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1cm 열상? ‘이재명 피습’ 사건에서 드는 의문들
박석운(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
등록 2024.01.1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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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일 오전 부산에서 피습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날 오후 헬기로 서울 노들섬까지 이송된 후 구급차편으로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오마이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치테러를 당한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방식이 너무 이상하고도 요상하다.

 

#1

총리실 대테러종합상황실은 1월 2일 정치테러가 발생한 직후 매우 신속하게 “1cm 열상으로 경상”, “출혈량 적어” 등의 설명을 내놓았다. 수많은 언론매체가, 심지어는 유수한 진보언론조차도 이 설명을 받아쓰기하는 방식으로 “1cm 열상”으로 속보를 내보냈다. 한편 테러 발생 직후 1시간도 채 안 된 시점에 경찰은 사건 현장의 핏자국에 대해 서둘러 물청소를 하여 핏자국 흔적을 지워버렸다고 한다. 당시 현장의 핏자국에 대해 경찰은 증거보전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로 지워버린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경우 처음 이 대표 피습 속보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어진 후속보도에 ‘1cm 열상’ 또는 ‘1.5cm 열상’이라고 나와서 “경상”이구나, “참 다행”이라고 주위에 말했다. 그런데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를 거쳐 헬기를 통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보고 생각보다 훨씬 “중상”이구나 걱정했고, 그리고 전신마취에 경정맥 재건술을 시행하느라고 2시간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로 갔다는 보도를 보면서 애초 보도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MBC 박건식 PD가 사고 당일 1월 2일에 쓴 페이스북 글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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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건식 MBC 프로듀서의 1월 2일자 SNS 게시물 갈무리 ©페이스북

 

너무 공감되어서 박 PD의 글을 인용하면서 필자의 당시 느낌도 덧붙여서 SNS를 통해 마구 퍼 날랐다. 그러는 사이 며칠이 지나면서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열상’이라는 설명이 “총리실발 가짜뉴스”라는 지적을 하였고, 또 여러 언론매체에서도 ‘자상’이라는 표현으로 보도되기 시작하였다.

 

#2

이 대표가 피습당할 당시 입고 있던 셔츠 목깃과 목 부위에 날카로운 흉기에 뚫린 자국이 나 있고, 흥건하게 흐른 핏자국이 선명한 와이셔츠와 속옷이 부산대병원에서 실종되었다. 당시 경찰 당국은 부산대병원에서 탐문수사를 제대로 못 해 와이셔츠와 속옷 등 이번 범행의 증거물이 의료폐기물로 폐기된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다행히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김지호 정무부실장이 사건 다음 날 부산대병원과 의료 폐기물 업체, 환경부 등에 직접 전화를 걸어 와이셔츠, 속옷 등 증거물이 의료 폐기물로 분류되어 진주에 있는 폐기물 업체에 전달된 것을 확인했고, 이어 “업체 측에 전화하여 전후 사정을 설명 후 폐기를 중단시키고 직접 증거물을 수거해서 경찰에 제출하려고” 했지만 “제반 법률상 어렵다”고 하여, “수사 경찰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폐기물 업체명과 전화번호를 알려 수거할 수 있도록 협조했다”고 한다.

 

민간인이 전화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던 사실을, 법적 수사 권한을 가진 경찰 당국이 증거물의 행방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상황은, 이게 ‘고의’인지 아니면 ‘중대한 과실’인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며칠 지난 뒤 국회에서 총리실발 가짜뉴스를 추궁당하자, 경찰과 총리실 측은 “이 대표가 피습당한 직후 현장에 있던 소방과 경찰 실무진이 작성한 뒤, 본청 상황실과 국무조정실 대테러센터 상황실 등에 보고한 문자”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른 면피용 해명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폐기물업체에서 발견된 와이셔츠 사진을 보면, 셔츠 목깃과 옷감 목 부위에 흉기가 관통한 구멍이나 당시 흥건하게 흘렀을 것 같은 핏자국이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된다. 이 대표는 이 와이셔츠를 입은 채 부산대병원까지 이송되었는데, 당시 현장의 소방과 경찰 실무진이 확연한 이런 외관 상태를 확인하고도 “1cm 열상으로 경상”이라고 보고했다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또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 해도 과연 정상적인 판단일까? 어떤 특별한 의도가 개입된 것은 아닌지 깊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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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권익위원회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응급 헬기 이송’ 관련 부정청탁·특혜 조사 보도. 채널A 뉴스 갈무리(2024.01.16.) ©채널A

