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수구단체 시위와 관련 대구U대회 조직위 '유감표명'에 대한 26일 신문보도」에 대한 논평(2003.8.27)
일부 언론은 '사태수습'이라는 단어를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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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조해녕 조직위원장은 수구단체와 북한 기자단의 충돌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이로 인해 파행으로 치달을 뻔했던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차질을 빚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26일 일제히 지난 19일 '8·15 반핵·반김 국민대회'에서 발생한 인공기 소각사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한데 이어, 조해녕 조직위원장까지 유감을 표한 것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반면 충돌이 뻔한 무리한 행동을 자행하고 있는 수구단체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 보도하는데 그치고 있어, 그간 '국익'을 앞세우며 시민사회의 집회 및 시위에 대해 비난해온 것과 대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장 대표적인 신문은 조선일보다. 조선은 <기자수첩-갸웃거리는 '외신'>에서 외신기자들의 반응을 인용하며 "표현의 자유도 인정하지 못하는 북한측이나 북한이 항의할 때마다 매번 누군가가 나와 유감 표시를 하는 남한측 모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고 "북한은 예전에도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적지 않다. 한국이 무조건 예스라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대만 기자의 코멘트를 인용해 북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선일보는 <"자유민주국가에서의 합법시위 앞으로 사사건건 사과할건가"> 제하의 기사에서 "앞으로 유사사태가 발생하고 북한이 요구하면 정부가 계속 유감 표명으로 대응하는 것 아닌가 하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심지어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노 대통령의 '유감표명'에 있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기까지 했다. 조선은 "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이 이미 시민단체의 인공기 소각에 대해 '유감'이라고 표명해, 조직위 측의 대응이 이보다 낮은 수위로 대응할 수 없었으며,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유감'을 표명할 수밖에 없어 정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조선의 시각은 사설로도 이어진다. 조선일보는 사설 <북에 비판 견디는 학습 시켜야>에서 대회조직위원장의 유감표명을 두고 "북한 기자단의 행동보다 시위를 더 나무라는 유감 표시를 한 것은 사태 봉합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며 "잘못된 북한의 행동마저 정부가 감싸고들면 북한은 더욱 기고만장해지고 이 때문에 한국 내의 반김정일 분위기도 높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리 정부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그러나 조선이 우리 정부와 조직위의 '유감표명'을 '북에 휘둘리는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억지다. 조선일보는 북한의 불참으로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불명예스럽게 끝나기를 바라는 것인가. 행사의 주체국으로 발빠르게 사태를 수습한 것을 두고 '사태 봉합에만 급급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조선은 "남북교류는 새로운 '만남의 규칙'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북한정권과 주민들이 자유개방 사회의 다양성을 이해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외부의 비판을 견뎌내는 내성을 기르게 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다양성' 운운하며 '표현의 자유'를 입에 담을 자격이나 있는가. 그동안 조선일보는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집단의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매도해 왔다. 조선은 한총련 학생들이 성조기와 선전물만 들고 미군 사격장에 진입한 것을 두고 '난동' "대한민국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으려는 도시게릴라형 공격"이라며 비난한 바 있다. 또한 당시 한총련 시위의 원인이 정부의 한총련에 대한 강경하지 못한 대응에 있는 것처럼 왜곡하며 "정부는 더 이상 한총련 문제에 대해 미적미적한 입장을 취해서는 안된다"며 "또다시 '한총련 합법화' 운운을 들먹이고, 난동 사태와 한총련 본질 문제는 분리 처리하겠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되풀이 할 것인가"라며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12일에는 사설 <위법적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라>에서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기본권이긴 해도 공공의 질서와 조화를 이룰 때라야 보호의 가치가 있다는 법 정신"이라고 역설하기까지 했다. 이랬던 조선일보가 갑자기 표현의 '다양성' 운운하는 것은 일관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는 1면에 <U대회 충돌 '남-남갈등' 증폭> 3면 <정부 "나설 일 아니다" 여론 살피며 엉거주춤>과 <"긁어 부스럼 될라" 몸사리는 검-경> 등의 기사에서 동아는 "최근 보혁간 이념적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대구 유니버시아드를 둘러싸고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이 증폭되는 사태"라며 이를 '남남갈등'으로 몰고 갔다. 이미 동아일보는 노 대통령이 인공기 소각 관련 유감을 표명했을 때도 "국론 분열상이 심화되는 마당에 대통령이 직접 한쪽 편에 서는 발언을 함으로써 '남남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것아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은 실정"이라며 '남남갈등'을 부각시켜왔다.
