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칼럼_
취재 없는 받아쓰기, 내란을 애국으로 둔갑시켰다김서중(민언련 이사·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 2월 10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12.3 비상계엄은 온 국민을 경악시킨 내란행위였다. 다행히 내란사건 수사와 사법 처분이 시작되었고, 탄핵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대한민국 법체계와 상식에 따라 내란으로 처벌되고 역사의 웃지 못할 한편의 소극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대표적인 보수언론들조차 초기에는 비상계엄 선포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논조를 보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변하고 있다. 마치 다시 내란이 일어나는 듯하다. 내란 동조세력들이 반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거도 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반국가세력이란 ‘유령’을 척결하겠다고 나선 대통령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집단이 뭉치고 있다.
내란을 애국으로 뒤바꾸는 왜곡된 소통
우리 사회 왜곡된 소통이 이런 변화를 설명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극우 유튜버들은 허위조작정보로 ‘애국’을 부추겼다. 기존 사법체계를 좌파 법조카르텔이라며 색깔론으로 덧칠하고,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면 사법부 판결에 불복하는 폭동이 필요함을 암시하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혐중 정서에 기대어 중국 관련성을 제기하는 등 확신을 증폭시켰다. 선거관리위원회 연수원에 있던 중국인 해커 99명이 체포돼 미국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허위조작정보도 퍼트렸다. 극우성향 신인균TV가 의혹을 제기하고, 극우성향 매체 스카이데일리가 받고, 극우성향 정치인 황교안이 또 다른 극우성향 매체 파이낸스투데이 칼럼을 통해 증폭시킨 허위조작정보는 SNS, 탄핵반대집회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헌정파괴 행위가 애국행위로 둔갑했다.
극우 유튜버들만의 문제일까? 미국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휘트니 필립스는 그의 책 <미디어는 어떻게 허위정보에 속았는가>에서 미국 기성언론이 친트럼프부터 나치주의자들의 가치 없는 주장까지 전달함으로써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하고 결국에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도록 도와주었다는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한국 언론 역시 극우세력의 준동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며 허위조작정보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특정 언론의 무비판적 받아쓰기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공조본)가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하러 갔을 때 일부 언론은 불법 영장이라는 대통령 측 억지 주장만을 부각하거나 기껏해야 체포 영장을 집행하겠다는 공조본과 공방이 있었다고 처리할 뿐이었다. 공조본의 정당한 법 집행을 거부하는 행위의 불법성 문제가 영장의 불법성 논란으로 치환됐다. 설 연휴 일부 언론은 비상계엄이 내란이 아닌 구국 결단이라는 대통령 측 궤변을 집중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내란동조세력의 대변인 역할을 한 것이다.
취재 없는 보도, 진실이 사라진 보도
▲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2월 6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받아쓰기 보도의 본질은 취재가 없다는 점이다. 혹자는 내란사건의 주요 당사자 말을 ‘가서 듣고 옮긴 것’ 자체가 취재라고 강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언론의 행위가 옮기는 것에 멈춘다면 언론이 아니라 단순 정보지임을 자임하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전 편집국장 마틴 배런은 “사건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이 중요할 때 보도하는 것이 저널리즘”이라고 설파했다. 원인을 파악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이 취재인 것이다. 취재 없는 기사는 기사가 아니다. 진실은 주장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인 리영희 선생은 생전에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한 것은 국가가 아니야, 소위 애국, 이런 것이 아니야. 진실이야”라고 강조했다. 진실이 중요한 이유는 진실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개인 의견의 집합체로서 사회적 결정을 내리고 이에 따라 운영하는 체제인 만큼 각 개인의 의견이 올바를수록 더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올바른 의견의 기반은 진실에 있다. 언론에 요구하는 저널리즘 가치는 특정 세력의 주장이나 발생한 사건 그 자체가 아닌, 더 많은 노력을 들여서 취재하고 검증한 진실을 알리는 것에 있다.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 같은 어이없는 내란이 발생하고 그 내란동조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비상계엄 이전에 언론이 일방 또는 양방의 주장을 공방으로만 전달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진실에 도달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수호와 진실보도, 저널리즘 본질
내란상황 해결은 물론 내란종식 이후 더 견고하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저널리즘 가치 복원은 시대적 과제다. 저널리즘 가치 복원 주장이 단순히 기성언론을 살리자는 매체 환원주의는 아니다. 진실을 검증할 수 있는 많은 취재인력을 보유하고도 단순 받아쓰기에 머물러 있거나 특정 정치세력의 대변인 구실에 머무르는 언론은 존재 가치가 없다. 저널리즘 가치를 부정하는 시장의 압력 속에서도 진실 추구를 하는 언론이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영언론의 독립성과 재정 안정을 보장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권은 공영방송 침탈 등 미디어 공공성을 파괴해왔다. 차기 정권은 민주주의 강화라는 본질적 관점에서 미디어 공공성 강화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민언련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범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공공성 중심으로 미디어 정책을 논의하고 수립·시행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기성언론의 공공성 강화만 논의하자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소통수단으로 정착된 유튜브나 SNS 공간에서도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는 방안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제도적 노력만으로 가능할까? 영화 <더 포스트>에서 워싱턴포스트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은 ‘더 좋은 기사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함’을 믿는다고 주장했다. 좋은 기사가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저널리즘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언론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있을까? 하지만 우리 현실은 이에 역행한다. 좋은 기사보다는 입에 맞는 기사,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기사에 몰두하는 콘텐츠 이용자의 행태는 좋은 기사를 생산하려는 언론의 노력을 좌절시킨다. 언론의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 아니다. 좋은 기사를 소비하는 시민의 선택이 책임감 있는 언론과 콘텐츠 생산자가 존립하게 만드는 기반이다. 이를 위해 시민이 좋은 콘텐츠를 분별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완성과 주권자 수준은 정비례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민언련칼럼은? <민언련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