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이용석씨 분신'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3.10.29)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편파보도'로 죽어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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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7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지난 26일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 참석했던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광주지역본부장 이용석씨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또 분신했다.
지난 17일, 129일간의 고공 크레인 농성 끝에 죽음을 선택했던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23일 분신한 세원정공 노조지회장 이해남 씨와 이용석 씨까지 열흘사이에 세 명, 올해 들어서만 벌써 7명의 노동자가 죽음을 기도했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가?
이들은 유서를 통해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비롯한 각종 노동탄압,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고통스런 현실을 고발하며 이렇게 언론을 질타했다.
"보수언론은 마치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난리를 친다" (고 김주익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의 유서 中)
이들을 사지로 내몬 일차적 책임이 정부와 사용자측의 반노동정책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올해 내내 노동시장 유연화와 외자유치 제일주의를 외치며 법으로 보장된 파업조차 나라살림을 결딴내는 것처럼 호도 했던 수구언론 역시 공범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동안 철저히 사용자 편에서 보도해왔던 조선, 동아는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외면과 축소로 일관했다. 조선과 동아는 한진중공업 김주익 위원장의 죽음을 단신으로 처리했고 동아의 경우 세원정공 이해남 지회장의 분신사실은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조선과 동아는 이용석씨의 분신사실은 간단히 보도한 반면 이씨의 분신에 격앙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과격시위부분은 부각시켜 본질을 희석시켰다.
조선은 27일자 사회면 하단에 분신사실만을 간단히 보도하면서 <시위대 강제해산>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싣고는 "26일 서울 종로3가에서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을 지르자 경찰이 이들을 강제해산시키고 있다"는 캡션을 달아 과격시위를 부각시켰다. 동아 역시 분신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일부 참가자들이 경찰의 방패와 헬멧 20여개를 빼앗아 불 지르기도 했다. 500여명은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건물 앞으로 몰려가 밤늦게까지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중앙의 경우 이씨의 분신이유를 밝혀주기는 했지만 '격렬한' 충돌과정을 상세히 보도하는 등 과격시위에 초점을 맞췄다. 경향은 분신사실을 간단히 보도하면서 양대 노총의 대응계획을 자세히 보도했다. 반면 한겨레는 분신한 이씨의 신상과 요구사항을 상세히 보도해 대조를 이뤘다.
또한 일부신문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현실에 대한 개선방안은 외면한 채 양대노총의 총파업움직임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동아일보다. 동아는 27일자 사회면 머리로 <노동계 冬鬪 심상치않다>는 기사를 싣고 노동계가 "때 아닌 동투"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일선 노조원들이 '위로부터의 투쟁지시'에 얼마나 따라줄 것인지 미지수여서 파업의 파괴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거나 "파업에 동참할 근로자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는 노동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하는 등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파업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유도하는 등 단도리에 나서기까지 했다. 동아는 분신소식을 이 기사 옆에 작게 보도하는 등 반노동적 태도가 가장 두드러졌다.
세계일보 역시 <노동계 동투 심상찮다>는 제목아래 "연말 '동투(冬鬪)'로 사회 혼란이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양대노총의 향후계획을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봤다. 중앙역시 <총파업 寒波오나>란 기사를 실어 파업을 사회혼란이나 경제위기로 등치 시키는 태도를 보였다.
수구언론은 자살과 분신이라는 극한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노동계의 위기를 심층보도하기보다는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노조 죽이기'에 바빴었다. 이들은 이어지는 죽음 앞에서조차 해법을 찾기는커녕 사실을 축소하고 본질을 흐리는 반노동적 태도를 보였다. 만약 언론이 노동자들의 파업 원인과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제대로 보도하기만 했더라도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정부와 사용자 그리고 언론에 의한 타살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약자의 보호자가 아닌 가해자로, 갈등의 중재자가 아닌 트러블메이커로 언론이 자리하는 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압력 속에서 우리 노동 현실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정녕 우리 일부 신문에게 노동자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한 '균형보도'를 기대하는 것은 이루지 못할 꿈인가.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언론의 반노동적 보도태도 앞에서 참담한 심경을 감출 수 없다.
2003년 10월 29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