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허버트 주한 미대사 '여중생' 성명』관련, 조선·중앙·동아보도에 대한 논평(2002.11.29)
등록 2013.08.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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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동아는 미선이 효순이를 두 번 죽이지 말라 
 

 


미군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의 주범인 미군 두 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실종되버린 이 어처구니없는 판결은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어제(11/27) 허버드 미 대사가 '유감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부시 대통령이 유가족과, 한국정부, 한국국민에게 유감의 뜻을 전해왔다'고 말하면서도 '많은 참관자들이 공정한 판결이었다는 말을 했다'는 내용을 빠트리지 않아 사건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한 것도 아니고 수사권을 한국사법당국에 넘기는 형태의 소파 개정의사를 밝힌 것도 아닌, 이 기만적인 사과에 대해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하며 과다하게 의미 부여했다.
이번 성명을 가장 크게 부각시킨 신문은 역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오늘 1면과 3면 머리기사를 모두 관련 기사로 도배했다. 1면 머리기사에서 조선은 <부시, 사과표명>이라는 제목으로 아예 부시가 직접 사과한 것처럼 크게 키워 보도했다. 3면 머리기사에서도 <반미분위기 확산 우려한 듯>이라는 제목으로 '부시사과배경'을 자세히 보도하고 그 아래에 <"부시, 깊은 슬픔과 유감 표명">이라는 제목으로 '주한미대사 성명' 전문을 보도했다.
이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예의 '한미동맹 강화'를 부르짖고 나섰다. <'부시 사과'와 앞으로의 한·미 동맹>라는 사설을 통해 "비록 육성은 아니지만, 그간 국내적으로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 대통령의 사과가 필수적이라고 요구해온 주장이 있었던 점에 비춰볼 때 '부시대통령의 사과'는 의미있는 진?quot;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조선은 이어 "한·미동맹의 새 좌표설정 작업은 한·미동맹을 시대에 걸맞게 강화하는 것이 그 목표임을 명심해야 한다" 며 '한·미동맹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한·미동맹 강조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내년이 한·미 동맹 5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인 만큼, 한·미동맹의 과거와 현재를 검토·평가하고 미래의 협력관계를 찾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수 있는 적기"라고 주장, 거듭 '동맹'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자극적 언사와 충동이 한·미관계 전체를 흔들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시민단체들의 잇따른 문제제기를 나무라는 어조로 마무리짓고 있다.


동아일보는 지면배치와 크기에 있어서는 조선일보와 달랐다. 1면에서 보도한 것은 부각시켰으며 머리기사가 아닌 우측 상단에 3단으로 보도했고 관련기사역시 3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조선과 달리 사회면에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선일보와 오십보 백보다. 동아일보 사회면 기사는 제목이 <"책임통감 … 고의적 의도 없었다">로 허버드 대사와 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의 유감표명을 전달하는데 여념이 없으며 이 기사아래에는 <대책위 "매일 오후 6시 규탄집회">라는 기사만 실었을 뿐 미국의 기만적 태도에 대한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는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사설은 더욱 가관이다. <부시 대통령도 사과했으니>라는 제목을 달아 '상황 끝'이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사설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 사과한 것은 확산되고 있는 반미사태를 수습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로 시작,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군 관련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며 의미부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설은 "부시 대통령이 가해 미군에 대한 무죄 평결 이후 거세진 한국민의 분노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며 부시의 심정을 알아서 헤아리기에 바쁘다. 이처럼 미국의 마음을 알아서 헤아리기에 바쁜 동아는 정작 항의하는 국민들에 대해서는 자제를 당부하며 "자칫하면 누구도 원하지 않는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이제는 분노표시보다는 미국이 실제로 변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잘못의 소재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듯 동아는 서둘러 한미관계의 회복을 주장하고 나섰다. 바로 사설은 "한미관계는 이번 사태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고 전제한 뒤 "부시 대통령의 결단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더욱 긴밀해지기를 기대한다"며 한미동맹의 강화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의 이런 태도는 이미 어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어제(27일자) 동아는 1면 우측 상단기사에서 <"부시대통령 언급할 기회 있으면 여중생 희생 사과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허버드 대사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 바로 아래에는 <"SOFA 개정 노력">이라는 제목으로 이회창 후보의 TV 토론 내용을 실었다. 미군 범죄 문제로 온 국민이 공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진실을 밝혀내고 국민들의 분노담긴 요구를 여론화하기는커녕 미 대사의 인터뷰를 실어 그들의 변명을 전달하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의 입장을 부각시켜 친창친미의 '시너지효과'를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이는 진실을 말해야 할 언론이 오만하고 무책임한 미국과 본질적으로 친미적이면서 소파개정을 말하는 이후보의 이중성을 가려주는 보도행위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중앙일보도 문제가 많다.
중앙은 <"유족과 한국민에 슬픔과 유감…" / 부시 '여중생 사망' 사과>라는 제목으로 동아와 비슷한 크기와 내용으로 보도했다. 이어 사회 1면 (35면)에서는 <'미군무죄' 규탄시위 잇따라 / "부시 언론에 공개사과를">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사회 2면(34면)에는 <"여중생 사망 사고 지휘계통 문제 조사">라는 제목으로 '주한 미대사·사령관 일문일답'을 싣고 있다. 역시 미대사 성명의 기만성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아니 문제의식은커녕 이날 중앙은 사설제목을 <부시 대통령 사과 잘했다>로 뽑아 노골적으로 칭찬하고 있다. "비록 주한대사를 통한 간접적인 형식의 사과지만 그 내용은 사건에 대한 슬픔과 유감, 그리고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한 양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다짐하는 등 진솔함과 진지함을 읽을 수 있다"며 "규탄시위가 과격화하고 한국민들의 분노가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부시 대통령이 한국민의 정서를 제대로 파악한 것은 한·미 관계의 앞날을 위해 정말 다행"이라고 주장, 미국에 대한 낯뜨거운 칭송을 아끼지 않고 있다. 더욱 분노할 만한 내용은 "무죄평결된 두 미군을 한국법정에 다시 세우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한국법정에서의 재판을 미리막고 "부시 대통령이 사과한 이상 감정을 누르고 현실적인 수습방안 강구에 나서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며 사태무마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 신문의 친미적 보도태도는 외신은 물론 미국신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태도다. 도대체 이들 신문은 어느 나라 언론인가.


최근 시민단체들의 항의시위에 대한 한국 경찰의 폭력진압과 '불법시위엄단'만을 주장하는 정부의 어이없는 태도는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평소 정권비판에 열올리던 신문들은 다 어디 갔는가. 국민들의 정당한 의사표시에 대해 백주 대낮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공권력을 방조하는 언론 역시 폭력행사의 한 당사자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지금 미군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에 대한 분노는 지역, 연령, 이념을 초월하여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조차 소파개정을 말하는 상황이다. 반복되는 미군범죄와 한국민의 억울한 희생, 우리정부의 굴욕적인 태도가 불평등한 소파에서 비롯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재 여중생 공대위 등 각 시민단체들은 부시의 공개사과, 한국사법부에 의한 사건 재조사, 한·미 행정협정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본회는 조선·중앙·동아일보에 엄중히 경고한다. 조선·중앙·동아는 국민 앞에 사죄하고 친미사대주의적 보도행태를 중단하라. 그리고 이번 사건의 재조사와 한국정부에 의한 재판 실시, 소파협정 개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라.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적 자존심마저 짓밟고있는 조·중·동의 태도는 범죄자 미군과 함께 국민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2년 11월 29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