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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친일재산 지금도 거래 중, 추적 포기할 수 없다
[2024년 12월 수상자] ‘친일청산‧재산환수 마적단’ 충북인뉴스 김남균 기자
등록 2025.02.0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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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청산재산환수 마적단 보도 이미지

 

2005년 12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친일재산환수법)이 제정됐다. 반민족행위자가 친일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켜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며,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친일파 민영휘, 송병준, 이정로 등의 후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재산환수에 불복하며 2008년 5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참여한 자들이 64명에 이른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3월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한 친일재산 환수는 진정한 사회통합 추구이자 헌법적으로 부여된 임무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친일재산환수법이 만들어지고 이듬해 2006년 7월, 친일재산의 조사와 처리를 위해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4년간 친일파 462명과 후손 3만884명의 재산을 조사해 민영휘, 이완용 등 168명의 부동산 2475필지 1306만 9403㎡(시가 2373억원)을 국고로 환수했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 해체 후 친일재산 조사는 법무부로 이관됐다.

 

그러나 법무부가 친일재산을 발굴해 환수한 건은 0건. 참담한 현실에 시민들이 나서 친일재산 환수 및 국가귀속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단초를 마련한 열혈 기자 김남균. 그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니 직접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019년 친일 관련한 첫 기사를 쓴 이후 ‘친일청산·재산환수 마적단’으로 이름 붙인 기획취재까지 친일잔재 추적기는 수년 째 이어지고 있다. 2024년 12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은 충북인뉴스 김남균 기자를 만났다. 충북인뉴스는 2004년 주간지 충청리뷰에서 분사한 충북지역의 대표적 인터넷매체다.

 

촉을 따랐는데, 친일재산이 발견됐다

친일재산 추적의 시작은?

‘비석이 가루가 될 때까지 잊지 말자, 그 이름 친일’(2019년) 기획 등 오래전부터 충북지역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의 흔적을 찾아왔다. 청주의 상징과 같은 상당산성 안에 무덤을 비롯해 환수된 줄 알았던 친일파 민영휘 일가 재산이 남아 있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의 재산이 제대로 환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주변 토지를 모두 조사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됐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일제강점기 때 작성된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구 토지대장을 전수조사하니, 미환수 된 친일파 토지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2023년 8월경부터 본격적으로 취재에 들어갔다. 친일재산 환수가 왜 안 됐는지, 제대로 환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심층보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떨 때 희열을 느끼는가.

친일재산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 무작정 살펴봐야 하는데, 특정지역에 존재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 때가 있다.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감인데 절반은 맞더라. 촉으로 시작했는데 친일재산이 발견되면 아주 기분이 좋다.

 

힘들 때는 언제인가.

친일파 후손들이 풍족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불편하다. 해방 후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 후손들은 고등교육을 받아 해외로 유학을 떠나며 군·경찰·정계 등 기득권층에 자리 잡아 권력이 이어져온 것을 보면 참으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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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인뉴스 김남균 기자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자료조사만 수천만 원, 정부가 나서야 한다

토지 열람 비용이 상당할 텐데.

기자라고 시민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자료를 그냥 취재할 수는 없다. 구 토지대장의 경우 땅 1필지당 열람 300원, 등본발급 700원의 수수료가 든다. 보통 리 단위가 700~2000필지 정도인데 2000 필지를 열람만 해도 60만 원이 나온다. 군 단위로 넓히면 몇 천만 원이 들어간다. 이리저리 부탁해보고 협조를 구하지만 쉽지 않다. 그나마 국가기록원 아카이빙에 토지자료 등이 포함되면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자료가 생겨나고 있다.

 

친일재산 찾는 과정 자체가 어려움이 많은 텐데.

과거부터 현재까지 재산 소유권 이전과정을 살펴봐야 하는데 돈도 돈이지만, 시간과 노력이 정말 많이 든다. 친일파 재산규모가 워낙 방대해 찾기가 좀 수월하다는 게 다행이랄까(웃음). 하지만 친일재산을 찾는 일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전산화된 자료도 있고, 국가가 권한을 갖고 접근하면 수집이 쉽다. 지금 국가가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아 나섰을 뿐 정부나 기관이 적극 나서주길 촉구하고 알리는 게 우리 보도의 목적이다.

