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칼럼_
‘내란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10원칙’을 제안한다
채영길(민언련 정책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등록 2025.02.0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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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미디어 학자와 연구자들은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침략 사건(Jan 6 U.S Capitol Attack) 이후 미디어와 언론에 대한 광범위한 실태와 연구 성과를 담은 <Media and January 6th>(Costley White, Khadijah; Kreiss, Daniel; McGregor, Shannon C.; Tromble, Rebekah, 2024)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숱한 미국 언론과 미디어가 이런 무도한 반헌정, 반민주적 사건에 어떠한 책임이 있는지 다양한 교훈적 사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1.6 의사당 침략 사태가 단순히 광분한 반란자들에 의한 일탈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온 “정치운동의 연속”에서 발생했음을 생생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2025년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복귀하였듯 이 정치운동은 2021년 이후에도 지속되어 왔음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제안한 저널리즘 10원칙의 아이디어와 몇 가지 구체적 내용은 이 책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저널리즘 실천의 교훈을 얻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은 교훈을 실천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내란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10원칙’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회복과 지속을 위해 매우 절박하게 채택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 가장 먼저 언어가 무너집니다. ‘거짓’은 ‘논란’이 되고, ‘선동’은 ‘의견’으로 둔갑하며, ‘쿠데타’는 ‘경고’로, 내란은 ‘시위’로 변형됩니다. 언어가 혼탁해지는 순간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도 왜곡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곡된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는 천천히 질식함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혼탁은 저널리즘 실패의 명백한 징후입니다.

 

2025년 1월 19일, 대한민국 사법부가 폭력적 침략을 당했습니다. 이날 새벽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들은 폭도로 돌변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하는 등 사상 초유의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대규모 규탄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12.3 내란이 발생한 지 47일 만입니다. 일련의 사태는 단순한 법정 소란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12.3 내란 정국의 연속이었습니다. 12.3 내란과 마찬가지로 헌정질서와 법치주의를 흔들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계획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언론은 이번 사건을 '집회', '항의', '소란'이라는 단어로 축소했습니다.

 

이런 방식의 언어 사용은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 의사당이 폭력적 침략을 당했을 상황과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4년 전 미국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저널리즘을 실천해야 합니다. 새로운 저널리즘은 단순한 원칙의 반복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선동과 정보전을 극복하기 위한 매우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전략이어야 합니다. 위기의 시기에는 예외적 원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내란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10원칙을 제안합니다.

 

1. 기계적 중립을 거부하고 민주주의 입장에서 취재와 보도를 결정해야 합니다.

모든 주장에 같은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기계적 중립성의 저널리즘을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본질임을 긴급히 상기해야 합니다. ‘중립’이라는 미명 아래 반민주적 세력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제공하는 것을 당장 멈춰야 합니다. 헌법 및 민주주의 질서와 원리를 부정하는 인물과 그 인물들의 발언은 전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소위 ‘따옴표 저널리즘’은 내란 시기 내란 방조 또는 내란 공모의 효과를 자극합니다. 필요한 경우에라도 그 의미와 가시성은 최소화되어야 합니다.

 

2. 언어의 전장(戰場)을 선점하여야 합니다.

‘극우 반란자(insurrectionist)’를 ‘시위대(protesters)’로 부르고, ‘쿠데타(attempted coup)’를 ‘실패한 계엄(failed martial law)’으로 ‘반란(revolt)’를 ‘국민저항(People’s Resistance)’으로 희석하는 순간, 민주주의 가치와 본질이 전복되며 저널리즘의 민주주의 수호 책무도 사라집니다. 잘 알려진 바대로 언어는 그 자체로 권력입니다. 저널리즘은 언어 권력의 요체입니다. 용어 선택은 신념의 문제이며, 그들이 설정한 언어적 틀을 거부하고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위한 대안적 언어를 발굴하여 그들이 오염시킨 언어의 의도를 전복시켜야 합니다.

 

3. 허위 정보와 ‘거짓 균형’(false balance)을 적극 배격하여야 합니다.

극우세력은 끊임없이 허위 정보를 유포하며, 이에 대한 반박을 단순한 ‘논란’으로 프레이밍합니다. 저널리즘은 이를 단순한 ‘양측 의견’으로 보도할 것이 아니라 근거 없는 주장에는 단호한 거부로 대응해야 합니다. 정쟁 당사자를 초대하는 정쟁 기회주의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가짜 균형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 본질과 가치를 도전 대상으로 만들며 거짓 민주주의 현실을 공론화 시키는 것을 도울 뿐입니다.

