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마주 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김선우 시인의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마지막 시구입니다. 5월 14일 진행된 민언련 2022 광주순례 일정엔 전일빌딩245 방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온 전일빌딩을 기억하며 빌딩 여기저기 핏빛 흥건한 죽음과 통곡의 증언이 남아 감돌며 떠다닐 것이고 또 그게 빌딩을 무겁게 인상 지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안내한 해설자는 어찌 보면 조금은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을 전해줬습니다. 5.18항쟁 기간이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따뜻했던 시간이었다고 증언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분명 슬픔이나 공포와는 모순이라 할 수 있는 정서입니다. 5.18항쟁 시기 광주에서는 진압군에 대항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이 무장하였고 치안이 부재한 무정부 상태와 다름없었음에도 도둑질이나 약탈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국가폭력에 저항하면서도 시민들은 강한 연대 의식으로 서로를 살피고 챙기는 등 사회 질서는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유지된 것입니다.
이것은 제게 파리코뮌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1871년 3월 18일 있던 파리코뮌은 역사상 최초로 시민과 노동자들이 쟁취한 혁명적 자치정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5.18항쟁처럼 철저히 고립되었고 무참한 학살로 끝난 두 달간의 찰나 같은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파리코뮌을 두고 수많은 해석이 있지만, 저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두 달간 파리가 상비군이나 경찰이 없는 상태에서도 범죄가 거의 없었고 질서가 놀라우리만큼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파리코뮌에 참가한 화가 구스타프 쿠르베는 코뮌이 유지되던 파리를 두고 어느 편지글에서 ‘참으로 낙원’이라고까지 썼다고 합니다.
파리코뮌이 세계사적으로 워낙 큰 사건이라 저명한 사상가들에게 언급되긴 하지만, 저에게는 그저 지구 저편에서 일어난 낯선 역사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80년 5월 광주와 1871년 파리는 서로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파리코뮌이 더 이상 낯선 사건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도시는 저마다 겪은 곡절의 시기에 지상에서 공동체가 이룰 수 있는 이상적인 양상과 그것의 짧디짧은 지속이 비극으로 끝나버린 안타까움,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 시기를 아름답게 그리며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5.18항쟁 기간이 파리코뮌 때보다 훨씬 짧았고 정권을 쟁취한 사건도 아니지만, 시민의식으로 저항하고 시민 안전과 질서를 유지한 경험은 우리 사회에 순도 높은 시민의식을 남겨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목에서 방향타 역할을 하며 2017년 촛불혁명까지 가능하게 했으리라는 생각으로까지 흘러갔습니다.
대선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광주순례 참가자 사이에서는 이번 대선 결과가 촛불혁명 당시 심판받은 세력들에게 다시 정권을 넘기게 되었다는 것과 민주적 가치의 퇴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한편, 우리가 광주에 들렀던 시간, 망월동 묘지를 찾는 젊은 세대들의 방문이 놀랄 만큼 많았습니다. 젊은이들이 곳곳에서 묘지석을 읽으며 진지하게 함께 토론하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억하고 배우려는 그들과 우리의 연대가 어쩌면 ‘새로운 혁명’의 시간을 준비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새로이 찾아오는 혁명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마주 보는 모두를 따뜻하게 빛나도록 해주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광주에서는 오월의 바람이 여전히 불고 있었습니다.
서수정 기획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