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윤석열 정부의 ‘무지’와 일본의 ‘이중성’ 합작
김영훈(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록 2024.08.1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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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장의 일갈, 윤석열 정부의 ‘친일’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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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0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대통령실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모르면서 신념을 가진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던가. 근대 이후 대부분 전쟁은 지도자의 무지와 오판에서 시작되었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극우 행보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가 단체들이 불참한 광복절 기념식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종찬 광복회장은 “반역자들이 일본 우익과 내통하여 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과 같이 간다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현 사태를 개탄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일 외교 참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일본 핵오염수 방류 묵인,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과 사도광산 굴욕까지 100년 전 제국주의 본국의 파시즘 발호와 피압박 민족 부역자들이 벌인 전쟁준비 소동의 판박이다.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 한일 양국이 ‘강제동원’ 표현 삭제에 합의한 사실이 알려진 후 주요 언론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비판기사를 쏟아냈다. 7월 27일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동아일보는 1면 기사로 정부의 굴욕외교를 비판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조선인 노동자’ 전시물 만든 사도광산...세계유산 등재>(김진명 기자, 성호철 도쿄 특파원) 기사를 6면에 실었다. 마치 일본 정부가 성의를 보여 “나머지 물컵 반 잔을 채운 듯”한 인상을 준다.

 

한겨레는 8월 7일 <단독/일본, 사도광산 ‘강제’표기 묵살...들통난 윤 정부 굴욕외교>(신형철 기자) 보도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강제’ 표현 명시 요청 후 묵살당했음에도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한 사실을 보도했다. 일본 정부의 오만과 강제노동 관련 궤변은 1930년대 국제노동기구 ILO(Internatioinal Labour Organization) 탈퇴 과정과 동일하고 한국 정부의 대응은 무능하고 어리석다.

 

ILO는 1919년 1차 세계대전 전후 세계질서 재구축을 위한 베르사유 강화 조약의 결과로 설립되었다. ILO 헌장 전문에서는 “세계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에 기초함으로써만 확립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공황과 사회위기를 노동권 보호와 민주주의로 극복하지 않는다면 극우 파시즘 발호와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1930년 전시동원체제 저지를 위해 제정된 ‘제29호 강제노동 금지 협약’은 회원국 누구나 국내 비준 여부와 무관하게 준수해야 하는 8개 핵심협약 중 가장 오래된 협약이다.

 

1940년 일본 ILO 탈퇴, 그리고 사도광산 강제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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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광산 관광코스 중 하나인 ‘도유갱’ 코스의 모습. 골든사도 누리집 갈무리 ©골든사도

 

1919년 일본은 1차 세계대전 승전국 자격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했다. 일본은 ILO의 8시간 노동제, 주휴일 보장, 최저임금제 실시와 아동노동 금지에 대해 “일본 고유의 국토 풍속과 공업발전 양상”을 이유로 반대했다. 서양과 달리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조화와 상호이해를 도모함으로 사회계층 간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이후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국으로서 ‘나라의 위신’을 생각하여 일부 조항에 유예기간을 두는 것으로 다른 연합국들과 합의하고 가입했다. 그러나 제국주의자의 위신과 노동기본권 조화는 애초부터 불가능했고, 일본의 ILO 탈퇴 움직임은 중일전쟁 개전 이후 본격화했다.

 

집권과 동시에 모든 노동조합을 불법화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어용노조인 독일노동전선을 만들면서 1935년 ILO를 탈퇴했고,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뒤를 이어 1939년 탈퇴했다. 일제 역시 1938년 국가총동원령을 제정하고 대일본산업보국회를 조직하고 1940년 ILO를 탈퇴했다.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노동은 ILO탈퇴 이후 집중되었다. 지금도 일본 정부가 적법한 조치의 근거라고 우기는 국가총동원령은 침략전쟁의 수단에 불과하다.

 

‘환호’ 아닌 ‘성찰’ 필요한 때

 

ILO는 1999년부터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일제의 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강제노동과 일본군 성노예제 만행을 29호 강제노동협약 위반으로 결정하고 일본 정부에 이행사항을 권고해왔다. 특히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노동과 배상은 거부하면서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2차 세계대전 후 소련군 포로로 시베리아 사할린 수용소에서 강제노동 당한 일본군 피해자 소송에서 보여준 이중성에 대해 ILO는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다.

 

올해 6월 15일 우리나라는 ILO 이사회 의장국으로 선출됐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기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데 대한 국제적 인정”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 31일 후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명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7월 28일 <사설/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전시는 불필요해>에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크게 환영하며 강제노동 전시조차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쟁 준비를 위한 강제노동의 역사를 애써 모른 척하는 일본 국민에게 사도광산의 영혼들은 묻고 있다. 국적을 넘어 노동자와 가족들이 과연 환호할 일인가. 일본 정부가 ILO에 제소하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그리고 시베리아의 지옥도를 이미 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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