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미국 대선보도. 열심히만 하면 뭐해? 잘해야지!
이정훈(신한대 리나시타교양대학 교수·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선정위원)
등록 2024.11.07 16:59
조회 413

한국 언론의 미국 대선 보도,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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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6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확정 소식을 전하는 뉴욕타임스 웹사이트 갈무리 ©뉴욕타임스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당선으로 끝이 났다. 세계 정치에서 미국이 갖는 지위와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한국 언론도 선거운동 기간 내내 많은 관심을 보였다. 게다가 ‘미국 대선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접전’으로 불린 선거다 보니 그 관심은 더욱 뜨거웠다.

 

여느 선거보도와 다를 바 없이 한국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 수치를 중심으로 누가 이길지 예측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언론의 능력 밖 일이기도 하거니와 시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도 아니다. 오히려 능력 밖의 불필요하기까지 한 일에 몰두하느라 정작 미국 대선 의미와 한국에 미칠 영향, 그리고 우리 정부의 대응역량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요컨대, 늘 하던 대로 하면서 늘 하던 잘못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한국 언론의 선거보도에 대해서는 정책보다 인물에만 관심을 보이고, 승패에 집착하며, 여론조사 수치를 스포츠 중계하듯 보도하는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런 문제점은 제47대 미국 대선 보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여론조사 중심 보도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가 갖는 의미는 승패를 가르는 데만 있지 않다. 선거를 계기로 당면한 국가 이슈가 드러나고, 후보들이 제시한 정책을 비교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선거의 진정한 의미다. 승패를 예측하는 것은 주변적인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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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는 한국 언론 보도 제목 갈무리

 

여론조사 수치에만 집착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보도하는 방식은 더 심각하다. 여론조사 결과 두 후보 간 차이가 오차범위 안에 있을 때 ‘앞선다’거나 ‘이기고 있다’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 2016년 제정된 선거여론조사 보도준칙 제16조(오차범위 내 결과의 보도)는 “지지율 또는 선호도가 오차범위 안에 있을 경우 순위를 매기거나 서열화하지 않고 ‘경합’ 또는 ‘오차범위 내에 있다’고 보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차범위가 ±4.8%인 여론조사 결과 A후보자와 B후보자의 지지율이 각각 45%와 44%였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조사결과 의미는 실제 유권자 집단 전체에서 A후보자를 지지할 확률은 최대 49.8%에서 최소 40.2% 범위 안에 있고, B후보자를 지지할 확률은 최대 48.8%에서 최소 39.2% 범위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투표에서는 A후보자가 1%포인트가 아니라 최대 10.6%포인트 차이로 이길 수 있으며, 반대로 B후보자가 1%포인트 차이로 지는 게 아니라 최대 8.6%포인트 차이로 이길 수도 있다. 그래서 조사결과 수치 차이가 오차범위 안에 있을 때 ‘앞선다’거나 ‘이기고 있다’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것인데, 한국 언론은 그 표현을 고집스럽게 쓴다. 혹시 일이 잘못되면 여론조사 회사의 잘못이라고 떠넘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그것을 확정적인 사실인 양 보도한 언론의 잘못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여론조사 오차범위 무시, ‘경마식 보도’ 치중

 

여론조사 수치에만 집착하다가 선거 결과가 예측과 다르게 나오면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샤이(shy)’ 지지자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샤이가 아니라 오차범위에 대한 언론의 무지와 무시일지도 모른다. 한국 언론은 여론조사 1%포인트 차이가 ±4.8%의 오차범위 때문에 실제 결과에서 최대 10.6%포인트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 언론이 오차범위 문제에 별 관심 없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번 미국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오차범위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조차 적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차범위는 언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가 꽤 차이나는 일이 잦아지면 선거과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선거조작 의혹 제기나 선거결과 불복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언론은 여론조사 수치를 보도할 때 지금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대응을 묻는 언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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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전화로 축하 인사를 전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또 하나의 문제는 여론조사 수치만 쫓느라 정작 필요한 선거의 의미와 맥락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는 미국 대선이다. 아무리 미국이 중요한 나라라고 해도 남의 나라일 뿐이다. 남의 나라 선거이기 때문에 사정을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우리 시민들에게 맥락을 설명해주고, 한국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주어야 한다. 특히 더 중요한 점은 새롭게 대통령이 될 후보자의 정책과 그것이 한국에 미칠 영향력에 대한 분석보다 새로운 대통령의 당선이 가져올 변화에 한국 정부가 대처할 역량이 있는지, 준비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올인하다시피 한 윤석열 대통령이었기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응할 역량에 대한 검증은 더더욱 중요하다. 정부야 잘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언론은 그 말을 퍼나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당선 확정 이후에라도 언론은 계속 묻고 검증해야 한다.

 

언론학자로서 언론을 비판할 때가 종종 있다. 비판에 불만을 가진 기자들의 반응은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들의 반응과 매우 유사하다. 학생들은 “출석도 열심히 했고 시험도 열심히 봤는데, 성적이 기대보다 너무 낮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기자들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사정도 모르는 학자들이 하기 좋은 비판만 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말한다. “열심히만 하면 뭐하냐고. 잘해야지.” 적절한 방법으로 노력했으나 역부족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위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릇된 방식으로 열심히만 하는 것은 무능한 것이다. 잘못된 방법을 지적받고도 고치지 않는 것은 게으른 것이다. 잘못된 방식을 고집하며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은 잘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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