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정순균 국정홍보차장의 AWSJ 기고문 관련 사설 및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3.8.26)
외신에서 우리 언론상황을 '갑론을박'하는 상황이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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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균 국정홍보차장의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에 대해 한국기자협회와 신문이 일제히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한국기자협회가 22일 비판성명을 낸데 이어, 중앙일보(23일)와 조선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경향, 국민 등이 25일 정 차장의 기고문을 비판하는 사설을 일제히 내보냈다. 동아일보와 SBS는 기사를 통해 정 차장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이 정 차장의 기고문 가운데 공통적으로 문제삼은 부분은 "많은 한국의 기자들은 우선 전반적인 내용을 점검하고 중요한 사실에 대한 확인을 거치지도 않은 채 기사를 작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과 "(관료들은)이들 기자들에게 술과 식사를 함께 하며 정기적으로 돈봉투를 돌렸다"고 한 부분이다.
한국기자협회는 "기자들은 한 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시간과 정열을 쏟는 사람들"이며 "개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언론중재제도와 반론권 보장 등의 제도적 장치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 차장의 글이 "촌지수수 등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떨치기 위해 애쓰는 대다수 기자들의 인격을 심히 모독하는 것"이라며 "기자들을 일방적으로 왜곡"했다고 비난했다.
중앙일보 역시 23일 사설 <정부 인사들의 왜곡된 언론관>에서 정차장의 기고문이 "언론과 기자에 대한 폄하로 가득 차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중앙은 정차장의 기고문 내용 가운데 '중요한 사실에 대한 확인을 거치지도 않은채 기사를 작성한다'는 것과 '향응 제공 및 돈봉투' 문제를 거론하며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한 언론과 기자가 있다면 정면으로 밝혀라. 왜 밝히지 못하고 언론 전체를 음해하려만 드는가"라며 정 차장의 글을 '정부 차원의 오보'로 단정하고 "정부 차원의 분명한 사과와 조치를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23일 <한국기자 비방하는 글 홍보처차장이 외지기고>에서 정 차장의 기고문 내용을 '비방'으로 단정한데 이어, 25일 사설 <국민 욕보이는 정부의 언론매도>에서도 이를 비난하고 나섰다. 조선은 "반론보도란 기사의 잘잘못과 상관없이…반론권 차원에서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초보 상식을 그(=정 차장)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수만 건의 기사 중 정부가 문제삼은 것은 수십 건…그러고서 이렇게 주장한다면(=정부가 요청한 정정과 반론 중 80%가 타당했다) 이야말로 기초적인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왜곡이고 과장"이라며 현재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반론보도청구권'의 의미마저 왜곡하며, 마치 언론이 정확하게 보도를 하는데도 정 차장이 이를 왜곡하는 것처럼 몰고 갔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반론권'이라 하면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보도된 사실의 이해관계자가 기사와는 다른 내용의 견해까지 제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지만, 정 차장이 언급한 '반론'이란 현재 우리나라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다뤄지고 있는 반론보도청구권으로 '보도된 사실이 잘못된 경우 올바른 사실관계를 당사자가 직접 글로 작성하여 그대로 게재해 주도록 요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언론이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해 이에 대한 시정을 언론중재위에 요청한 것 중 80%가 타당했다는 이야기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가 마치 정부가 '반론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엄연한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이어 조선은 촌지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금 언론사 가운데는 제대로 봉급을 지급하지 못하거나 생활급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주는 등 갖가지 형태의 언론사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어느 특정 언론사 기자의 잘못된 행태를 그렇지 않은 다른 언론사가 책임질 수도 없는 일"이라고 이를 특정 언론사의 문제로 국한시켰다. 그러나 이 역시 어불성설이다. 정부 부처 내에서 운영되어 온 언론사 '기자단'의 폐쇄성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다. 중앙 언론사와 지방언론사, 주간지 등이 엄연히 구분되어 운영되었으며, 정부부처의 주요 접대 상대가 중앙 언론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를 '생활급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주는 영세한 규모의 언론사들의 문제로 전가한 것 역시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정 차장의 글을 두고 국정토론회에서 최영진 위원이 한 "기자들에게 술 사주고 하는 것이 공보관의 역할이다"라는 발언의 의미까지 왜곡하며 두 발언을 뭉뚱그려 노 대통령에 대한 '아부성 행동'으로 폄하하기까지 했다. 최영진 위원의 발언처럼 기자들을 접대하며 정부 관련 기사를 청탁하는 것이 과거 공보관이 해온 주된 역할 중 하나였다. 최 위원은 이를 바로잡자는 취지로 발언을 한 것인데 조선일보는 이 마저도 사실이 아닌 '아부성 발언'으로 매도한 것이다.
