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따옴표 뒤에 숨은 언론, 스스로 존재이유 말살할 것인가
이희영(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장)
등록 2025.03.27 09:06
조회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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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내란과 언론 긴급토론회 © 민주언론시민연합 

 

내란사태로 드러난 받아쓰기 언론 폐해

 

12.3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내란사태는 사안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그 후 드러난 우리 사회 갖은 병폐가 더욱 큰 놀라움을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눈에 띄는 부문이 법조와 언론이다.

 

법조계 각 기관, 전·현직 법조인들이 견강부회식 논리와 지엽말단에 천착하는 얄팍한 법 기술로 실질적인 내란 종식을 방해하는 작태는 분노와 개탄을 자아낸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가치 판단의 준거가 될 충실한 정보전달이라는 본연의 역할은커녕 저잣거리에서 벌어지는 온갖 터무니없는 소란을 생중계하는데 골몰하는 모습으로 혼란과 여론 양극화를 부추기며 시민들의 스트레스를 가중하고 있다.

 

내란사태 초기부터 언론은 위헌, 위법인 계엄을 획책한 내란 우두머리 및 외환죄(일반이적죄) 피의자 윤석열과 내란 중요임무 종사 피의자 김용현, 그 대리인들의 주장을 검증 없이 속보라며 쏟아냈다. 위헌적인 계엄 발동을 옹호하고 극우 폭력을 선동하면서 수익을 챙기는 전광훈, 전한길 등의 발언은 지금도 매일 여과 없이 보도되고 있다.

 

여당 국회의원 등 일부 정치인과 소수 법학자들이 계엄과 내란의 위헌, 위법성을 희석하며 윤석열의 복귀를 촉구하는 주장 역시 연일 기사화되고 있다. 급기야 윤석열이 진두지휘한 내란의 사실관계와 위법성을 부정하는 걸 넘어서 “야당이 오히려 내란 세력, 국헌문란 세력”이라고 강변하는 나경원, 오세훈, 권영세, 홍준표 등 소위 여권 중진이라는 자들의 말이 포털 뉴스 제목을 장식한다.

 

민주주의와 헌정질서 와해 방조자가 된 언론

 

윤석열 일당과 폭력적인 극우 일부가 목소리를 내던 계엄 초반과는 달리 점차 공당인 국민의힘과 일부 법조인, 학자들이 계엄을 합리화하며 극우와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으니, 이들의 말을 아예 무시할 수만은 없는 언론도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발언이 틀린 주장, 고의적인 거짓말, 근거 없는 음모론인 경우조차 기본적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검토나 추가 취재 없이 이들의 말을 단순 전달하는 기사들은 헌정질서가 위기에 처한 지금 상황에서는 사회적 해악이 되고 있다.

 

권력자, 가진 자, 유명 인사, 전문가들의 발언은 사실에 반해도 독재와 쿠데타를 옹호하며 법 해석을 곡해하고. 민주주의 질서 내 각종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해도 아무런 검증 없이 뉴스와 기사가 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또 이들은 여론 지형으로 봐도 전문가 집단 내 비율로 봐도 소수에 불과하지만 언론은 균형 보도라는 명목으로 이들의 목소리에 헌정수호를 위한 계엄 반대 또는 윤석열 탄핵 지지와 동등한 시간과 지분을 할애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주장은 계엄선포권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법에 명시돼 있으니, 윤석열이 한 짓처럼 대통령이 정치공학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하거나 수틀리면 군을 동원하여 계엄을 선포해도 된다는 억지나 다름없다. 그러나 헌법이 명시한 계엄 관련 조항은 대통령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권 침해라는 엄중한 결과가 예정된 계엄 선포의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한 취지다.

 

‘존재 의의’ 망각한 언론을 향한 분노

 

우리 역사가 피눈물로 쟁취해낸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무력으로 파괴하려는 행위를 왕정에서나 통할 ‘통치행위’라는 전근대적 법이론을 끌어와 합리화하고, 최고 권력자의 오판과 정서장애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는 계엄 발령을 ‘계몽령’이라는 불쾌한 조어로 치환하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 선정성 외에 어떤 기사 가치가 있는지 언론은 답해야 한다.

 

계속 누적되어 임계치를 향해 가는 시민들의 분노와 피로감의 일단은 현재진행형인 내란을 지속시키는 세력에게 커다란 확성기를 쥐어준 언론을 향하고 있다. 따옴표 안에 숨어서, 철 지난 속보·단독 경쟁을 벌이는 몰가치한 관행에 매몰된 기사를 양산하는 언론은, 걷잡을 수 없는 기술 변화와 매체의 다변화 속에서 수십 년 넘게 회자되어 온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를 스스로 재촉하고 있다.

 

공적인 지원을 받는 언론이 당장 법적인 제재가 없다고, 눈앞의 수익에 도움이 된다고 사회를 좀먹는 내란옹호 받아쓰기 기사를 계속 내보낸다면 수많은 개인들의 검증 불가능한 유튜브 채널이나 AI로 대체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민언련칼럼은?
<민언련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