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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투위 50주년] 내란을 비호하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내란을 비호하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50주년을 맞아 -
오늘로 조선투위가 결성된 지 50주년을 맞는다. 박탈당한 언론의 자유를 되찾아 올바른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기자 32명을 조선일보가 신문사에서 추방한 것이 50년 전 3월 6일이었다. 그러나 지난 50년 동안 조선일보는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었다.
그로부터 50년 동안 조선투위는 독재 권력에 빼앗긴 언론을 되찾고 그 언론을 바르게 세우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의 언론은 과연 달라졌는가? 윤석열의 내란 사태를 다루는 주요 언론의 보도 태도가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의 보도를 보면서 또다시 분노하고 있다.
언론을 한다는 신문사가 어떻게 내란을 비호할 수 있단 말인가? 법원도 대법원 행정처장도 적법하다고 밝힌 네 차례의 공수처 체포영장에 대해 계속 시비를 걸더니, 수사를 거부하는 윤석열을 조사하려고 강제 구인하려는 공수처를 ‘막무가내 공수처’라고 비난했다. 최근에는 ‘정치권의 개입과 군사령관의 진술’로 내란이라는 프레임이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재판소를 계속 흔들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윤석열이 우리의 헌정 질서를 무참히 파괴하는 내란을 저질렀으며, 끊임없이 거짓말과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 사태의 본질이다. 윤석열의 내란은 나라를 50년 전의 끔찍한 독재 시대로 되돌리려는 것이었다. 망상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고서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용기 있는 국민들의 결연한 저항과 국회의원들의 단호한 저지로 쿠데타를 막았기에 망정이지, 그것이 실현되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민주주의와 인권은 파괴되어 사라지고, 절대 권력 앞에서 국민들은 자유를 잃고 억압당하며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잡혀가 죽었을 것이고, 정당한 이유 없이 끌려가 감옥에 갔을 것이며, 언론의 자유를 빼앗긴 채 암흑 시대를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라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인데도 조선일보는 본질적인 문제는 깔아뭉갠 채 온갖 시비 거리를 동원하여 윤석열의 내란 사태를 ‘내란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 있다. 윤석열과 그 측근들의 말을 여과 없이 받아쓰는 무책임한 보도로 윤석열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내란을 일으켜 나라를 파멸로 몰아넣은 윤석열의 책임을 준엄하게 묻고, 밥 먹듯이 하는 윤석열의 거짓말과 궤변의 정체를 드러내어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이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언론의 범죄다.
윤석열의 내란 사태에 대해 한국의 주류 언론들은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앞장선 것도 그들이었으며, 보도와 논평을 통해 그의 과오를 덮어 주고 비호하여 내란을 책동할 수 있는 여론의 토양을 만들어 준 것도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방대한 지면을 동원해 노골적인 편파·정파적 보도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더니, 이제는 헌정 질서를 무너뜨려 나라를 파탄 내고 있는 그의 반역 행위마저 비호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에 부역하고, 독재 시대에는 독재에 부역하더니, 이제는 내란에 부역하고 있다. 이런 신문을 어떻게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역사의 중요한 계기마다 나라와 국민을 배신하고, 올바른 시대 정신에 거역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가로막아 온 신문, 이런 신문이 왜 아직도 이 나라에 있어야 하는가? 일찍이 사라졌어야 할 신문이다.
조선일보는 ‘보수 언론’이 아니라 ‘극우 언론’이다. 민주주의와 법치를 부정하는 언론, 내란을 비호하는 언론이 어떻게 ‘보수 언론’일 수 있는가? 오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 세력의 광기도 언론과 관련되어 있다. 극우 언론이 군사독재 시대의 냉전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우리 사회의 비판 세력을 좌파, 빨갱이, 종북 친북 세력으로 모함하는 극우적 사고와 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퍼뜨리면서 증오를 조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런 행태는 오랜 기간 정치적 극단주의를 낳고, 사회를 분열시키며 증오를 확대해 왔다. 요컨대 모든 극단주의는 ‘악’(惡)이다. 극우도, 극좌도 악이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잊으면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실감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과거 박정희와 전두환의 계엄령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나라에 얼마나 끔찍한 참화를 가져왔는지를 잊지 않고 깨어 있었다면, 내란 세력은 감히 계엄령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군사독재 시대의 언론을 청산하여 이를 정화하고 바로 세웠다면, 오늘의 언론이 감히 내란을 비호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해방 후 일제 식민지 시대를 청산하지 못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과거의 악한 시대를 청산하지 못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검찰과 언론이 독재 정권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라는 것을 뼈아프게 체험했으면서도 그것을 청산하지 못했다. 나치 시대를 철저히 청산했던 프랑스와 너무도 대조적이다. 프랑스는 나치 부역자들 가운데 특히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을 엄중하게 처벌했다. 프랑스인들은 나치 시대를 청산한 후 이런 말을 남겼다.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를 조장하는 것과 같다.” “카인의 죄는 아벨에서 끝나지만, 지식인의 죄는 무한하다.”
이제 80대의 노년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50년 동안 꿈꾸었지만, 아직도 이루지 못한 구악 언론 청산의 과제를 오늘의 젊은 언론인들에게 부탁하면서,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인들이 보여주었던 결연한 의지를 되새겨 본다.
2025년 3월 6일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