한국일보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의 기자들은 기본 중의 기본인 사실 확인도 제대로 않은 채 돈이나 밝히는 '파렴치한 집단'이 되고 만다"며 정부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국민일보는 "이 기고문이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한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에 맞추기 위한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며 "하지만 언론과 정부가 시소라도 타고 있는 것처럼 언론을 비난하고 모욕을 줌으로써 반사적으로 정부의 위상을 높이려는 그 단순한 발상이 딱하다. 어떻게 그런 발상으로 국정을 홍보할 수 있는가"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25일자 <정순균 차장 '자기 말' 벌써 잊었나> 제하 기사에서 정 차장이 인수위 시절 전경련 김석중 상무의 뉴욕타임즈 인터뷰에 대해 비판했던 것을 거론하며 "정부측이 어떤 조치를 내릴지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거론했다. 이어 동아는 당시 인수위 측의 강경한 사과 요구로 결국 전경련 김각중 회장 명의의 사과문을 내보냈으며, 감석중 상무는 좌천되었다고 언급하고 김 상무의 발언과 정 차장의 기고문 내용을 비교하는 표까지 실었다. SBS도 동아일보와 마찬가지로 25일 8시뉴스에서 김석중 상무와 정차장의 이번 기고문 문제를 비교했다. SBS는 "김상무는 영어 인터뷰가 잘못됐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인수위 대변인을 맡고 있던 정차장은 전경련을 몰아붙여 기어이 사표를 받아냈다"며 "그러나 이런 잣대는 스스로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경련 김석중 상무의 뉴욕타임즈 인터뷰 발언과 정순균 차장의 기고문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다분히 악의적이다. 당시 전경련 김석중 상무의 발언은 인수위가 진행해온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를 '사회주의'로 지칭하며 터무니없는 '색깔론'을 덧씌운 치졸한 공격이었다. 반면 정 차장은 언론의 문제를 정확하게 집어내지 못하면서 '향응'과 '촌지'가 마치 언론계 전체의 문제로 부각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김 상무의 터무니없는 '모함'과 정차장의 기고문을 동급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동안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왜곡된 보도태도에 대해 경계해 온 경향신문도 이번 정차장 기고문과 관련해서는 다른 신문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경향은 <홍보처 차장의 언론비방>이란 사설에서 정 차장의 글에 대해 "상식 이하의 비난과 흠집내기로 한국 언론을 폄하하고 있다"며 "그의 무차별적 언론 매도가 참여정부의 언론관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정부의 언론관 문제를 거론했다. 경향은 "기자는 특종 욕심 못지 않게 사실 확인을 지상명령으로 여기는 직업"이라며 "‘기자들이 술과 밥 얻어먹고 정기적으로 촌지나 챙기는 사람’이라는 식의 주장은 한국 언론인 모두의 자존심과 명예를 송두리째 짓밟는 폭언"이라며 "자신의 명예가 소중한 만큼 상대의 명예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번 경향신문의 사설이 경향신문으로 국한해 볼 때 지극히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경향을 비롯한 일부 신문이 '도덕성' 및 '윤리기준'의 측면에서 모범을 보여왔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언론계 전반에 '향응 및 촌지 문화'가 완전히 단절되지 못한 것 역시 사실이다. 정 차장의 기고문이 언론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집어내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성실하게 일해온 경향신문 기자들을 비롯한 많은 언론인들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하더라도, 경향신문마저도 외부의 지적에 대해 '반성'보다 '반감'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한겨레신문도 <정차장의 잘못된 기고문>이란 사설에서 이를 문제삼았으나, 다른 신문들과 접근방법에서 다소 차이를 보였다. 한겨레는 "정 차장은 엉뚱하게도 글의 초점을 기자 사회 비판에 맞춤으로써 제대로 된 반론도 펼치지 못하고 전선만 무한정 확대시키고 말았다"고 유감을 표했다. 