 

#3

한편 피습 직후 여러 매체나 SNS상에 “자작극”, 칼이 아니라 “나무젓가락”, “종이칼” 등으로 조롱하는 가짜뉴스가 범람했다. 또 헬기 이송의 “위법성” 운운이나 “특혜” 운운하는 보도나 “지방 의료 무시” 운운하는 보도가 조·중·동과 종편을 중심으로 지면과 화면을 마구 뒤덮으면서 정작 테러당한 이 대표 소식이나 범행 진상 관련 수사 소식은 뒷전으로 밀리는 본말전도의 보도 상황이 전개되었다.

 

심지어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이 대표의 응급헬기 이송과 관련해 1월 16일 부정청탁과 특혜제공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하였지만, 이에 반해서 “소방청 매뉴얼 상 (이재명 대표의 응급 헬기 이용에) 문제가 없다”고 같은 날 소방청장이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밝히기도 하였다. 이 대표 흠집 내기 보도가 거의 코미디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인데, 이쯤 되면 정부 당국자들의 언동이 도무지 “말인지 방귀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린다.

 

한편, 범인은 범행 당시 품속에 ‘남기는 말’이라는 문건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범행 직후 경찰이 그 문건을 확보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범행동기와 관련된 이 문서에 대해 ‘입꾹’ 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사건 당일 ‘단독범행’이라는 범인의 진술을 그대로 언론에 소개하면서 마치 배후가 없는 단독범행인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러다가 이틀 뒤인 1월 4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범인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면서 "이 대표를 왜 찔렀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경찰에 내 변명문을 8쪽짜리로 제출했다. 그것을 참고해 주시면 된다"라고 답하였고,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냐” 등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서 변명문의 내용에 대해 취재에 나서자, 경찰은 ‘피의사실 공표’ 운운하며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래놓고는 다음날인 1월 5일 자 조선일보에 “지난 정부 때 부동산 폭망, 대북 굴욕 외교 등으로 경제가 쑥대밭이 됐다. 윤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재명이 당 대표로 나오면서 거대 야당 민주당이 이재명 살리기에 올인하는 형국이 됐다. 이대로는 총선에서 누가 이기더라도 나라 경제는 파탄난다”는 ‘변명문’ 내용이 보도된다. 조선일보 보도가 나온 직후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모 매체에 변명문 일부가 보도됐다”며 (변명문의) “일부 내용과 기사 내용이 비슷한 취지인 것은 맞다”고 사실관계를 기자들에게 확인해 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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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표 피습 관련 뉴욕타임스 보도(2024.01.03.) 갈무리 ©뉴욕타임스

 

