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좌우명은?’
해도 뭘 이런 걸 해놨나. 얼마 전 오랜만에 접속한 웹사이트에서 비밀번호를 찾으려고 하니 비밀번호 힌트가 이렇더라고요. 저는 일이나 마음이 힘들 때면 좋은 글을 찾아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만큼 좋아하는 격언과 명언도 많고요. 생각나는 몇 가지를 -심지어 한동안 마음에 새기던 ‘존버가 승리한다’도 넣어봤는데!- 써봤는데 하나같이 답이 아니었습니다. 거듭된 답 맞추기에 실패하고 이메일로 비밀번호를 변경하며 겨우 알아냈죠. 제가 답으로 적은 말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걸 잃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웹사이트를 가입한 시기에 저는 연인이든 친구든 -잘 지내니들?-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고 낙심하던 때였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도 잃고 나서 후회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건강인데요. 2022년 12월 코로나19에 확진된 후로 건강 상태가 나날이 하강하고 있습니다. ‘이건 코로나일 수밖에 없다!’라고 느꼈던 증상이 양치질하며 치약 냄새를 맡지 못한 거였는데요. 이상하게 들리실 수 있지만, 처음엔 신기하고 재밌었습니다. 뉴스에서 말하던 발현 증상을 그대로 내가 겪고 있다니! 진짜 냄새도 맛도 못 느끼네? 하고 말이죠. 2023년 여름 지금 제 상태를 안다면 그리 가볍게 생각하고 주변인들에게 재밌는 경험담을 나누듯 떠들진 않았을 겁니다.
지금 저는 코로나19 확진 이후로 몸이 조금만 피곤해지면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냄새를 맡지 못하니 당연지사 맛도 못 느낍니다. 처음 몇 번이야 ‘오히려 좋아, 이번 기회에 다이어트?’라고 생각했지, 날이 갈수록 고역이더라고요. 그 맵짠맵짠 맛있는 엽기떡볶이를 먹어도 입 안이 뜨겁고 콧물이 날 뿐이지, 뭘 먹는지 모릅니다. 뭘 먹어도 씹는 촉각만 느낄 뿐이라 재미도,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다 몸이 좀 나아지면 스멀스멀 냄새를 맡고 맛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때마다 한평생 당연하게 여겨왔던 오감 느끼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하곤 합니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익숙하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게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 요즘, 또 하나 잃을까 걱정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공영방송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일어날 거라곤 예상했지만 놀라운 속도와 강도로 진행 중입니다. KBS 수신료 분리고지,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감사와 압수수색, YTN 공기업 지분매각, TBS 지원조례 폐지와 예산 삭감 등 일사천리로 공영방송이 정권에 할 말도 못 하게 만들기 위한 압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7월 28일에는 이명박 시절, 소위 ‘MB아바타’로 불리며 언론탄압 선봉에 섰던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지명했습니다. 언론공작 기술자라는 별칭에 걸맞게 지난 1일 출근길에선 “공산당 신문·방송은 사실이나 진실을 전하는 게 아니라 주장을 전하기 때문에 언론이 아니라 기관지라고 한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런 사상을 가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위원장이 됐을 때 벌어질 일들이 벌써 두렵습니다.
우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공영방송을 과거 몇 번이고 경험했습니다. 비판적인 시사 프로그램들이 폐지되거나 축소되고, 친정부 홍보 방송으로 전락했던 때가 선명합니다. ‘비 오는 날은 소시지 빵이 잘 팔린다’는 보도가 저녁뉴스로 방송될 때 나온 헛웃음을 잊지 못합니다. 그때 그 시절 반드시 전해져야 할 사실은 숨겨지고 진실은 가려졌던 일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민언련은 요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오마이TV와 공동으로 기획한 유튜브방송 ‘언론아싸’입니다. KBS, MBC, YTN, TBS 공영방송 4사 노조위원장들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언론탄압 실태를 신속 정확하게 시민들에게 알려드리기 위해 만든 방송입니다. 3일(목) 방송을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밤 10시, 시민 여러분과 공영방송 공공성을 지켜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나누고자 합니다.
△ 언론아싸 1회(2023/8/3) 방송 갈무리 화면. 이진순 민언련 상임공동대표와 방송인 오윤혜 씨가 MC로, 강성원 KBS본부장, 이호찬 MBC본부장, 고한석 YTN지부장, 송지연 TBS 지부장 이 고정패널로 언론장악 실태를 밝히고 공영방송 공공성을 어떻게 지켜낼지 이야기한다.
‘언론아싸’는 또다시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고 싶진 않은 우리들의 몸부림일 겁니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시민입니다. 공적 책무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묻고 따지고 보완하는 건 당연합니다. 이런 작업이 이뤄지기 위해선 공영방송을 잃지 않는 게 선행돼야 할 겁니다. 언론장악에 맞서 싸우는 민언련과 공영방송 언론인들에게 힘과 응원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 주신다면 우리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공영방송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김봄빛나래 교육콘텐츠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