한겨레는 문제가 됐던 정차장의 기고문 내용에 대해 "일부 신문의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태도를 꼬집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현상을 보편적인 것처럼 일반화함으로써 한국에서는 모든 언론이 매일 오보로 도배질을 하는 것처럼 해외언론에 비치게 했다"며 "한국기자협회의 성명처럼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떨치기 위해 애쓰는 대다수 기자들의 인격을 모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자협회와 언론들은 공통적으로 정 차장의 기고문이 기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듭 정순균 차장의 기고문이 언론의 본질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고 촌지나 향응 등 부정적인 문화를 언급해 적절치 못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 대해서도 유감이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굿모닝시티 대형비리사건에도 언론인 몇 명이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 검찰에 의해 확인되었지만 정차장 기고문 일부 내용, 다시 말해 '촌지 및 향응접대문제'는 아직도 근절되지 않은 우리 언론계의 부정적 단면임에 틀림없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지난 20일자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산업자원부 산하 원자력문화재단이 3박 4일 일정으로 환경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일본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 시찰을 지원했다고 한다. 이 시찰에 조선, 중앙, 한겨레를 제외한 7개 중앙 일간지와 3개 경제지, 방송사 등 16개사 20여명의 기자가 참가했고, 경비를 지불한 곳은 MBC 뿐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 시찰 과정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와 함께 30여 만원의 촌지까지 돌렸다고 한다.
지난 2002년에는 한나라당에서 일부 출입기자들에게 휴가비 명목으로 촌지를 살포해 문제가 되었으며, 같은 해 삼성전자는 생활가전 전략발표회에서 23명의 기자들을 상대로 1천여 만원 정도의 향응을 제공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국세청을 동원해 선거자금을 모금했던 97년 '세풍사건'과 관련해서도 당시 각 신문의 정치부장, 정치부 차장, 경제부장과 방송사의 제작본부장, 보도제작국장, 보도국장, 정치부장, 정치부 기자 등이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1년 11월 23일 전국언론노조는 창립1주년을 맞아 기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향응'과 '촌지'문화 근절을 위해 '자정선언'까지 한 바 있다.
우리는 언론계가 자신들에 대한 문제제기에 우선 반성하고 지적하기보다는 '반발하고' 나선 데 대해 아쉽고 부끄러운 심정을 감출 길이 없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로 굿모닝시티 관련보도를 들 수 있다. 지난 7월 16일 동아일보가 '여권의 핵심 관계자'의 입을 빌어 여야 정치인 5명이 윤창열씨로부터 거액의 로비자금을 받았다고 보도해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동아일보만이 아니었다. 당시 신문지면에 동아일보의 대형 오보와 관련해 민주당 신주류와 구주류의 '음모론'까지 거론되며 '아니면 말고 식'의 온갖 억측이 난무한 것을 독자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언론의 보다 큰 문제는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지 않는 문제를 넘어 '의도적으로' 자기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는' 행태라고 우리는 보고 있다.
우리는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이 18일자 <노대통령 대 언론>이라는 사설에서 한국의 언론상황도 잘 모르면서 대통령의 소송에 대해 왈가왈부한 것부터가 쓸데없는 '간섭'이었다고 본다. 거기에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의 '간섭'에 부화뇌동한 언론의 '국적'이 어디인지 묻고 싶기도 하다. 한마디로 외신의 지면에서 우리 언론상황이 갑론을박하게 된 상황이 참담하게 여겨진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싶다.
2003년 8월 26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