 

친일가계도 작성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가계도가 개인정보이다 보니 재산 찾기보다 더 힘들다. 친일파 주소지를 찾아가면 집터, 비석 등 옛 발자취가 남아 있다. 가족 이름을 기록한 묘비나 구 토지대장 등 자료를 통해 소유 분포도를 정리하면서 가계도를 만들었다. 친일파 민영휘처럼 첩과 자식이 많으면 정리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비석에 깨진 글자가 더러 있는데 일제 연호인 ‘대정’, ‘소화’ 같은 글자다. 당시 ‘영세불망비’(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를 세워서 친일 공덕을 찬양해 놓고는 나중엔 후손들이 부끄러웠는지 그런 행적을 지웠놨더라.

 

대대손손 이어진 친일세력 기득권

일제강점기 최대 갑부라던 민영휘 일가 재산은 얼마나 되었나.

조선 최고 땅 부자로 알려진 민영휘 토지는 전국적으로 약 2,300만 평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작성된 구 토지대장을 열람해 보니 충북에는 연고가 없음에도 11개 시군에 모두 20~30만 평 이상의 민영휘 일가 재산이 있더라.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산 속 땅들을 포함해 숨겨진 재산이 아직도 많다.

 

최세경 전 KBS 사장 등 친일파 후손은 여전히 잘 살고 있는데.

최세경은 최연국의 조카다.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반민족행위자 최연국은 단종 태실지가 있던 자리에 자신의 무덤을 썼다. 조선 왕가의 기운을 차단하려 일제가 태실을 파헤친 뒤 친일파에 땅을 넘겼는데 단종 태실지가 최연국의 손에 들어갔다. 최연국 집안은 세 아들과 세 명의 사위 모두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는 등 대표적인 친일파다. 특히 3남 최문경은 조선총독부 경부를 지내고, 해방 이후엔 경기도지사와 외무부 차관 등을 역임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최연국의 동생 최연무 역시 조선총독부 경남 평의원을 지낸 친일파로 그의 아들이자 최연국의 조카인 최세경도 일본제6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최세경은 부산일보와 KBS 사장을 지내고 한국방송협회 회장을 역임했는데, 단종태실지에 세워진 최연국의 공덕비도 최세경이 썼다.

 

친일파 일가 이야기를 더 하자면,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측근이자 ‘차떼기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최돈웅 전 국회의원(강릉, 제8·14·16대)이 있다. 친일재산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권력이 이어진 집안인데, 그의 부친 최준집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파로 태평양전쟁 중 일본에 비행기를 헌납한 일화로 유명하다. 최돈웅 전 의원도 서울대를 나와 경월주조 회장, 강릉상공회의소 회장, 강릉MBC 회장 등을 지내며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대대손손 이어진 친일세력의 기득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제대로 과거청산을 하지 못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친일가계도를 보면 반민족행위를 통해 얻은 부와 인적 관계가 대대손손 이어진다. 친일파들은 해방 이후 군부독재 정권과 유착하고 정·재계 혼맥으로 기득권 카르텔을 공고히 했다. 친일은 지나간 역사가 아닌 계속 진행 중인 최상위 지배층들의 역사다. 친일재산 환수를 넘어 지연된 정의, 청산되지 못한 왜곡된 지배구조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본다.

 

비상계엄 회동이 벌어진 ‘삼청동 안가’도 친일재산이었다고?

삼청동 대통령 안가(안전가옥)는 친일파 민영휘 아들 민규식이 소유한 친일재산으로 환수대상이었다. 이후 후손들에게 공동 상속되었는데 세금 체납으로 2009년 국세청에 압류됐다. 정부는 해당 부지를 친일재산으로 환수하지 않고, 압류자산으로 공매에 부쳤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감정가 절반인 40억 원에 낙찰받았고, 이명박 정부는 2011년 경호처 소유 ‘창의궁 터’(당시 시세 65~93억 원으로 홍 회장은 2년 만에 최대 53억 원의 차익을 본 셈이다)와 맞교환 방식으로 소유권을 넘겨받아 안가로 사용했다. 친일재산으로 국가로 귀속시켜야 할 곳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업총수에게 뇌물을 받아 국정농단이 일어났고,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회동을 벌였다.

 

지금도 편법으로 빼돌려, 친일재산조사위 재개해야

친일재산으로 확인됐는데도 땅 매매가 가능한가.

