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방송4법은 시민의 권리를 위한 ‘쟁투’이다
채영길 (민언련 정책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등록 2024.07.24 17:53
조회 389

방송4법이 ‘민생’ 아니라는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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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원식 국회의장의 긴급 기자회견 관련 MBC 뉴스데스크 보도(2024.07.17.) 갈무리 ©MBC

 

7월 17일 오후, 우원식 국회의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민청원’이 140만을 넘어서고 있고, 여당이 사생결단으로 반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민동의청원 청문회를 불과 이틀 앞두고 나온 기자회견이었다.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등 민감한 정치적 이슈가 즐비한 시기, 국회의장이 어떤 ‘현안’ 관련 입장을 발표할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우원식 국회의장은 방송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야당의 방송4법 재발의로 인해 “한시가 급한 민생의제들이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 법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여당·대통령과 야당 간 정치대결로 규정하고 “잠시 냉각기를 갖고 정말로 합리적인 공영방송 제도”를 논의하기 위한 범국민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방송4법이 민생의제 실종의 원인이라는 판단에도 동의하기 어렵지만(미디어 학자로서 방송과 미디어는 시민들의 일상에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민생의제이다), 방송4법에 대한 국회의장의 인식에 오해가 있는 듯해 안타깝다.

 

국정의 한 축인 국회수장으로서 정치적 난맥상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자는 우원식 의장의 진의를 믿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우 의장의 방송4법 의미, 갈등의 성격 그리고 해법에 대한 인식에 우려되는 바가 크다. 심지어 이 법안의 의미를 잘 아는 상당수 전문가들조차 우원식 국회의장의 소위 ‘합의주의’에 동조하거나 이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더 실망스럽다.

 

‘방송법’을 ‘정쟁’으로만 봐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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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1일 오후 상암MBC광장에서 열린 ‘MBC 힘내라 콘서트’ 전경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우리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방송4법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정부여당과 야당 간 ‘정치적’ 대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정쟁은 정치적 쟁투가 아니라 정치‘권’의 이념적 대결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즉, 우리의 정치적 쟁투가 아닌 정치를 업으로 하는 이들의 갈등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이다.

 

방송4법 재입법은 언론 공론장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시민과 언론·미디어 노동자의 공영방송 독립과 민주적 운영에 대한 열망을 국가가 의도적으로 ‘금지’(거부권으로 통용되는 비토(veto)의 원래 의미는 ‘금지하다’이다)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즉, 이 정치적 쟁투의 성격은 이념적 ‘정쟁’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 억압’ 측면으로 봐야 한다. 7월 11일 <MBC 힘내라 콘서트>에 2천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방송3법 재입법”을(방송4법은 기존 공영방송 정치적 독립법안인 방송3법에 방송통신위원회 정상화를 위한 법안이 추가된 것으로 방송3법이 방송개혁 입법의 핵심) 한목소리로 외친 이유도 이와 같다. 시민의 권리가 금지되고 억압당하는 상황을 정치꾼들의 정쟁으로 폄하하는 순간 이 법안은 한낱 정치적 이익을 위한 모략으로 전락하고 만다. 재차 강조하건대, 방송3법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그들의 정쟁’이 아니라 ‘우리의 권리’를 위한 시민의 정치적 쟁투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기자회견문에서 한 언론학자의 말이라며 방송3법 입법화를 위한 쟁투를 “참치잡이 원양어선 위에서 꽁치머리를 두고 싸우는” 무분별한 싸움으로 비하했다. 방송3법을 보잘 것 없는 정치적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해 끔찍하고 절망감이 든다.

 

방송3법은 내다 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법안이 아니다. 지난 2~3년 간 시민사회와 의회 간 논의를 거친 치열한 숙의의 결과이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은 이전 정권부터 시민사회와 전문가, 관련 직능단체의 논의와 협의를 통해 마련된 ‘의회정치’의 산물이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극복하고 향후 시민들의 직접적이고 다각적인 참여를 확대하는 방송개혁의 물꼬를 트기 위한 ‘합리적’ 방안으로 채택된 것이다.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꽁치머리”로 비하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7월 18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언론탄압 국회 증언대회’에서는 공영방송 장악과 방송통신위원회 파행의 고통스런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증언 말미에 이 참극을 멈추기 위해 방송3법과 방통위법 개정 입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이정민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지금은 방통위원장의 자리를 지켜야 하고, 이후 공영방송을 비롯한 모든 매체들이 마음 놓고 양질의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모두가 한마음으로 지키고 이겨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말하건대 방송3법 입법을 통한 시민들의 미디어 권리 쟁투는 “꽁치머리를 두고 싸우는 격”으로 폄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범국민협의체’ 시민사회가 지난 5년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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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강화를 위한 미디어 정책 최종 보고서 갈무리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

 

그럼에도 범국민협의체를 통해 전면적인 언론·미디어 개혁방안에 대해 논의하자는 우원식 의장의 제안은 적절하다. 다만, 지난 5년간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이 제안을 요구해 왔다는 사실을 환기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시민사회는 철 지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대체할 ‘소통권’(Communication Right)을 제도화할 수 있는 구체적 논의를 해왔다.

 

2019년 7월 23일 26개 언론·미디어 관련 시민단체와 학술단체, 전문단체, 언론사 노조 등은 당시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산업이 외면하고 있던 언론·미디어 개혁 추동을 위해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를 결성했다. 다양한 단체와 집단이 모여 결과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10개월 장고 끝에 2020년 9월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강화를 위한 미디어 정책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미디어 전문가와 시민, 현업 노동자가 함께 숙고하였다는 정치적 의미와 커뮤니케이션권리를 방송과 미디어법 내에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담아냈다. 그리고 지난 5년간 시민사회는 정치권에 이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우원식 의장이 제안한 범국민협의체 씨앗은 이미 뿌려져 있고, 단단한 싹을 피울 준비가 되어 있다.

 

정치적 대립과 갈등은 비록 우리가 추구하지 않는 질서일 뿐, 질서가 없는 무질서함은 아니다. 시민들의 정치적 쟁투는 늘 그러한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고 지속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 과정이 시민의 권리가 진보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만 그 쟁투를 정치꾼의 쟁투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과 연대하는 전문가와 지식인들에게 맡기는 순간, 그리고 그 쟁투를 중단시키려는 모든 시도들이 ‘합리주의’에 포섭되는 순간 그 권리의 진보도 중단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내가 이 기자회견문에 긴 논평을 굳이 덧붙인 이유가 바로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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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칼럼>은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