 

4. 극우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는 우파 미디어 프레임은 해석이 아닌 해체 대상입니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의사당 폭동 당시 폭스뉴스로 대변되는 보수언론은 OAN(One America News), 브레이트바르트(Breitbart News Network) 같은 극우 미디어와 긴밀히 네트워크화되어 담론 연대체 중심 고리로 기능하였습니다. 보수언론은 단순한 ‘보수적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선동과 허위 정보를 조직적으로 퍼뜨리는 네트워크의 일부였습니다. 보수언론은 이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전략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가짜 뉴스와 유튜브 기반의 정치적 선동이 법치와 민주주의를 흔들고 있음을 인지하고, 언론은 그들의 전략을 해체하여 그 위험에 대해 경고해야 합니다.

 

5. ‘희생자 프레임’을 거부하고 가해자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극우세력은 스스로를 ‘검열받는 희생자’로 프레임화하며, 자신들의 선동을 ‘표현의 자유’로 포장합니다. 자유의 피해자라는 주장에는 단호한 의심이 필요합니다. 최근 이런 현상이 증가하고 있는데, 법원의 판결이 불리하게 나오면 ‘정치적 탄압’이라 주장하며 법치를 공격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은 이러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폭로하고, ‘표현의 자유’가 ‘거짓을 퍼뜨릴 자유’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6.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정보 조작을 저널리즘 영역 밖으로 추방하여야 합니다.

극우와 일부 보수미디어는 자신들의 주장도 여론이며 대안적 관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진보적이고 비판적 주장에 대해 편향적이라고 비판하며 자신들이 균형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미국 의사당 침략 사건이 보여주듯 이들의 주장은 저널리즘이 아닌 정치적 운동의 일부입니다. ‘보수적 시각’이라는 이름으로 극우 선동을 정당화하는 전략을 폭로해야 합니다. 가짜뉴스는 결코 뉴스가 아니며 범죄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프로파간다 전략의 일부로 간주하고 저널리즘 영역 밖으로 퇴출하여야 합니다.

 

7. 공포와 분노를 조작하는 프레임을 무력화시켜야 합니다.

분열 및 극단의 대립과 갈등으로 사회는 점차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의 시기 ‘공포와 분’노 프레임 및 정보는 극단적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극우 프로파간다는 대중의 공포를 조작해 정치적 이득을 얻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북한 등 안보와 민감한 국가와 관련해 다양한 가짜뉴스와 프로파간다가 ‘국가안보 위협’으로 둔갑하고, 특정 정치세력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헌정질서 부정, 선거 부정, 국회 부정 같은 허위 담론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분석하고, 그 기만을 폭로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역할이 되어야 합니다.

 

8. 반지성주의와 음모론을 진보적 역사와 민주적 교양으로 무력화시켜야 합니다.

미국 의사당 침략 사건에서 ‘엘리트가 대중을 조종한다’는 반지성주의적 담론과 ‘딥 스테이트’ 같은 음모론이 “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춰라)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한국의 극우 폭동과 반란 세력들도 “Stop the Steal”을 들고 나섰습니다. 극우 정치의 핵심 담론 전략이 국경을 넘어서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극우 정치집단과 언론·미디어가 사법부와 학계를 ‘좌파 카르텔’이라 공격하는 전략이 반복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 포함됩니다. 저널리즘은 이런 공격이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법과 지식의 가치를 수호해야 함을 절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9.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저널리즘 책무를 지고 스스로 통제하여야 합니다.

극우 선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 의사당 침략 사건을 조사한 미국 의회는 최종 보고서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켰지만, 플랫폼의 극우 채널 위험성은 매우 심각합니다. 1월 20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트럼프 바로 뒷자리에 포진한 거대 빅테크 CEO들이 강력한 증거입니다. 한국에서도 유튜브와 SNS를 통한 극우 담론 확산이 더 이상 예외적이지 않습니다. 저널리즘은 포털과 소셜미디어 플랫폼 기업에게 저널리즘 책임을 강력히 요구하고, 더 나아가 이들 미디어 기업은 극우 알고리즘이 증오와 거짓을 퍼뜨리는 방식을 스스로 공개해야 합니다.

 

10. 마지막으로 언론인들은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회복적 저널리즘’(Reparative Journalism)을 실천해야 합니다

단순히 인식하고, 경계하고,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널리즘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역할을 적극 발굴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시민들에게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고, 민주주의 교육을 강화하며, 사회적 연대를 위한 ‘공론 플랫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민을 위한 공론장의 지위를 시민들에게 내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한다는 고 리영희 선생의 지혜를 잠시 접어두어야 하겠습니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갉아 먹는 날개를 버려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고 리영희 선생은 ‘진실’이 ‘국가’와 ‘애국’을 우선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은 진실을 위해 한 쪽 날개로 나는 법에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한 새살이 돋아나도록 우리는 당분간 한 쪽 날개로 날아야 할 듯합니다. 이 글에서 제안한 저널리즘 10원칙은 이를 위한 고통스런 날개 짓입니다.

 

*민언련칼럼은?
<민언련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