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정이 쏘아올린 작은 신뢰 | 조선희 미디어감시팀 활동가
등록 2023.06.1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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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다단계 주가조작단 연속 보도’를 한 오승렬 PD, 서효정 기자, 임지수 기자(왼쪽부터) ⓒ민주언론시민연합

 

가수 임창정 씨는 최근 불거진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 즉, 라덕연 씨 일당의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히는 고액 투자자입니다. 그는 30억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신은 더 큰 빚이 생겼다며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임창정 씨가 이들 모임에 참석해 ‘아주 종교야’라고 외치는 영상은 다들 보셨을 텐데요. 그 영상을 비롯해 주가조작 의혹을 선제적으로 보도한 언론사가 있습니다. JTBC입니다.

 

민언련에서는 석 달 전부터 ‘이달의 좋은 보도상’ 수상팀을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좋은 보도의 존재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함입니다. 시민 여러분의 관점에서 ‘저 기사 어떻게 쓰게 됐을까’, ‘저 프로그램 어떻게 만들게 됐을까?’하고 궁금해하실 만한 팀을 인터뷰합니다. 3월엔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을 보도한 KBS를, 4월엔 ‘청소년 자해’ 문제를 지방정부 예산 분석을 통해 접근한 부산MBC·대구MBC의 <예산프로젝트 빅벙커>를 만났습니다. 5월엔 JTBC를 인터뷰했지요.

 

JTBC 보도는 조금 놀랍습니다. 첫 보도 당일 아침, 특정 종목 주가가 갑작스럽게 하한가를 칩니다. 금융당국도 증권업계도 의아해하고 있는데 JTBC가 ‘여기엔 주가조작이 있다’고 보도합니다. 주가조작이 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JTBC는 ‘올해 초부터 취재해 왔다’고 기사에서 밝혔습니다. 몇 개월 동안 취재하고 있던 종목이 어느 날 일어나보니 하한가를 찍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또 여기에 연예계·법조계·정재계 거물급 인사가 등장한다면요? 저는 취재·보도 과정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JTBC 수상팀을 인터뷰하며 이들이 ‘좋은 보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먼저 이들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취재 한가운데서 날벼락처럼 맞은 하한가. ‘지금 보도하는 게 맞을까?’ 무척 고민한 듯 보였습니다. ‘보도해서 괜히 더 폭락하는 게 아닐까?’, ‘또 다른 리스크는 없을까?’와 같은 걱정이죠. 어렵게 보도를 시작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주가조작단에 대한 온갖 추측과 루머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난무하다고 말하자 “그런 추측이 너무 많아가지고~”라며 모든 걸 투명하게 밝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고 답해줬습니다. 심지어 취재 중에도 ‘보도를 먼저 할까? 신고를 먼저 할까?’ 고민한 과정도 있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JTBC는 신고를 택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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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희 미디어감시팀 활동가와 이달의 좋은 보도상 인터뷰 중인 JTBC ‘다단계 주가조작단 연속 보도’팀 ⓒ민주언론시민연합

 

그리고 이 고민을 ‘팀플레이’를 통해 해결해 나갔습니다. 특히 이 사건은 모두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특이 사건입니다. 투자와 투기, 피해와 가담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돈을 억대로 투자하고도 피해를 입었다고 하고 심지어는 라덕연 씨까지 ‘나도 피해자’라 주장합니다. JTBC 취재팀도 혼란을 겪은 듯 보였습니다. 여기 가면 ‘내가 피해자’, 저기 가도 ‘내가 피해자’라고 하는 대혼란 속에서 그들은 “계속 서로에게 물어보았다”고 답했습니다. “이 사람 피해자 맞는 것 같니, 아닌 것 같니?” “아닌 것 같아”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눴다는 겁니다. 보도할 사건의 모호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편집국의 팀플레이가 중요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원칙이 있었습니다. 보도할지 말지 고민하던 때 팀 내 논의를 통해 ‘아는 것 이상으로 부풀리지 말고 취재한 데까지 쓰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일종의 보도 원칙을 만들어 둔 것이죠. 또 임창정 씨에 대해 보도할 때 (그가 매우 유명인이기 때문에 송사에 휘말리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오히려 영향력 있는 사람이고, 유명한 사람이고, 말에 효과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실명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특별한 거 없으면 무조건 실명을 밝힌다고 원칙을 정해놨어요.” 공인의 위력을 과대평가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답변은 이것이었습니다. “‘말’은 기사에 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말로 들은 것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들을 끌어모았어요. 그리고 확인이 되는 것들만 기사로 내보냈죠.” 임창정 씨를 포함한 고액 투자자들 이름을 쭉쭉 공개하길래, 파일로 정리된 투자자 명단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들은 답이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문서 같은 건 없었고 대부분 이래저래 말로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JTBC는 ‘말’을 그대로 기사에 싣지 않았던 거죠. 요즘 기사엔 ‘말’뿐인데 ‘말’은 기사에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답변은 신선함을 넘어 어딘가 감동이기까지 했습니다.

 

지난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2’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30%로(신뢰함 30%, 신뢰도 불신도 하지 않음 45%, 신뢰하지 않음 25%) 46개 조사국 중 40위를 기록했습니다. 조사국 평균인 42%와 비교해 봐도 높지 않은 수치입니다. 저 또한 민언련에서 뉴스를 모니터링하며 어느 날은 불신 수치가 확 높아졌다가 어느 날은(특히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상식 날) 약간 떨어지곤 합니다. 그러다 이런 기자들을 만나면 신뢰도가 확 상승하고요.

 

좋은 보도를 만드는 편집국을 엿보고 싶은 언론인이 있다면 이번 JTBC 인터뷰를 추천합니다. 어떤 고민을 통해 보도가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편집국과 비교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민 여러분에게도 추천합니다. 기사를 보고 ‘악惡’ 밖에 남지 않았을 때, 한국엔 믿을 만한 언론이 없는 것 같을 때 볼만 합니다. 언론 신뢰도는 베일에 가려진 뉴스 생산 과정과 편집국 내부가 드러나고 그 투명성이 높아질수록 올라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달의 좋은 보도상 수상자 인터뷰’에 더 많은, 더 다양한 언론인들이 출연하길 바랍니다.

 

조선희 미디어감시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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