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객관주의’ 허상과 ‘스피커들 전략’에 포획된 언론홍원식 (동덕여대 ARETE교양대학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으로 시작된 혼란이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혼란이 오래 지속되는 것에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은 듯하다. 12월 3일 내란의 밤, 국회에서 총을 든 군인들에게 용감하게 카메라를 들이밀던 언론의 빛나는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12.3 내란 이후 여러 언론은 우리 공동체 회복엔 관심도 없는 듯 정쟁만 재생산하며 혼란을 가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란 이튿날부터 ‘윤측’이라는 이름으로 쏟아내는 갖가지 망언은 고스란히 언론을 통해 따옴표로 옮겨졌고, 이는 도심 한복판 거리에서 민주질서를 정면으로 위협하는 교리로 자리 잡아 공동체를 향한 실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란사태 지속에 언론 책임도 크다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2024년 12월 3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자 보좌진들과 야당 당직자들이 이를 막고 있다. ⓒ오마이뉴스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심각한 위협 앞에서 언론이 이토록 무기력한 것은 언론의 ‘객관주의’에 대한 오래된 허상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객관주의는 실제 객관적 사실을 추구하겠다는 본질적 사명에서 기인하기보다 언론사의 산업적 필요에서 출발했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 추구의 책임보다는 기계적 중립이나 따옴표 인용 같은 기술효율적 관행에 더 가까운 것이다.
우리가 경험으로 얻는 현실은 늘 억견(doxa 어떤 근거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기 나름대로 상상하는 소견)과 쉽게 왜곡될 수 있는 여러 제약 속에서 비롯한다. 이에 대한 회의(skepticism)는 실체적 사실을 추구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언론의 덕목이다. 저널리즘의 취재와 보도에서 사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마땅한 윤리적 사명은 필연적으로 회의와 교차확인의 행위적 수행을 필요로 한다. 즉, 자신이 보고 듣고 취재한 바에 대한 의심과 재확인, 그리고 수많은 주장과 의견에 대한 합리성과 정당성을 따져보기 위한 질문, 이에 기반한 참/거짓에 대한 판단 노력의 책임이 언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본질적 덕목인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회의를 통한 사실 추구의 수행 책임은 뒤로 미루고, 이를 이른바 객관적 보도라는 미명 아래 정치인이나 관료 등 유력 ‘스피커들’의 목소리를 받아 전달하는 포장 기술에만 익숙해져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저널리즘을 통해 갖가지 사안에 대한 수많은 주장과 논쟁은 넘쳐나지만, 정작 이를 통해 우리가 실체적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결국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과 혐오와 같은 감정적 반응만 남게 된다. 우리 사회가 끝없는 갈등과 논란을 겪으며 더욱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것과 언론의 기계적 중립과 ‘받아쓰기’ 관행은 서로를 키우면서 맞물려 있다.
기계적 중립과 받아쓰기 관행, 도구가 되다
▲ 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논란과 관련해 브리핑하는 김은혜 당시 대통령실 홍보수석 ⓒYTN
유력 스피커들은 언론의 무기력한 관행을 너무나 쉽게 자신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한다.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 이미 확인했듯, 아무리 말이 안되는 주장이라도 일단 우격다짐으로 던져놓으면 언론은 여야 50대 50의 기계적 균형을 맞춰서 보도한다. 정치적 술사들은 실을 짜서 천을 만들 듯 이 관행을 교묘하고 능숙하게 써먹는다.
특히 술사들이 국회의원이나 정부에서 공식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관료인 경우, 그들의 주장은 지위 자체만으로도 마치 권위를 갖는 주장인 것처럼 다뤄진다. 어떤 헛소리를 내놓아도 사실 여부에 대한 의심과 질문 없이 그 자체가 일정한 무게를 갖게 되고, 그에 대한 비평은 오히려 정파적 해석인 양 쉽게 ‘논란’으로 치부된다. 관련 언론학 연구들은 발언을 곧 사실로 간주하는 보도관행이 출입처가 공공기관 취재원일 경우 더욱 강하게 작용하여, 취재원에게 발언 사실 여부를 질문하는 것이 신뢰관계 훼손이라 생각해 검증 질문을 피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2월 3일 밤 모든 정치행위를 금지하고 의사들을 처단하겠다는 어이없는 포고령 발표와 국회에 총을 들고 군인들이 난입한 상황을 온 국민이 생중계로 목도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이른바 ‘윤측’ 스피커들의 온갖 주장이 ‘기계적 균형’으로 다뤄지며, 지금까지 야금야금 내란에 대한 국민의 사실판단을 분산시켜왔다.
때마침 생소한 기관들의 여론조사 결과와 극우 종교단체들의 대규모 시위가 등장했다. 이들은 내란 여부에 대한 언론의 판단을 보편적 사실영역에서 ‘여야의 정쟁’이라는 상대적 판단영역으로까지 끌고 내려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과 검찰은 ‘구속취소’와 ‘즉시항고 포기’라는 결정을 내리고, 자신들의 관료적 지위와 법률적 용어를 통해 그럴 듯한 모습으로 포장했다. 언론은 그저 이에 대한 여야의 주장을 ‘정쟁’으로 전달하는 무력한 모습이 답답하게 반복되고 있다. 나아가 최근 언론은 마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마저 개개인의 정치성향에 따라 진보-보수의 상대적 영역에서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인 듯 서사적 프레임을 배경으로 부여하는 위험천만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기성 ‘엘리트 권력’에 대한 회의와 감시
12.3 내란이 본질이 친위 쿠데타 성격을 띠고 있음을 감안하면, 필연적으로 정부 관료와 검찰, 법원, 국회 등 기존 권력이 내란과 완전히 무관할 수 없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현재 기성제도 체계에서 결정되고 있는 내란과 헌법 유린에 대한 관료-제도적 판단을 단순전달하는 게 언론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여길 그런 녹록한 상황이 전혀 아닌 이유다.
헌법재판소 판단이 미뤄지며 혼란을 더하고 있는 지금 언론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사실 판단의 여러 층위에서 작용하고 있는 기성 엘리트 권력에 대한 회의와 비판적 감시를 수행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존재적 기반은 민주주의 지향 위에 있는 것이고,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근원적 목적에 충실해야 할 순간이다. 민주주의 절체절명의 이 순간 ‘사실 추구’라는 목적 아래 오랜 역사 속에 다져진 제도 권력에 대한 회의, 권위에 굴하지 않는 용기, 시대의 정의를 찾아가는 사명감 같은 덕성(virtue)이 여전히 언론인들에게 존재하고 있음이 보여지길 간절히 기대한다.
*민언련칼럼은? <민언련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