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박지원씨 언론인 로비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3.9.29)
이렇게 '후안무치'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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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6일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에 대한 공판과정에서 박 전 장관이 언론인들에게 거액의 접대비를 사용했다는 진술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이 공개한 김영완씨의 진술서에 따르면 "피고인이 국민의 정부 시절 언론사 간부 등과 만나 식사를 한 뒤 부장급은 500만원, 차장급은 300만원씩 봉투를 돌리는 등 1회 식사비용이 5천만원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에 대해 박지원 전 장관은 이를 부인했지만 "언론사 간부들을 개별적으로 만날 때도 있고 일선기자들 20여명을 한꺼번에 만날 때도 있었다" "현금은 부피가 커서 운전기사에게 지불을 맡겼고 수표로 직접 지불하기도 했다"고 말해 언론인들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음을 일부 시인했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의 공판과정에서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간단하게 언급하는데 그쳤으며, 일부 언론은 주요 사실을 누락시켜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했다. 또 일부 언론은 돈의 사용처(언론인 촌지)보다는 출처(비자금 조성)에 무게를 두어 언론에게 돌려질 비난의 화살을 무디게 만드는 교활함을 엿보였다.
가장 대표적인 신문이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27일 5면 하단에 <박지원 "현대 돈 한푼도 안받았다">라는 제목으로 비중을 크게 낮췄다. 조선은 기사 내용 중 「검찰은 "돈 세탁을 맡겼던 김영완씨에게 (박지원씨가) '언론사 간부들을 만나는데 돈이 많이 든다'고 푸념하면서 수십차례에 걸쳐 30억원 가량을 받아썼는데 비자금이 아니냐"」는 부분만 인용했다. 그러나 정작 김영완씨가 언급한 "부장급은 500만원, 차장급은 300만원씩 봉투를 돌리는 등 1회 식사비용이 5천만원에 이른다"는 부분은 빠져있어 돈의 사용처 보다는 '출처'를 부각시켰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에 비해 검찰이 공개한 내용을 비교적 자세하게 실어 차이를 보였으나, 역시 언론인들의 비리문제 보다는 박씨의 비자금 조성 부분을 부각했다.
동아일보도 27일 8면 하단 <박지원씨 "현대 돈 안받았다">에서 「검찰이 "돈 세탁을 맡았던 김영완(金榮浣)씨의 진술서에는 피고인이 '언론사 간부들을 만나는데 돈이 많이 든다'고 푸념하면서 수십차례에 걸쳐 30억원 가량을 받아썼다고 돼 있는데 사실이냐"」「검찰이 또 "김씨는 '박 전 장관으로부터 언론사 간부들을 만나 부장은 500만원, 차장은 300만원씩 든 봉투를 주고 한번 회식에 5000만원이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적고 있다"며 사실여부를 확인하자 박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검찰 "1회 접대비 5천만원 썼나" 박지원씨 "주 4∼5차례 식사만…">이라는 제목으로 역시 27일 7면에 작게 다뤘다. 중앙일보는 「검찰은 "김영완씨 진술서에 따르면 피고인이 문화부장관 시절 언론사 간부들과 자주 만나면서 그 때마다 식사비·술값·촌지를 포함해 5천만원 정도를 쓴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 사실인가"라고 물었다」「검찰은 또 "김씨는 피고인이 '언론인들과 만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면서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게 간접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또 김씨 본인도 20∼30회에 걸쳐 1천만∼1억원씩 30여억원을 줬다고 하더라"고 추궁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일부 신문들은 박지원씨의 대 언론 로비활동과 관련한 검찰 발언을 비교적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한겨레신문도 27일 사회 2면에 <박지원 "기자들과 회식비 5천만원">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은 「26일 공판에서 "박씨가 기자들과 한 차례 식사하면서 5천만원을 쓴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박 전 장관이 국민의 정부 시절 김씨한테서 적게는 현금 1천만원, 많게는 1억원씩을 수시로 가져갔다"」「"'기자들과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부장급에게는 500만원, 차장급에게는 300만원을 줘 5천만원 정도가 나간 적이 있다는 박 전 장관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는 내용이 김씨의 진술서에 있다"」등 박지원 전 장관과 언론인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검찰의 진술을 비교적 자세하게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27일 1면에 <"DJ모시고 밖에나가 살려했다">에서 「검찰은 또한 국민의 정부 시절 박 전 장관이 언론사 간부들을 만나 한번에 수백만원씩 찔러줬으며, 이 돈은 김영완씨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하며 검찰이 공개한 김영완씨의 진술서 내용을 보도했다.
한국일보도 27일 <"DJ모시고 해외서 살려했다">에서 「현대비자금 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는 26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현대측으로부터 150억원을 받아 이 가운데 30억원은 언론인 접대비 등에 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며 검찰의 추궁 내용을 비교적 자세하게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아예 관련 진술 부분을 기사화 하지 않았다.
박지원 전 장관의 1차 공판 과정에서 공개된 '권력과 언론의 부적절한 유착'에 대한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는 언론의 '후안무치'함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 우리 일부 언론은 타인이나 정권을 비판할 때는 엄격한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며 지문지면을 대대적으로 할애해 왔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치부와 관련해서는 의도적으로 사실을 숨기고, 심지어 왜곡까지 하고 있다.
언론은 우선 박지원 전 장관의 대 언론 로비 전모를 심층취재 하여 낱낱이 밝혀내라. 각 언론사는 이번 사태와 관련된 언론인을 가려내고 스스로 언론현장을 떠나도록 조처한 뒤 국민 앞에 사죄하라. 궤변을 늘어놓으며 다른 사안(비자금 조성)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잘못(권언유착에 의한 거액의 촌지 수수)에 대해서는 면피하려고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언론은 알아야 한다.
2003년 9월 29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