친일파 후손들은 편법을 통해 땅을 매매한다. 환수대상인 땅은 매매가 불가능하지만, 매입한 사람이 친일재산인지 모르고 선의로 취득했다면 거래 자체를 무효로 하지 않는다. 대신 거래를 통해 얻은 땅 값은 환수대상이 된다. 땅은 취득한 개인의 소유로 남고, 돈만 국가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짜고 치는 거래를 하면서 땅을 헐값에 매매하고 이후 친일파가 땅을 다시 되사는 편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편법거래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서울 그랜드힐튼호텔 부지도 비슷한 방식으로 거래됐는데 환수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후작 작위까지 받은 친일파 이해승이 소유한 홍은동 임야는 손자 이우영에게 넘어갔다.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던 땅은 1966년 경매를 통해 제일은행 소유로 바뀌었다가 이듬해 이우영이 다시 땅을 사들여 그랜드힐튼호텔(구 스위스그랜드호텔)을 지었다. 이 땅도 친일파 재산으로 국가에 귀속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법원은 제일은행이 친일재산임을 모르고 경매로 취득했으므로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경우’에는 귀속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근거를 들어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청주시 산성동 전 통장 A씨 역시 상당산성 내 민영휘 일가 토지를 여러 차례 매수했는데 같은 이유로 합법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친일재산 환수에 손 놓고 있는 사이 친일파 후손들이 물려받은 재산으로 부를 챙기고 있다.

 

정부가 찾아낸 재산 상당수가 환수되지 못했다고?

친일재산조사위원회 활동 당시 친일재산을 많이 찾아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10%도 환수하지 못했다고 본다. 충북도지사를 지낸 친일파 이명구의 경우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조사에선 토지가 8만 9100㎡이라고 진술했지만, 환수된 토지는 겨우 6.6㎡다. 토지 내력이 같은 수십 억대 알짜배기 땅은 손도 대지 못했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도 딜레마가 있었던 것 같다. 친일파 후손들은 재산환수에 불복하며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반발했다. 재판에서 지면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갈 수 있으니 친일재산조사위원회도 100% 확실한 친일재산 위주로 추렸던 듯하다.

 

소극적으로 환수가 추진된 사례를 들자면.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까지 올랐다면 친일행위로 얻은 관직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 법원 판결을 종합하면 친일파가 1904년 러일전쟁 개시부터 1945년 해방까지 획득한 재산은 대가성이 있다고 보고, 환수대상에 포함했다. 그런데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누적된 친일행위 결과물로 관직을 보지 않고, 관직 이전에 취득한 재산은 환수대상에서 뺐다. 또한 친일파 당사자 이름만 조사하고 후손에게 차명으로 남긴 재산은 포함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법무부에 친일재산 국가귀속 신청도 냈던데.

친일재산 조사업무를 이관 받은 법무부는 광복회, 충북인뉴스 등에서 친일재산으로 의심된다고 민원을 넣은 것을 빼고 자체 발굴한 친일재산이 한 건도 없다. 지난해 11월엔 법무부에 몇 건의 친일재산에 대한 국가귀속 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때 1주일 안으로 연락 준다더니 감감무소식이다. 친일재산을 제대로 환수하려면 친일재산조사위원회 활동 재개가 필요하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강일 국회의원이 친일재산귀속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올해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친일재산귀속법 개정운동에 주력하려고 한다. 진일보한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기자공동체’라서 벅찬 일도 가능했다

추가로 추적 중인 친일 후손이 있는가.

많다. 지금까지 찾은 것만 200필지, 공시지가 730억 원 정도의 목록을 작성해 놨는데 친일재산 찾기에 계속 주력할 생각이다. 공시지가로만 최소 2천억 원, 시세로는 조 단위가 넘는 친일재산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국가가 찾지 못한 친일재산을 제대로 환수해 독립운동가 선양 등 제대로 된 곳에 써야 하지 않겠는가.

 

어려운 취재를 이어온 원동력은.

충북인뉴스는 지역의 작은 언론사다. ‘친일청산·재산환수 마적단’ 기획취재는 비용이나 시간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충북인뉴스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충북인뉴스 구성원들은 형식상 직급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기자들의 공동체다. 작고 가난하지만, 선의의 공동체인 충북인뉴스가 ‘마적단’ 기획의 원동력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좋은 보도’란.

강한 권력자의 시각이 아닌 힘없는 소외된 사람의 시각에서 쓰는 따뜻한 기사가 좋은 보도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 기사가 모두를 정의롭게 할 수 없고, 모두에 유익할 수 없을지라도 약자에게 이익이 되고, 그들을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좋은 보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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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상식에 참석한 충북인뉴스 김남균 기자(가운데)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