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총련 주한미군사격장 진입 시위’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 (2003.8.12)
'왜?'라고 질문하는 보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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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경기도 포천에 있는 주한미군 사격훈련장에 들어가 장갑차 점거시위를 벌였다. 이날 한총련의 시위는 신속기동여단(퀵 스트라이커 부대)의 한국 훈련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훈련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 한반도의 전쟁 위협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스트라이커 부대가 창설 이후 처음으로 해외원정 훈련을 한국에서 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주장에 귀 기울일 부분이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은 학생들의 시위 원인에 대한 보도는 배제한 채, 한총련 시위를 일제히 ‘불법?과격 시위’로 몰며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하는데만 급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선?중앙?동아 등은 사실 왜곡까지 서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11일 사설에서 한총련의 시위를 ‘난동’ “대한민국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으려는 도시게릴라형 공격”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한총련 학생들은 위협적인 소지품 없이 성조기와 선전물만 들고 미군 사격장에 진입한 것이다. 조선이 이를 두고 ‘대한민국을 뿌리부터 흔든다’고 표현한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것이며, ‘무력’ 사용을 기본으로 하는 ‘게릴라 공격’과 동일시 한 것도 한총련 시위의 폭력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킨 왜곡이다. 조선은 이에 그치지 않고 12일에도 <한총련 ‘게릴라 전술’ 본격화>라는 제목으로 “최근 한총련 학생들이 조직화된 ‘게릴라식 시위전술’을 펴자 경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한총련에 대한 부정적 여론몰이를 지속했다.
동아일보는 한총련을 “불법시위의 근원”이라며 ‘악의적 꼬리표’를 달았다. 한총련은 현행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어 ‘합법시위’ 자체가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다. 동아일보는 한총련을 무조건 ‘불법시위의 근원’이라고 매도하기에 앞서 한총련의 상황부터 제대로 보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들은 11일 사설에서 한총련 시위의 불법성을 강조하기 위해 미군 사격훈련장 시위에서 ‘성조기를 불태웠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이에 대한 미군의 심정을 대변하기까지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정부?한총련, 韓?美 同盟을 어쩔 셈인가>에서 “자신들의 훈련장에 시위대가 난입해 장갑차에 올라타고, 성조기를 태우는 장면을 보면서 미군 병사들은 분노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미 미국 내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굳이 한국에 미군이 주둔해야 하는가’라는 회의(懷疑)가 일고 있고, 그것이 ‘혐한(嫌韓)감정’으로 확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눈물’ ‘혐한감정’ 등 다분히 자극적인 어휘를 동원했다.
동아일보도 사설 <한총련 정부대책 단호해야 한다>에서 “미군 장갑차를 점거하고 성조기를 태우는 한국 학생들을 본 미국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미군이 땀 흘리며 훈련하고 (한국을) 지킬 필요가 있느냐’는 일부 미국 기자들의 불만은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며 미국 기자들의 입장에서 사태를 보았다.
중앙일보는 미군의 심정까지 묘사하지는 않았으나, 사설 <장갑차 시위 방치 책임자 문책하라>에서 “미군 장갑차에 올라가기 전에도 한총련은 이미 전국의 미군부대를 돌며 성조기를 불태우는 등 지속적인 반미시위를 벌여 왔다”며 한총련의 ‘폭력성’을 부각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등이 기사화 한 “아직까지 89, 90학번 같은 나이든 사람들이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임종석 의원의 발언 역시 왜곡된 것으로 밝혀졌다. 임종석 의원은 11일 보도자료에서 “‘89?90학번 배후조종’은 그 취지와 표현이 왜곡된 것이고 ‘배후조종’이란 표현도 쓰지 않았다”며 “다만 말미에 ‘고학번들이 오랫동안 학생운동을 하는 것은 건강한 학생운동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말을 일부 언론에서 왜곡해 보도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 같은 해명자료가 나왔음에도 또다시 12일 사설<한총련 배후의 30대 무직자들>에서 ‘89, 90학번 배후설’을 인용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이번 시위의 원인이 정부의 한총련에 대한 강경하지 못한 대응에 있는 것처럼 왜곡하며,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11일 사설에서 “정부는 더 이상 한총련 문제에 대해 미적미적한 입장을 취해서는 안된다”며 “또다시 ‘한총련 합법화’ 운운을 들먹이고, 난동 사태와 한총련 본질 문제는 불리 처리하겠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되풀이 할 것인가”라며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중앙일보도 <장갑차 시위 방치 책임자 문책하라>에서 “사태가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현 정부의 잘못이 크다”며 정부가 한총련 수배해제와 사면?합법화를 추진한 것을 비판했다. 이어 치안당국의 미온적 대처를 거론하며 “혹시라도 한총련에 무조건 관대한 것이 소위 대통령의 코드에 맞추는 것이라고 착각한 눈치보기는 아니었는지 걱정스럽다”고 이를 엉뚱하게 ‘대통령의 코드’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동아일보도 <한총련 정부대책 단호해야 한다>에서 “한총련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상당수 수배자를 불구속 수사키로 한 정부의 결정이 결과적으로 경찰 등 국가기관의 정상적인 기능을 저해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며 “시위 가담자는 물론 배후조종자까지 찾아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과 달리 경향과 한겨레는 한총련의 무리한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정부가 강경일변도로 대응하는 것은 경계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한총련 파장과 정부 대응>에서 “학생들의 단선적 사고와 과열행동은 대중의 지지는 물론 한반도 상황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한총련의 행동을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 대처와 관련해 “총리에 이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대미 사죄성 발언을 한 것은 주권국가로서 지나친 저자세가 아닌가 싶다”며 미군에 대한 정부대응을 비판하고, “시위과정에서 학생들이 법을 어겼다면 그에 해당하는 처벌을 하면 그만이지 추가 강경처벌 모색 얘기가 나오는 것은 감정적 대처로 비친다”며 정부의 강경대응을 경계했다. 경향은 이어 12일에도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매카시즘적 행태’를 비판했다.
한겨레신문도 사설 <과격하면 공감 얻지 못한다>에서 “시위방법이 무모하고 과격하면 시위 자체 뿐아니라 주장의 정당성까지도 함께 잃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한총련의 시위방식에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한총련 전체를 매도한다거나 한총련 합법화 노력을 중단한다면 그것은 또다른 무리를 낳을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언론은 노동관계 보도를 비롯한 일련의 보도에서 사건의 발생 원인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으면서, 사건의 현상적 모습만 부풀려 시위의 과격성 등에 초점을 맞추어 결과적으로 진실을 왜곡해 왔다. 이번 한총련 시위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언론은 한총련의 폭력성을 부각하며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총련이 이번 시위를 통해 주장하고자 한 미국 스트라이커 부대의 군사훈련과 이것이 몰고 올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그나마 한겨레신문 정도가 11일 사설과 12일 칼럼을 통해 한총련의 시위 목적을 언급하며 실전 배치 부대인 스트라이커 부대가 한반도에서 훈련하는 것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했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다.
입으로는 ‘국익’을 외치면서 정작 스트라이커 부대의 한반도 실전 훈련의 의미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이 우리 언론의 현 주소다. 이런 언론들이 한총련의 시위를 놓고 왈가왈부할 자격이나 있는가.
아울러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 일각은 이번 사태를 두고 ‘한총련 이적규정 고수’로 몰고 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이 문제제기하고 있는 스트라이커 부대의 한국 내 실전훈련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어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한총련 ‘때리기’에 앞서 학생들이 왜 스트라이커 부대의 훈련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는지부터 검토해야 할 것이다.
2003년 8월 12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