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14일(화)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대국민 사과'기자회견을 연 박민 KBS 사장. 그는 13일(월) KBS 사장으로 임명된 직후 유례없는 자정인사를 감행했다. 현재 KBS는 시사보도 프로그램 편성 삭제, 라디오 진행자 및 뉴스 앵커 갑작스러운 하차 등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오보라서 문제라는 것일까, 공정한 뉴스가 아니어서 문제라는 것일까? 박민 KBS 사장이 취임 하루 만인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든 생각이다.
박 사장은 여러 약속을 했다.
무분별한 속보 경쟁하지 않겠다, 팩트체크를 활성화해 오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오보 내면 사과하겠다, 불공정 논란이 일면 잘잘못을 따져 책임을 묻겠다….
속보 경쟁 지양, 팩트체크 같은 건 언론사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역할이자 책무이자 윤리 규범일진대 이런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좋게 말해) 의아했다. 더욱 이상했던 건 ‘오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과 ‘불공정 논란 책임 묻겠다’는 것, 즉 저널리즘에서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방식과 공정성 지향 그 자체의 태도였다.
먼저 공정성. 공정성이란 무엇인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이야기를 딱 절반씩 실으면 공정한 기사인 걸까? 검찰 수사 결과와 수사 대상의 반박을 딱 절반씩 실으면 공정한 기사인 걸까? 뉴스 공정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시각이 있으나, 적어도 이러한 뉴스를 공정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오히려 공정성이 너무나 모호하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빌 코바치·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은 뉴스를 둘러싼 익숙하고 유용한 여러 개념이 사실은 너무 모호해서 저널리즘의 근본 원칙으로 여기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공정성은 너무나 주관적인 개념이어서 실제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지침을 제시하지 못했다. 반면에 균형성은 너무 제약적이어서 자주 진실을 왜곡하는 보도 방법이었다.” 불공정하다고 지적하지만 잘 쌓아 올린 논리 같은 건 없다. 정권 비판적인 보도가 불공정한 것이냐는 반박 질문에 ‘일장기 경례’나 ‘뉴스타파 인용 보도’ 등의 사례를 드는 것 외에는 별다른 수나 논리가 없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오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박 사장은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에서(11월 7일) “확인이 되지 않은 사실에 관해서는 무분별한 속보 경쟁을 중단하고 정확한 보도를 목적으로 할 것”이라면서 “속보경쟁에서 조금 뒤처지더라도, 확인이 되지 않은 사실은 보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확인이 되지 않은 사실’이란 있을까? 기자 개인이 모든 현장에 가 있지도 않을뿐더러 모든 것을 알 수도 없는 현실적 한계에서 그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란 명명백백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기자들이 맞닥뜨리는 사실은 누군가를 통해 들은 전언, CCTV나 자료 등을 통해 본 장면이나 정보 정도의 수준일 것이다. 이를 ‘크로스 체크’하면서 진실에 가까워져 간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저널리즘에서의 진실성이란 ‘정도’나 ‘수준’의 문제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하지 않겠다는 말은, 어떤 기사는 영원히 보도할 수도, 보도될 수도 없을 것이란 독재 선언과 다름없다.
이미 ‘땡윤뉴스’라는 비판이 있는 데다 시사프로그램이 줄줄이 폐지된 상황에서 진실, 공정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러나 어떤 원칙이 있는 양 하면서 무원칙·무대포로 일을 처리한다면 이 원칙부터 바로 잡아야 하는 것 아닐까? 언론계에서 흔히 인용되는 정확성, 진실성, 책임성, 독립성, 투명성, 객관성, 균등성, 기계적 중립 등은 규범적 상상 속에서 존재할 뿐 우리의 생각처럼 명확하지도,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지도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저널리즘 선언(오월의봄)』) 그래서 불공정한 뉴스를 때려잡겠다거나 오보는 보도하지 않겠다는 박 사장님 생각이 참으로 궁금하다. 박 사장님, 공정한 뉴스는 무엇인가요? 진실은 무엇인가요?
조선희 미디어감시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