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봄호][여는 글] 내란과 내전의 시대, 우리가 넘어야 할 세 개의 고개
등록 2025.03.1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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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과 내전의 시대, 우리가 넘어야 할 세 개의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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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민언련 이사

 

우리는 지금 종결되지 않은 내란과 심리적 내전의 엄중한 위기 속에 있습니다. 12·3 계엄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정면으로 타격하는 반헌법적 친위쿠데타입니다. 망상에 빠진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할 국민의 군대와 경찰을 국민을 체포, 구금, 처단하는 데 동원하고, 입법부를 ‘범죄자 집단의 소굴’로 규정하며 봉쇄하고 마비시키고자 했으며, 언론과 출판을 계엄사의 통제하에 두고 비판적 언론에 대한 단전 단수 봉쇄를 기도한 폭거입니다.

 

계엄은 해제되었지만 내란은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과 극우언론은 계엄이 부정선거와 국회 파행으로 인해 불가피했다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주장을 엄호하며 ‘반헌정주의에 저항하는 국민기본권 사수’의 프레임을 ‘국민의힘 대 민주당의 정쟁’ 프레임으로 전도하고 선관위와 사법부, 헌법재판소의 정당성마저 부인하며 폭력으로 침탈하려 합니다. 극우 유튜버들과 광신적 종교집단의 내란 옹호와 폭력 선동은 경쟁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급기야 심리적 내전국면을 초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지난 시절 여러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궤도에 안착시켰다는 우리의 자부심과 낙관론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상황에 대해 엄정하고 냉철한 현실 인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는 특히 다음 세 가지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지난 수십 년간 피땀 흘려 쌓아온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본 틀마저 하루아침에 유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 사회 권력 구조와 정치제도가 가진 근본적 취약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총체적 전환과 개혁 없이는 이런 폭거와 독재로의 회귀가 재발할 가능성을 온전히 차단할 수 없습니다.

 

둘째, 근거 없는 음모론과 허위조작정보를 앞세운 막가파식 선동이 국민을 현혹하고 민심을 왜곡해서 공론장의 총체적 파괴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국회 탄핵소추 이후, 탄핵 반대와 국민의힘 지지 여론이 반등하는 추세에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여론조사의 편향성이나 기술적 오류를 지적하는 것으로 자기위안을 삼아선 안 됩니다. 터무니없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중국개입설에 반신반의하는 국민이 늘어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징조입니다.

 

셋째, 윤석열 계엄을 통해 발호한 극우세력은, 윤석열 탄핵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인용된다 할지라도 향후 조직된 정치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법적 판단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는 점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윤석열 일당이 연일 억지와 궤변을 늘어놓는 이유는 실상 이런 극우파의 정치세력화와 내전 상황 유도를 위한 정치적 책략일 수 있습니다. 혐오와 적대에 기초한 극우세력의 전면적 부상은 우리가 평등과 호혜의 국가공동체로 존립할 수 있느냐 여부를 좌우할 만큼 위협적인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상황의 위험을 과대평가하거나 미래를 비관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차피 탄핵이 인용될 가능성이 높으니 윤석열이 파면되고 정권교체가 되면 다 해결될 거라고 믿는 안일함으로는 절대로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2017년 박근혜 탄핵은 촛불광장의 시민항쟁이 성취한 역사적 쾌거였습니다. 그러나 촛불시민은 정권교체에 안주해서 개혁의 고삐를 제도정치권에 선선히 내주고 말았습니다. 제도개혁 없는 인적교체, 지도자의 선한 의지에 대한 기대만으로는 구조적 개혁을 이뤄낼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지난 8년간의 뼈저린 체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2025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내란세력을 단호히 격퇴하는 대전을 치르는 한편, 그간 차일피일 미뤄왔던 사회대개혁의 과제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Two-트랙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트럼프의 미국과 시진핑의 중국이 격돌하는 국가이기주의와 팽창주의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 국가경제를 지켜낼 것인지, 날로 심화되는 기후위기 속에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생명공동체를 이룰 것인지, 경제양극화와 자산격차 확대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 파탄 난 민생과 복지를 회복할 것인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대량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정보인권을 지켜낼 것인지, 혐오와 적대가 만연한 정치양극화를 해소하고 어떻게 호혜와 숙의의 국가공동체를 건설할 것인지,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긴박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구시대적 법과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사회적 대전환을 이루기 위한 싸움을 이제 본격화해야 합니다. 개헌을 비롯해 전면적 제도개혁에 과감히 착수하고 그 전 과정에 시종일관 시민 주도권이 관철될 수 있도록 감시 견제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둘째, 음모론과 허위조작정보의 창궐을 절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음모론은 확증편향과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이미 드러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오류를 시인하거나 정정하려 들지 않는 태도입니다. 터무니없는 허위정보를 무한반복하고 전파하는 것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음모론자들은 민주주의의 기둥인 공론장을 병들게 하는 치명적 바이러스입니다. 음모론에는 좋은 음모론과 나쁜 음모론이 따로 없습니다. 그 출처가 어느 쪽이든 좌우를 막론하고 음모론은 합리적이고 성찰적이어야 할 공론장의 질서를 파괴하는 대량살상무기와 같습니다. 특히 인터넷 언론으로 등록되지 않은 개인유튜브 채널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극단주의 세력이 선호할만한 허위정보를 생산해내고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것을 인용하고 유포함으로써 공적 아젠다로 증폭시킵니다.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되, 역사적 사실을 호도 및 왜곡하거나 혐오와 차별을 합리화하고 테러와 살육을 선동하는 사이비언론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도적 통제와 관리가 필요합니다.

 

셋째, 공영방송은 공론장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비판적 언론인에 대한 압수 수색과 체포 구속을 통해 언론을 장악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공영방송 자체를 초토화하고자 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회와 같은 국가기관을 낙하산 인사로 장악하는 한편, TBS 지원조례 폐지를 필두로, YTN을 사영화하고, KBS 시청료 분리징수로 재정의 목줄을 죄어 축소를 유도하며, MBC에 대한 편파심의와 무더기 벌점으로 재승인 탈락을 유도해 공영방송을 해체하려 했습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복귀는 정권의 향배와 무관하게 앞으로도 이러한 공영방송 침탈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필터버블과 확증편향이 횡행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은 사실을 검증하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진실을 발굴하는 국민 공론장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으나 실행되지 못한 방송법 개정과 사장후보 시민추천위원회 법제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공영방송 이사진 다수를 정부 여당이 임명하는 현재의 방송법은 정권의 절대반지와 같습니다. 절대반지는 누가 끼든 재앙입니다. 파괴해 없애버리는 것, 그리고 그 권한을 시민의 집단적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최선입니다.

갈 길은 멀고, 넘어야 할 고개도 험준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함께 손잡고 나아갈 동료들이 있습니다. 무도한 윤석열의 폭주를 저지한 것은, 계엄 당일 무장한 군경 앞에 맨몸으로 나서고 탄핵소추가 될 때까지 여의도 전체를 뒤덮은 수백만의 시민이었고, 남태령의 밤을 연대와 교감의 공간으로 만들고 한파와 폭설 속의 철야시위를 키세스 축제로 만든 발랄하고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슬기롭고 지혜로운 시민의 힘을 믿고 긴 안목으로 과감한 실천을 결행할 때입니다. 늘 그래왔듯 민언련은 시민 공론장과 민주주의를 위한 역사적 여정에서 선두에 서야 합니다.

 

▼날자꾸나 민언련 2025년 겨울호(통권 230호) PDF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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