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민언련 영화분과 성명(2003.7.4)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며 한미투자협정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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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가 다시 한미투자협정의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은 왜 한미투자협정의 선결 조건으로 매번 스크린쿼터를 문제 삼는가. 그것은 한국의 영화시장이 한미투자협정으로 얻을 수 있는 이권을 능가하는 유무형의 막대하고도 잠재적인 수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투자협정(BIT)은 미국 투자자들에게 '최혜국 대우'와 '내국민 대우'를 보장함으로써 투자를 유치하고,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인식을 세계에 인식시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의도와 달리 한국사회에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험한 제안을 담고 있다. 우리가 제안한 협정의 내용을 보면 현지인 고용이나, 기술 이전 등 외국인 투자가 국내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떠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반면, 환경이나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미국 투자자의 이익을 감소시킬 경우 정부에 직접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독소 조항이 들어있다.
따라서 투자협정이 거대 자본을 가진 미국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은 확실하지만, 이 땅에 생산적인 외국 자본의 투자를 증대시킨다고 확신할 만한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경제관료들은 이 협정이 체결되면 40억 달러 정도의 외국인 투자자금이 들어오고, 이로 인해 한반도 전쟁위험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다만 '적극적인 추측'으로 환산된 수치에 불과할 뿐이다.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는 세계은행조차도 2003년에 내놓은 연례보고서에서 BIT가 외국인 투자를 증대시킨다는 증거가 거의 없음을 인정했다.
또한 미국이 한미투자협정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 '스크린쿼터 축소' 요구는, 고부가가치의 전략적 산업성과 문화 전반에 걸쳐 전지구적 파급력을 가진 영상 문화 산업에 할리우드가 결정적인 지배력을 확보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현재 영화산업은 '제작-배급-상영'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작보다는 '배급' 중심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스크린쿼터를 축소(혹은 폐지)한다는 것은 바로 이 '배급'의 영향력이 극대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할리우드의 배급사들은 막대한 자본력과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한국 영화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스크린쿼터라는 보호막을 걷어낸 후 이들이 자행할 횡포는 이미 경험한 90년대 배급관행으로 미루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은 흥행이 보장된 블록버스터 영화 배급권을 미끼로, 의무상영에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기타 영화들의 '묶음판매'를 시도할 것이고, 이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극장 상영 영화들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막강한 권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배급 중심의 시스템은 결국 한국영화 상영일수 축소로 이어지고, 상영일수의 축소는 투자 위축과 그로 인한 제작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확실한 상영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흥행을 위한 투자도, 예술을 위한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는 원하는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뿐 아니라 우리 영화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마저 잃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영화는 시장점유율 40%를 웃돌면서 눈부신 르네상스기를 맞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크린쿼터의 보호 아래서 특정 장르에 편중된 저급한 오락 영화만을 양산해내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중 현상은 우리 영화계와 관객들이 보다 다양한 문화를 양성하고 수용하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로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이지, 상황 논리에 밀려 스스로 포기할 영역은 결코 아니다. 산업과 문화의 양가적 성격을 가진 영화의 특성상, 대중에 의해 축적된 자본은 새롭고 다양한 장르를 구축하고 예술성 높은 작품들을 양성하는 토대로 작용할 것이고, 이는 다시 왜곡된 영화 시장을 바로잡는 힘으로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본의 욕망이 지배하는 '무한경쟁 시장체제'에서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들과 '자유경쟁'으로 맞서기에 한국영화는 아직 물적 질적 토대가 취약하다. 특히 영화는 한 번 시장을 잠식당하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무역협정을 통해 영화시장을 완전 개방한 캐나다, 멕시코 등의 나라들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우리는 아직 한국영화의 스크린쿼터 축소를 논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나아가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야기시킬 한미투자협정의 위험성을 분명히 경고한다.
2003년 7월 4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영화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