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뒤늦은 하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웬 여름휴가인가 싶으시겠죠? 민주언론시민연합에도 1년 전 노동조합이 생겼고, 10개월간의 긴 협상 끝에 단체협약과 임금협상이 타결되면서 노동자에겐 더없이 소중한 5일의 하계휴가가 생겼습니다. 봄에 시작한 노사협상이 겨울에 마무리되면서 여름휴가를 겨울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여름휴가 기간 연장에 노사가 합의해 오랜만에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1월 24일,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에 마음이 쓰여 휴가 동안에도 계속 뉴스를 챙겨보게 됐습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휴가가 끝나기 전인 지난 금요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파업 중단이 가결되면서 16일간의 화물연대 파업이 마무리됐는데요. 언론에는 화물연대가 ‘빈손 철회’했다거나 ‘손해배상청구서 폭탄’을 들고 복귀했다는 기사가 등장했습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안전과 더 나은 근로조건을 위해 투쟁에 나서는 당연한 일조차도 언론은 불법 파업이라 비난하며 색안경 낀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노동자들의 안전뿐만 아니라 도로 위의 모든 운전자와 보행자를 위한 안전지킴이 법입니다. 화물 차주에게 적정한 운임을 보장해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막자는 취지인데요. 개인사업자인 화물차주가 수익을 위해 무리하게 노동하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국민 누구나 노출될 수 있는 교통사고 위험도 줄이는 대안이죠. 하지만 정부·여당은 화물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경제 논리를 앞세우며 파업을 ‘북핵 위협’에 견주거나 민주노총을 ‘종북·반미단체’라고 주장했고, 언론은 법과 원칙 앞세운 정부가 화물연대에 완승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귀족 노조’라며 화물 연대를 비난하는 기사도 쏟아졌는데요. ‘귀족’과 ‘노동자’라는 부조화한 단어를 남용하며 언론은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평균 시급보다도 적게 버는 화물 노동자를 고연봉자로 만들었습니다. 급여가 적어야 파업의 정당성이 생겨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화물 노동자 급여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살핀 팩트체크 기사가 등장하고 나서야 조금 잠잠해졌습니다. 찐 부자인 ‘귀족 사주’엔 ‘친서민’ 이미지를 부각하고,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에겐 귀족이라 포장하는 기사를 보면 헛웃음이 납니다.
더욱 황당한 일은 기자도 노동자이자 노조원으로서 언론사에 임금 인상과 더 나은 복지를 요구하며 투쟁하지만, 한쪽에선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고 처우개선을 위해 투쟁하는 다른 노동자를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한다는 것입니다. 기사를 취재하고 작성하는 노동과 화물차를 운전하는 노동 모두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가치 있는 노동인데 말이죠.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은 노조원만이 아니라 비노조원도 함께 파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 여파가 컸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론에는 노조원과 비노조원을 갈등만 보도됐지, 함께 연대하고 있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안전을 보장받고자 한 노동자들의 연대가 큰 힘을 발휘했지만, 언론이 이를 감춘 것이죠.
지난 1년 동안, 노동조합원으로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동료 조합원들이 큰 힘이 됐습니다. 노동자가 연대할 때, 그 힘은 커집니다. 화물연대 파업처럼 말이죠. 화물차주가 아닌 노동자로 바라보고 우리 모두가 연대할 때, 사회 전반의 노동 조건이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요? 뾰족하게 날 선 비판 기사가 아닌 노동자인 기자가 다른 노동자들과 손잡는 기사가 늘어나길 노동자이자 활동가인 저도 바라봅니다.
서혜경 미디어감시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