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최순실 보도’ 막았던 박장범, KBS를 ‘파우치 방송’으로 추락시킬 것인가손관수(전 KBS 보도본부장)
▲ 2024년 2월 7일 방영한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 갈무리 ⓒKBS
41살에 노동당 당수, 44살에 영국 총리에 오른 토니 블레어는 북아일랜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특히 중도정책을 표방한 ‘제3의 길’을 주창해 세계적인 주목과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영국 국민이 극력 반대한 미국의 무모한 이라크 전쟁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면서 반전된다. ‘부시의 푸들’! 이 경멸적인 별칭으로 블레어 자신은 물론 영국의 국제적 위상도 추락했다. 영국이란 국가 브랜드 가치가 이렇게 한순간에 추락한 사례가 또 있을까.
‘파우치 사장’, KBS 브랜드 가치 추락시킬 것
▲ ‘오세훈 생태탕 의혹’ 보도를 공정성 훼손 사례로 든 2023년 11월 14일 뉴스9 갈무리 ⓒKBS
‘파우치 앵커’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박장범 기자가 KBS 사장으로 낙점됐다. KBS 이사회 추천이라지만 윤석열 대통령과의 특별대담에 대한 ‘은총’이 낙점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사람들은 다 안다. 박장범 앵커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를 가리켜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의 조그만 백”이라 발언했을 때 이미 KBS 명예는 크게 훼손되었다. 그런 박장범 기자가 사장이 된다면 그는 ‘파우치 사장’으로, KBS는 ‘파우치 방송’으로 조롱당할 것이 분명하다. 공영방송 KBS의 브랜드 가치 손실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묻고 싶다. KBS 저널리즘을 팔아 사장 자리 꿰차려 한다는 비판이 과연 지나친가? ‘용산의 푸들’이라는 비판이 과연 지나친가? 나는 이런 비판이 ‘지나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특별대담에서 보여준 굴욕적인 진행 이외에도 그의 반저널리즘적인 행태 때문이다.
2023년 11월 14일, 박민 신임 사장은 “공영방송으로서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며 대국민 사과회견을 했다. 이는 뉴스9 <보도 공정성 훼손 대표적인 사례들은?>이란 제목의 앵커 리포트로 재연되었다. 그런데 “KBS 뉴스가 불공정했다”는 절대적 낙인을 찍으면서도 왜 불공정 보도인지 근거는 불명확했다. 기자들은 “조사 한번 하지 않고”, “당사자들의 반론도 듣지 않고” 어떻게 이런 낙인을 찍을 수 있느냐며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무시되었다.
▲ KBS ‘오세훈 검증보도’ 취재팀이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서에 첨부한 서울중앙지검 불기소이유통지서 ⓒ한겨레
당시 소개된 ▲채널A 검언유착 녹취록 보도(2020) ▲고 장자연 배우 사망 사건 관련 윤지오 씨 인터뷰(2019) ▲오세훈 서울시장 내곡동 토지 보상 보도(2021)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인용 보도(2022) 등 4건의 기사 모두 다툼의 여지가 큰 사안이다. 그중 이른바 ‘생태탕 보도’에 대한 비판은 악의적 프레임을 씌운 잘못된 예시다. 무엇보다 검찰이 “관계자들의 진술이 일관돼 KBS 보도가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오세훈 후보가 현장에 갔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등을 들어 불기소 처분한 명백한 증명이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러한 사실이 불과 몇 달 전 사내 게시판 논쟁으로 재확인됐다는 사실이다. 당시 ‘생태탕 보도’ 프레임 공격에 해당 기자가 선거 검증보도로서 정당한 취재과정과 검찰의 불기소 처분 이유 등으로 반박 글을 올렸는데, 어떤 재반박이나 댓글이 없을 정도로 명쾌하게 정리된 바 있다. KBS 직원이라면, 특히 기자라면 이런 상황과 맥락을 익히 알고 있던 사안들이다.
해당 기자들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당시 박장범 앵커, 박민 사장, KBS 등을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박장범 기자는 앵커 리포트 기사를 자신이 직접 썼는지, 불공정 보도라고 판단한 근거와 반론 확인조차 거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법정에서 상세히 밝혀주기를 바란다.
‘최순실 사태’로 무너진 KBS, 또 다시 위기
▲ 2016년 9월 20일 KBS 편집회의에서 기자협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보도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당일 KBS 뉴스9는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KBS 뉴스9 페이지 갈무리
최근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는 KBS 내에 또 다른 사태를 낳고 있다. 핵심은 권력 감시와 비판을 주저하는 자기부정적인 행태에 있다. KBS 수뇌부는 여전히 언론의 기본 역할을 망각한 듯 적극 보도해야 한다는 요구를 외면하고 있고, 대부분 언론사가 운용에 들어간 특별취재팀·TF 구성 요구에도 귀를 닫고 있다.
기시감이 든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도 바로 이런 상황이 연출됐다. 이제라도 적극 취재에 나서야 한다는 KBS 기자협회장 요구를 당시 정지환 보도국장은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라는 말로 윽박지르며 거부했다. 그때 사회2부장을 맡고 있던 박장범 부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기자들이 단독으로 발굴한 ‘최순실 딸 정유라 씨 이화여대 특혜입학 의혹’ 기사에 대한 승인을 거부하더니, 이화여대 측 회견 날엔 영상촬영팀조차 보내지 않는 뭉개기로 일관했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회견 다음날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기자의 특종을 부장이 날려버린 셈이다.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KBS의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 문제점 조사> 보고서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KBS 뉴스도 탄핵되었다. 이후 수년 간 각고의 노력 끝에 영향력과 신뢰도를 회복해가던 KBS 뉴스는 연이은 ‘용산의 은총’을 입은 박장범 기자의 ‘사장 낙점’으로 다시 국민에게 탄핵당할 위기를 맞고 있다. 박장범 기자! 정말 KBS 사장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그만 파우치” 정도의 염치와 양심이 아직 남아 있다면 사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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