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다. 2022년 12월 30일 파트1이 공개됐으며, 2023년 3월 10일 파트2 공개 예정이다. ⓒ넷플릭스
드라마보다 더한 학교폭력 문제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OTT 영상물 문제는 기회가 있을 때 언급하도록 하고, 오늘은 근래 본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 얘길 할까 합니다. 사실 재미보다는 송혜교 배우가 연기한 문동은 역할이 어떻게 학교폭력 가해자들에게 복수할지, 일종의 ‘스펙터클’을 기대하며 봤습니다. 학교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그때부터 복수를 결심, 검정고시와 교대 졸업을 거쳐 학교폭력 가해자 중 하나인 박연진에게 접근, 그의 딸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됩니다. 딸을 볼모로 잡은 동은이는 앞으로 어떻게 복수할까요. 또 연진이는 어떤 파국을 맞이할까요.
문동은은 복수 하나를 위해 십수 년을 인내합니다. 대단하지요. 자퇴 후 공장을 다니며 교대에 들어가고, 그 어렵다는 초등교사 임용을 거쳐, 연진이가 사는 ‘세명시(극 중 지명 이름)’ 내 초등학교로 옮기기 위해 세명초등학교 이사장 사생활을 캐내 부임을 협박합니다. 동은에겐 복수가 전부니 인생 전부를 건 게 당연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난한 과정을 견뎠을 생각을 하니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를 갈고 준비해서 상대의 근본 약점을 노린 것도 그렇지만, 특히 긴긴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면서도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감내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동은이처럼 인내심을 갖고 견뎌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언론개혁이 제 인생 전부는 아니지만, 언론은 한 번에 바꿀 수 없고,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되니 꾹 참고 견뎌보자고요. 특히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 모니터링을 진행하면서 ‘언론 진짜 안 바뀌네’ 하는 좌절감이 들었는데요. 이태원 참사라고 보도의 근본 문제가 달라진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사 당시 사진이나 영상을 무분별하게 썼던 보도들, ‘누가 밀었네’ 하며 원인을 특정인으로 몰아갔던 보도들, 2차 가해성 막말을 재생산하는 보도들. 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기사 댓글 등을 긁어와 조회수 장사에 이용하는 부류입니다. ‘2차 가해’를 정파적으로 해석하며 정말 문제인 ‘2차 가해 행위’를 지적하지 않는 언론의 문제 또한 정파적 편향성으로 저널리즘 원칙이 무너진 한국 언론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요. 정치인들의 2차 가해 발언이 많은 기사 제목에 직접 인용되었는데, 2차 피해를 부추기는 이런 보도 또한 따옴표 저널리즘의 한 사례입니다.
민언련에 오래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좌절을 느끼고 ‘언론 안 바뀐다’ 투정하는 저를 보니 어딘가 머쓱하네요. <더글로리>를 보면서 ‘그래. 민주화는 한판 승부가 아니라고 했어! 동은이도 18년이나 견디고 나서야 이제 복수를 시작하잖아. 언론도 언젠가는 바뀌겠지… 힘내자!’라고 생각한 저 자신도 어딘가 우습고요(근데 진짜에요). 하지만 이렇게 매일매일 다짐하지 않으면 ‘인류애’와 ‘언론애’가 조금씩 닳기 때문에 가끔, 사실은 ‘자주’ 이런 최면이 필요하답니다. 사실 긴 싸움이 될 거란 건 알고 있기도 하고요.
버텨야 할 날이 많으니 딱 하나, 동은이와는 다르게 살고 싶어요. 동은이처럼 연진이를 매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지옥으로 몰아세우진 않는 거요. 몇 달 전 언론에 관심 많은 대학생들 상대로 강의를 나갔는데, 이런 질문을 들었습니다. “문제 기사 클릭 안 하고, 보게 되면 ‘이런 기사 쓰지 말라’고 댓글 달고, 심의 같은 걸 넣어 봐도 언론은 잘 안 바뀌는 것 같아요. 언론을 바꾸려면 도대체 어떤 걸 해야 할까요?” 이런저런 말을 하다 마지막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저녁을 먹거나, 술 한 잔 하러 가세요.” 언론을 바꾸겠단 커다란 목표도 중요하지만, 이걸 해낼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단 하루도 잊어본 적 없어.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 수가 없거든.” 유명한 동은의 독백 대사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증오를 멈추고 매일 행복한 일을 조금씩 찾으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끝까지 갈 수 있거든요. 회원 여러분도 뉴스를 보고 라디오를 들으며 증오하고 좌절하는 시간이 많으시겠지만, 그것보다 더 자주 좋아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드시길 바랄게요.
조선희 미디어감시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