그러나 1월 10일 경찰 수사 결과 발표문에는 압수수색까지 해가며 확보한 범인의 당적과 ‘남기는 말’(변명문)이 공개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근거 있는 의혹을 제기하며 범행동기 확인에 필수적인 당적과 남기는 말(변명문) 등을 공개할 것을 촉구하였으나 경찰은 끝내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는 미국 뉴욕타임스에서까지 이미 신상정보를 공개 보도했는데도 경찰은 범인의 신상정보 공개조차 하지 않으면서 얼굴 공개도 거부하였다. 앞서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2015년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 피습 직후엔 경찰이 피의자 신원을 바로 공개했는데, 참 기가 막힐 지경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되레 경찰은 1월 15일 이유 있는 의혹 제기에 반박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수사 및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4호에 근거해 공개할 수 없고, 또 피의사실 공표, 공무상 비밀누설 조항 등이 담긴 '형법 126조·127조', '수사 준칙', '공보 규칙' 등을 비공개 근거로 내세웠다. 그렇다면 법 규정을 위반하여 조선일보에 변명문(남기는 말)의 내용을 누출한 경찰관과 조선일보 보도 내용을 사실확인해 준 경찰관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경찰 당국이 징계나 형사처벌 등 어떤 조치를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경찰 당국은 아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자가당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관련하여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 내용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미 경찰이 소위 기자분들 사이에 통칭하는 ‘지라시’ 형태로 돌린 내용에는 (범인이) 오랜 기간 국민의힘 당적을 갖고 있다가 최근에 우리 당(민주당)에 위장 가입해서 이재명 대표를 테러하기 위한 기회를 노렸다, 이렇게 이야기 했지 않느냐”, 또 “(범인) 이분에 대한 금융거래내역 자금수수(수사를) 왜 하지 않나. 일부 변명문 발췌했는데 윤석열 대통령 관련 내용이 있다는 제보도 있다”

 

#4

범인이 이 대표에게 접근하는 과정도 계획적이고 치밀했다고 경찰이 밝히고 있다. “지난해 4월 인터넷을 통해 흉기를 구입해 범행에 맞게 개조했고, 접근성을 높이려 플래카드와 머리띠까지 제작했다. 이후 가방에 범행 도구와 칼을 넣은 채 다섯 차례에 걸쳐 봉하마을 등 이 대표의 공식 일정을 따라다니거나 사전답사까지 하며 기회를 노렸고, 지난 1월 2일 부산 가덕도에서 6번째 시도 끝에 이 대표를 습격했다.”

 

그런데 경찰의 수사 결과발표에도 여전히 이번 범행에 이르게 된 과정과 동기가 불분명하고, 또 공범 여부와 범행 자금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사되지 않고 있다. 우선 범인이 운영하는 부동산 사무실 월세도 몇 달 치 이상 밀려있는 상황이라는데, 범인이 6번씩이나 이 대표의 일정을 파악해서 행사에 참여하는 동안 소요된 적지 않았을 경비는 어디서 조달했는지, 그 자금출처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또 범인이 영장심사 받으러 가는 길에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을 뿐이고 범행을 사주받았을 가능성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는데도, 경찰은 “배후가 없는 단독범행”이라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경찰이 범행의 배후나 사주 여부를 제대로 수사한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범인이 이런 범행을 저지르기에는 다소 의외라고 생각되는 공무원 출신의 67세 노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범행동기나 범행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당연히 범인이 국민의힘 등 여당 계통의 정당을 탈당하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시점을 전후한 시기부터, 또는 최소한 인터넷을 통해 칼을 구입한 시점을 전후한 시기부터 범행 때까지의 행적을 탈탈 터는 수준으로 정밀 수사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경찰이 제대로 수사한 흔적이나 관련 수사 결과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사건 초기부터 나타난 암살미수 사건의 진상을 호도하는 상황 전개, 그리고 경찰 수사의 기본적 원칙조차 방기하는 부실 수사, 편향적 수사나 선택적 수사 결과 공개, 그리고 본말이 전도되는 언론보도 태도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그 와중에 정작 중요한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테러’, ‘암살미수’라는 이 사건의 핵심은 사실상 실종된 것이나 진배없다.

 

해방정국에서 빈발했던 정치지도자에 대한 테러나 암살 사례 등을 상기해 볼 때, 만일 이번 암살미수 사건이 이런 식으로 대충 얼기설기 마무리되면서 진상이 은폐되거나 수사 도중에 덮어지게 된다면 비슷한 정치테러가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만약 그리된다면 오랜 시간 우리 민중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쟁취해 온 우리 민주주의가 다시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엄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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