사설 <북한 달래기에만 신경 쓸 땐가>에서 동아는 "남과 북 사이에 스포츠 행사로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는 냉철한 현실인식이 선행돼야 한다"며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지만 그들이 북한의 전부라고 오해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아는 '정부의 균형감각'을 제기하며 "정부가 보수단체의 자제를 촉구하면서 북한의 불법적 행위를 모른 체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며 "점점 심각해지는 '남-남 갈등'에 대한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동아는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보수단체의 반북시위는 인공기 소각에 대한 대통령의 적절하지 못한 유감표명으로 촉발된 것이 아닌가"라며 조선과 마찬가지로 노 대통령의 유감표명을 이번 사건의 원인인 것처럼 몰고 갔다.
중앙일보는 북측 기자단의 '폭력행사'를 부각했다. 그러나 조선과 동아처럼 조직위 측의 '유감표명'을 문제삼지는 않았다. 1면 <이번엔 조직위원장이 사과>에 이어 <취재일기-예의 없는 '손님'>에서도 중앙은 외신기자들의 반응을 인용해 북한 기자들이 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중앙은 "초대한 손님을 향해 도발적 문구를 내건 한국 보수단체의 행동은 확실히 지나쳤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며 수구단체의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먼저 물리적 공격을 가한 자신들의 잘못은 일절 거론하지 않고 서슬퍼렇게 주인 측만 나무라는 북한 측 태도도 분명 옳은 것은 아니다"고 북측 기자단의 행동 비판에 무게를 뒀다. 중앙은 사설 <북측 기자의 부적절한 폭력행사>에서도 "북측이 우리의 손님으로 온 이상 그런 행위를 대회기간만이라도 자제하는 것이 주최국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더 성숙한 자세"라며 수구단체들의 시위를 나무라면서도 "그러나 북측 기자들이 그 회견을 저지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북측이 대회 철수를 위협하며 일방적으로 대남 사죄까지 요구한 행위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중앙은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권리"라며 그 예로 "남쪽에선 미국 대통령은 물론 우리 대통령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날마다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중앙은 "법리대로 하면 대회당국은 해당 기자의 취재증을 회수하고, 경찰은 폭력행위를 조사해야 한다"며 "당국이 북측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고려해 오히려 유감을 표시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한 너그러움을 북측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수구단체들의 대구U대회 시위가 '잔칫상에 재를 뿌리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두 신문은 북을 자극하는 수구단체들의 무리한 행동과 이를 사전에 막지 못한 경찰을 비롯한 경비당국자들의 대응을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기자메모-분별없는 '잔칫집 시위'>에서 "또다시 대회가 무르익은 시점에서, 그것도 경기장 앞에서 시위를 벌인 것은 대회를 망칠 의도가 있었다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며 "반핵 반김도 좋고 집회·시위의 자유도 좋지만 때와 장소만큼은 제대로 가려서 할 수 있는 분별력과 상식이 요구된다"고 꼬집었다. 사설 <'U대회 충돌' 다시없어야>에서는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모처럼 스포츠를 통해 조성된 남북간 화합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며 "일부 시민단체가 북한 기자들이 드나드는 길목에서 이들을 자극하는 행사를 연 것은 그 명분과 의도를 떠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신문 역시 <취재파일-주인의 예의, 손님의 예의>에서 북한 기자단의 대응을 비판하면서도 "굳이 책임의 비중을 따지자면, 원인을 제공한 보수단체 쪽으로 기운다"며 "세계의 젊은이들 앞에 한민족임을 자랑하기는커녕 남북간 이념 간극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것 같아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사설 <민족화해 재뿌리는 행동 안된다>에서 "세계 젊은이들의 우정과 화합을 위한 제전을 반북·반김정일이라는 그들의 정치목적에 이용하려는 노골적인 의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라며 이를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경찰 등 경비당국의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에게 최소한 언론의 기본인 '사실보도'만큼은 제대로 해달라고 충고해 왔다. 그러나 이번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벌어진 수구단체와 북측 기자단의 충돌과 이에 대한 조직위원회의 '유감표명'과 관련한 수구언론의 보도는 '사실보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들은 이번 사태 역시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사실을 호도 했다. 북한 참가자들을 자극할 것이 뻔한 수구단체의 무리한 행동에는 침묵하고, 엉뚱하게 북한측의 태도와 사태를 수습한 조직위의 '유감표명'만을 부각시켜 비난했다.
조직위와 정부의 '유감표명'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왜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은 조직위와 정부가 '유감표명'을 했기 때문에 사태가 신속하게 매듭지어졌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가. 또한 왜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한총련 학생들의 미군 사격장 진입시위를 강하게 비난했음에도, 정작 수구단체들의 시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내세우는 이중적인 태도까지 보이고 있는 것인가.
민족화해와 분단극복은 성숙함을 전제로 가능하다. 언제 우리 언론은 자기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저널리즘의 정석대로 남북관계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대구대회를 둘러싼 '남남갈등'과 이를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보며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는 생각에 씁쓸할 뿐이다.
2003년 8월 27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