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노동자들의 죽음과 분신'관련 방송3사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3.11.3)
제대로 된 보도로 노동자들의 목숨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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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신의 몸까지 내던지는 노동자들의 극한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씨의 분신 이후, 10월 17일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과 뒤이은 금속노조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의 분신, 그리고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광주전남 이용석 본부장의 분신에 이르기까지 안타까운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는 현재 노동자들의 상황이 죽음을 결심할 만큼 절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방송보도는 노동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보다는 단순 사건보도에 그치고 있다. 사회여론을 환기하고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할 언론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지난 17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이 '손배가압류 철회'와 '노조탄압 중단' 등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방송3사 모두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을 보도했으나 단순보도에 그쳤다. KBS는 보도 내내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을 '한진중공업' 개별 사업장의 일인 것처럼 보도해 의미를 축소했다. 이에 비해 MBC와 SBS는 각각 "파장이 확산될 전망", "노동계는 다시 한번 격랑에 휩싸일 것"이라고 보도하며 사안의 중요성을 인정했지만 김지회장이 목숨을 끊을만큼 절박했던 '손배가압류'와 '노조탄압'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이런 방송3사의 보도태도는 18일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총력투쟁'을 선언하자 "사태가 장기화될 전망", "대정부 강경투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MBC), "제2의 두산중공업 사태로까지 비화되지 않을까 우려"(SBS)하며 노동계의 극단적인 반응만을 부각시켰다. KBS는 단신으로 짧게 처리하는데 그쳤다.
이후 한동안 노동문제에 침묵했던 방송은 23일 세원테크의 이해남 지회장이 똑같은 요구를 유서에 남기고 분신하자 18일과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산업 현장의 불행한 사태가 계속"(MBC)된다, "또 다른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KBS)된다, "노사정간의 대립과 갈등 양상이 더욱 고조"(SBS)된다며 초점을 노동계의 '극한투쟁'문제로 몰고 갔다. 다만 SBS가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실태를 보도한 것은 평가할 만 한하다.
언론의 이 같은 무관심에 경종을 울리듯 26일 근로복지공단의 이용석 광주전남 본부장이 26일 '비정규직 노동자대회' 현장에서 또 다시 분신했다. 이날 KBS는 뒤늦게 2건의 보도를 내보냈다. "참여정부 들어 손해가압류나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 노동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노사분규를 겪고 있었던 사업장에서 사고가 일어난 것"이라는 타당한 지적도 결국 '사후약방문'격에 불과했다. SBS는 이용석 본부장의 분신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흥분된 이날 집회 분위기를 전달하는 등 '선정성'을 드러냈다. "흥분한 시위대가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시위대가 경찰에게 방패와 헬맷을 빼앗아 불태우기도…도심 교통은 저녁 늦게까지 마비"되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 목적보다는 집회현장의 격렬함을 더 부각시켰다. 그러나 MBC는 더 문제였다. MBC는 이용석 본부장의 분신을 단지 20초짜리 단신으로만 보도했던 것이다. 같은 날 발생했던 경주차의 관중석 돌진으로 인한 사고에 대해서는 두건에 걸쳐 사고원인까지 상세하게 보도한 MBC가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에 다름아니다.
10일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무려 세 명의 노동자가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고 나서야 방송들은 약간의 관심을 드러내며 27일과 28일 관련보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노동자들이 목숨까지 내놓으며 제기했던 '손배가압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등 노동계 현안에 대한 방송의 무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방송보도의 또 다른 문제는 '의미축소'에 있다. 방송3사는 한결같이 노동자들의 죽음과 분신을 개인적인 일이나 개별사업장의 문제로 한정지으려 한 것이다. "체포영장 발부…노조원들의 파업이탈이 늘면서 강한 심리적 압박"(10/17, SBS), "체포영장 발부…노사협상 진전 없어…심리적 압박에 시달려온 것"(10/17, KBS), "3월 해고…경찰 수배…11억원 가압류 조치에 괴로워했던 것"(10/24, MBC) 등은 심리적 압박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유약한 노동자가 결국 '자살'과 '분신'을 택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는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내 한 몸 희생으로 노동탄압, 구속, 수배, 해고, 가압류라는 것들은 정말 없어지기를 바랄 뿐"이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던진 노동자들을 다시 한번 죽이는 거나 다름없다.
지난 1월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손해배상'과 '가압류'조치의 비인간성을 폭로했던 배달호씨의 죽음 이후, 9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도대체 방송은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 방송3사는 지금이라도 책임을 통감하고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부터 돌아보라. 더욱이 지금 노동계의 상황은 91년 분신정국을 연상시킬만큼 심각하다. 방송의 올바른 노동관련 보도는 수많은 노동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이미 노동계는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시민사회도 이 같은 노동계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할 채비를 하고 있다. 문제가 더욱 확산되고 악화되기 전에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방송은 정부가 내놓은 '손배가압류 남용방지 법개정 방안'이라든지 '비정규직 보호대책'을 노동계가 왜 반대하는지, 근본적인 사태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부터 취재하라.
2003년 11월 3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