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에는 저마다의 냄새가 있습니다. 도로의 벚나무엔 꽃봉오리가 맺히고 나무에 새순이 돋는 등 봄이 완연한 지금은 봄꽃향기, 비라도 오면 다음 날엔 포근한 흙냄새가 나기도 하죠. 저는 산골에서 자란 탓인지 꽃향기보단 흙냄새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흙냄새를 맡는 건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흙도 풀도 잘 없기 때문이겠죠.
무엇보다도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봄마다 다른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냄새가 좋아하는 봄 향기를 감춥니다. 정확히는 격년마다 한 번씩 나는데요, 바로 ‘이사’ 냄새입니다. 수도권에 연고가 없어 상황 따라 이동하곤 하는데, 2년마다 세간살이를 옮기려니 짐이 적은 1인 가구임에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지금 사는 집은 ‘이번엔 오래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옮긴 곳입니다. 그 탓인지 ‘전세금을 올리거나 관리비를 2배로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마음이 복잡합니다. 어디로 이사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당장 내달부터 퇴근 후나 주말에 쉬지 못하고 돌아다니며 방을 보러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와서 말이죠.
‘돈도 빽도 없는’ 지방 출신 청년인 제겐 서울에 산다는 것 자체가 부담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사 고민은 ‘내가 계속 서울에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으로 번졌습니다. 과거엔 꾸준히 모으고 대출이라도 하면 어떻게든 살 곳 정도는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방을 구하기 전 살펴보면서 이미 내 집 마련은 ‘불가능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심판받은 정책 책임자의 공천 금지’ 원칙을 제시한 것을 보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기도 했지만, 현실성이 부족하고 구체성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 당내 반발이 심하다는 기사를 보니 아쉬움은 곧 실망이 되었습니다. 정부에서 청년들의 주거안정을 위한답시고 추진한 청년주택 등은 주거비용 책정 기준이 주변 시세인 탓에 부동산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지금 상황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현실을 깨달아 실망은 더 커졌죠.
‘그렇게 힘들고 돈 없으면 고향으로 가 좋아하는 흙냄새 많이 맡으면 될 것 아니냐’라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습니다만 고향으로 가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그곳엔 그나마 살 만한 주거공간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거든요. 무엇보다도 활동가로 계속 살아가고 싶은데 고향에는 제가 뜻을 두고 있는 분야에 맞춰 활동할 수 있는 단체가 없기도 하고요.
문화, 교육 등 생활 인프라도 낮은 수준이고, 또래도 얼마 없어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도 무리가 생길 겁니다. 이미 서울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거겠죠. 고향에 질려 서울로 올라온 사람이 지방으로 내려가는 건 그곳의 단일화된 질서에 다시 자신을 편입시킴을 의미하고, 결국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아집니다.
제가 약 3년 전 쓴 글에 “쫓겨나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어렵다. 고향에는 기회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버텨야 한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꿈을 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꿈을 이루기는 힘들다”라는 문구가 있더라고요. 3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고민을 하는 걸 보니 이번에도 내려가는 건 글렀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는데요, 제 고민은 ‘꿈과 성장 가능성 대 안정’ 정도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정적으로 본다면 ‘기본적인 의식주 포기 대 ‘나’의 포기’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마감에 쫓겨 중언부언하는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록 저는 올해 봄 냄새를 맡지 못하겠지만, 이 글을 읽는 회원분들은 모쪼록 밖으로 나가 봄 내음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봄이잖아요.
김창용 기획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