 저녁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화염병 시위는 사전에 계획된 것이 분명했다"며 화염병 사용과 관련해 경찰과 민주노총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음에도 민주노총이 '사전 계획' 했다고 단정했다. 조선일보는 "민노총 힘이 얼마나 세게 보였기에 외국 언론들마저 한국 정부와 기업이 강성노조에 휘둘리고 있고, 그게 한국경제의 최대 불안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겠는가"라며 "도로를 불바다로 만드는 노조를 보고서도 이 땅에 투자할 눈먼 외국자본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대해 "공장이 문 닫을 지경이어도 해고는 안 된다고 노조가 눈에 불을 켜고 나서니 기업은 임시직이나 일용직을 채용하는 쪽으로 기우는 것"이라며 그 책임을 노조에 돌렸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시위에 등장한 '파병반대' 구호가 마치 우리나라 대외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처럼 몰고 가며 "그걸 빤히 들여다보는 노조 지도부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멋을 내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의 희생을 딛고서라도 얻어야 할 다른 목표가 있다는 것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 주장했다. 조선은 '사전계획''다른 목표''노동자들의 이익말고 다른 것' 등의 단어를 사용해 노동계 시위에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음모론'을 주장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두 차례 사설을 실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모두 민주노총 시위의 불법성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정부의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그러나 두 신문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동아일보가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파병반대' 시위구호를 비판한 것과 달리 중앙일보는 노동계의 '폭력시위'에만 초점을 맞췄다.
동아일보는 11일 사설 <민노총 '화염병 시위', 용납될 수 없다>에서 "두 가지 사안(손배소와 비정규직 차별) 모두 강성 노동운동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며 손배소와 비정규직 차별이 노동계의 문제인 것으로 오히려 책임을 전가했다. 동아는 "손해배상 가압류제도는 기업들이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에 대항하는 자구 행위에서 시작"했으며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 근로자들의 급여와 복지가 경영을 압박할 정도가 되면서 기업들이 비정규직 채용으로 돌아섰다"고 주장했다. 정부에 대해서는 "…민노총과 진지하게 대화해야 한다. 그러나 불법 폭력시위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촉구했다. 12일 사설 <민주노총,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에서 동아는 "화염병, 볼트 너트 등 살상무기를 투척하는 과격시위를 벌인 민주노총이 자숙하기는커녕 3일만에 총파업을 하고 도심 시위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며 민주노총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동아는 "총파업 이유에 '이라크 파병 반대'는 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쓴 뒤 "노동운동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복지와 근로조건의 개선…민감한 외교안보 문제에 민주노총이 섣부르게 끼어들 일이 아니다"라며 시위내용까지 단도리하고 나섰다. 또한 동아는 "민주노총은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강성 노동운동은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일자리를 해외로 내보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며 노동계를 압박했다.
중앙일보는 11일 <폭력 시위, 민노총 지휘부 엄단하라>에서 "1997년 5월 한총련 시위 이후 6년여 만에 대규모 화염병이 등장해 시가전을 방불케 했다"며 "도시 게릴라처럼 얼굴에 복면을 하고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의 폭력성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중앙은 "평화적 시위를 벌이려 했지만 경찰이 과잉진압을 해 무력 충돌 사태가 빚어졌다는 민주노총의 주장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라며 "법을 무시하고 폭력을 행사해 놓고도 눈감아 달라니 너무나 뻔뻔스럽?quot;고 했다. 중앙은 "지금은 민주노총이 노·정 간의 소모적 대결로 산업현장을 뒤흔들고 국민을 불안하게 할 때가 아니다"라며 "협상과 평화적 시위를 통해 조정해 나가는 것이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12일 사설 <최루탄·물대포 필요하면 사용해야>에서 중앙은 "화염병이 난무하고 볼트·너트를 발사한 새총까지 등장한 지난 9일의 살벌했던 1차 시위가 이번에는 결코 재연돼선 안된다"며 "강성노조에 넌더리를 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더 기피할까 여간 걱정스럽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은 "그들은 9일 집회에서 조합원들이 화염병과 새총까지 준비한 것을 사전에 알고도 방관했다"며 "이제 와서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에 폭력시위가 발생했다고 그 책임을 경찰에 전가하는 몰염치를 보였다"고 민주노총을 비난했다. 이어 중앙은 "정부는 가압류를 하더라도 최저임금과 노조활동의 보장을 골자로 한 대책을 최근 발표했고, 이를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 중 확정할 방침…당장 요구를 들어달라고 정부를 마구 윽박지르면서 폭력시위를 하는 노조측의 행태는 그 어떤 절박성이 있다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중앙은 "폭력시위 저지를 위해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경찰청장의 언급은 무책임하다. 전경들만 화염병과 볼트·너트 공격에 부상해야 한다는 말인가. 최루탄과 물대포는 필요하면 사용해야 한다"며 정부의 강경대응을 부추겼다.
반면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사태의 해결' 쪽에 초점을 맞췄다.
한겨레신문은 11일 사설 <강경대응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에서 "문제는 유혈사태까지 빚었는데도 정부의 강경자세에 전혀 변함이 없다는데 있다"며 "더구나 대다수 언론마저 과잉진압은 외면한 채 화염병만 집중 부각하고 있다"고 다른 신문들과 달리 정부와 타 언론의 문제를 부각했다. 한겨레신문은 "언론의 여론몰이에 힘입어 정부가 강경대응과 엄정 사법처리만 강조한다면 사태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는 가압류와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대해 성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도 11일 <서울 도심서 도진 화염병시위>에서 "동료들이 연달아 자살·분신하는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손배소·가압류 및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대한 뾰족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불만이 없겠는가"며 "하지만 폭력적인 수단으로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이번 사태가 손배소·기압류에 대한 미온적인 해결방안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정부와 재계도 노동계가 처한 문제점을 풀어가려는 전향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노·사·정 모두 마음을 활짝 열고 솔직하고도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충고했다.
그동안 평화적으로 치러져왔던 '전국노동자대회'가 경찰의 폭력적 진압과 노동계의 화염병 투척으로 폭력양상을 보이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분신자살로 항거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시위의 폭력성만 부각해 보도하는 언론의 보도태도가 우리를 더 절망하게 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노동자 시위를 야기시킨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화염병'과 '새총' 등 시위 용품의 문제를 부각하며 '과격 폭력시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지난 2001년 공공노조 파업 당시 '가뭄에 웬 파업' 운운했던 본질 흐리기식 보도의 '재판'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누차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잇따른 분신과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언론의 진지한 접근과 공정한 보도가 필수적이라고 충고해왔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에게는 손배·가압류 및 비정규직 차별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최소한의 공정한 시각조차 담아내지 못하는 우리 언론의 반 노동자적 보도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11월 12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