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칼럼_
조중동·종편·KBS·SBS·연합뉴스, 왜 태도 바꿨나
김재경(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민실위 간사)
등록 2025.02.0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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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일당의 궤변, 극우언론의 옹호

 

의원 아닌 요원_ytn.jpg

▲ 1월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서

윤 대통령 측 법률대리인이 김용현 전 국방장관에게 질문하는 모습을 전하는 YTN 보도 화면 ⓒYTN

 

전 국민이 귀를 의심했다. 이 정도면 제2의 ‘바이든 날리면’ 사태다. 김용현은 12·3 내란 발발 당일, 계엄해제 의결을 위해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시 특수전사령관 등 다수 군 지휘관들의 고백과는 정반대다. 이들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받았다고 했지만, 김용현은 ‘의원’이 아니라 ‘요원’이라고 했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더 황당한 건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언론의 행태다. ‘내란 수괴 최측근’ 김용현의 궤변을 비판하기는커녕 군에서는 특수부대원을 통상 요원이라고 부른다며 옹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위 '보수'를 자처하지만 이제 '극우'로 분류할 수밖에 없는 조선일보 등을 비롯한 언론들의 ‘내란 옹호성’ 보도는 차고 넘친다. ‘백골단’ 보도가 그렇다. 백골단은 1980년대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을 진압하고 체포하기 위해 구성된 사복 경찰관들의 별칭이자 1950년대 이승만 정권 여당이 조직한 정치깡패 집단을 일컫는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막겠다고 나선 극렬 지지자들이 자신들을 ‘백골단’이라고 칭하자, 극우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이들의 황당무계한 주장을 그대로 실었다. 대한민국 헌정 체계를 부정하는 윤석열 측 발언을 ‘받아쓰기’ 했던 것도, 반헌법적 폭력사태를 선동하는 듯한 주장을 ‘의견광고’로 장사했던 것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극우세력 의견을 그대로 기사화한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판치는 기계적 중립과 따옴표 저널리즘

 

따지고 보면 내란 발발 초기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언론은 12.3 내란사태 이후 불면의 밤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나이든 기자들은 역사적 비극이었던 1980년대 계엄 당시 악몽에 다시 시달렸다. 젊은 기자들은 단어조차 생경한 ‘계엄’의 재현을 목도했고, 대책 없이 국회 안에 갇혀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려움보다 ‘진실을 기록할 의무’를 우선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내란 사태의 전말을 파헤쳤고, 내란의 불법성과 배후세력을 추적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최초의 충격이 옅어지기 시작한 탓일까. 언론인으로서 몸에 밴 ‘기계적 중립’ 습관이 고개를 들었다. ‘야당이 한마디를 하면 여당도 한마디를 넣어줘야 하지 않나? 그래야 균형이 맞지 않나?’ 오래된 습관에서 착각이 시작됐다. 때맞춰 정치적 유불리를 저울질하던 보수언론이 가장 먼저 태도를 바꿨다. ‘내란’ 용어를 기사에서 빼고, ‘비상계엄’으로 쓰기 시작했다. 조중동이 그러했고, 종편은 물론 KBS도 SBS도 연합뉴스도 그러했다. “수사가 불법”, “영장이 불법”, “구속은 반헌법적”이라는 윤석열 변호인단의 해괴한 주장도 그대로 받아썼다. 평소 기자들이 가장 쉽게 쓰던 따옴표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독이 되고 있다.

 

기본을 묻고 싶다. 언론은 범죄자를 어떻게 호칭해야 하는가. 무죄추정의 원칙이 중요하고, 피의자에게는 범죄 ‘혐의’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원칙이라 하더라도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CCTV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면,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면, 기자들은 더 이상 ‘혐의’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 범죄자는 살인범이자 현행범이다. 다시 묻는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고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날이었다. 평범한 화요일 밤이었다. 윤석열은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며 느닷없이 생중계로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계엄군은 실탄 5만 발을 준비했다. 국회 유리창이 깨졌고, 군인들이 난입했다. 이 모든 장면을 국민이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윤석열은 ‘내란범’이자 ‘현행범’인 것이 팩트이고 진실이다.

 

언론의 역할은 치열한 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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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측 법률대리인 윤갑근 변호사가 1월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참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범죄자의 손에 마이크를 쥐어줘야 하는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가 적법하다는, 그런 ‘미친’ 주장을 뉴스로 보도해야 하는가. 그런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다수 언론이 내란세력과 동조자들의 궤변을 따옴표 친 제목을 달아 중계하고 있다. 이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다. 내란세력의 확성기 노릇을 하는 것일 뿐, 따옴표를 쳤다는 이유로 결코 면책될 수 없다. 위헌·위법적 주장을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수많은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치열하게 팩트체크하고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다.

 

허무맹랑한 계획이었다고는 하나 1년 넘게 나름대로 꼼꼼하게 준비한 윤석열의 내란이 실패한 이유를 생각해 보라. 그의 부당한 명령을 따른 사람이 적어서다. 이런 계엄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고 막아선 사람들이 훨씬 많아서다. 기자라면 내란을 획책·동조한 세력에게 날을 세워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을 위해 오직 진실만을 기록해야 한다. 언론이 과연 그 의무와 책임을 정당하게 수행했는지, 역사가 후일 반드시 평가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헌정사상 초유의 ‘2024년 12월 내란’을 역사에 정확하게 기록해야 할 시간이다. 윤석열의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윤석열과 함께 근거 하나 없는 ‘부정선거 의혹’ 같은 음모론을 신봉하는 극우세력들은 사회를 분열시키는 심리적 내전을 넘어 법원을 직접 공격하는 물리적 테러까지 자행하고 있다. 헌법질서 파괴는 현재진행형이다.

 

기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지금 저 구치소에 윤석열이 왜 들어가 있는지 명심하라. 만에 하나라도 윤석열이 내란에 성공했다면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지 상상해 보라. “설 명절이 다가오니 국민 여러분 생각이 많이 난다”는 내란범의 설날 인사는 국민을 그만큼 우습게 보는 윤석열의 자신감이다.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의도를 갖고, 내란세력의 주장을 받아쓰는 펜이 많아질수록 윤석열은 힘을 얻는다. 언론이 그렇게 펜을 들고 있는 한, 윤석열의 내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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