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KBS ‘김경록 인터뷰’ 중징계가 남긴 언론계의 과제지난해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언론 취재 관행 논란의 대표적 사건으로 꼽혔던 KBS ‘김경록PB 인터뷰 보도’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2월 24일 방통심의위는 전체 회의를 통해 ‘법정제재’ 중에서도 수위가 높은 ‘관계자 징계’를 의결했다. KBS가 재심을 신청하면서 아직 제재가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이례적인 중징계로 인해 ‘심의의 정당성’이 또 다른 쟁점이 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번 방통심의위의 심의에서 절차적 한계가 노출됐음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제제 절차상의 문제가 KBS 보도의 문제점을 희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KBS ‘김경록PB 보도’ 제재의 사유는 ‘인터뷰 취지 왜곡’
방통심의위가 KBS ‘김경록PB 인터뷰 보도’에 제재를 가한 사유는 분명하다. “인터뷰 전체 내용의 맥락을 왜곡하고, 결론에 부합하는 일부 내용만 인용하는 등, 언론의 고질적인 관행인 ‘선택적 받아쓰기’ 행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것인데 이는 자체조사를 한 KBS, 별도로 진상을 파악한 KBS시청자위원회 모두 공히 인정한 바다. 인터뷰 전체를 방송할 수 없는 물리적 한계로 인해 인터뷰 중 일부만 취사선택해 보도할 수밖에 없으나, 그 과정에서 인터뷰 대상자와 충분히 소통하여 방송사가 초점을 맞출 메시지와 발언들에 합의를 구했어야 하며, 그럴 수 없었다면 방송사가 초점을 맞춘 발언들과 상반되는 인터뷰 내용도 함께 전하여 균형을 맞췄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KBS 방송제작가이드라인에도 있는 지침이다. “인터뷰 대상자의 발언 취지와는 관계없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에 맞는 부분만을 발췌해 편집해서는 안 된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인터뷰 대상자에게 뉴스 및 프로그램의 의도, 인터뷰의 사용 목적 등을 설명해야 한다”, “인터뷰의 내용을 모두 사용하지 않거나, 일부만을 인용하고 나머지 내용들은 해설, 설명 등으로 처리하고자 할 때는 인터뷰 대상자에게 사전에 양해를 얻어야 한다” 등 인터뷰 보도의 수칙들이 상세하게 명시되어 있다.
KBS 취재진은 김경록PB 보도에서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그동안 인터뷰 이후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보도가 나갔다고 항의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다. KBS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제재는 ‘인터뷰이 발언 취지의 훼손’이라는 부적절한 언론 관행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검찰에 의존하는 관행도 개혁 대상, 이것도 KBS 보도의 교훈
KBS 보도로 얻게 된 중요한 교훈이 하나 더 있다. 인터뷰 취지 훼손과 더불어 KBS 보도에 제기됐던 시민들의 의구심은, KBS가 김PB 주장을 검증할 때 어째서 권력기관이자 조국 전 장관 사태에서 또 다른 이해당사자인 검찰에만 의존했느냐는 것이었다. ‘KBS와 검찰의 내통’이라는 의혹에 KBS는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이야기만 교차 검증하기 위해”, “진술 일관성 검증 차원에서” 검찰에 연락했을 뿐이라 해명했다. KBS 입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검증과 사실 확인의 최종심급을 검찰에만 한정시킨 취재 관행이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는 방통심의위 심의에 김PB가 제출한 의견서로 다시 양측이 법정다툼을 예고하고 있는 ‘검찰과의 내통’ 의혹과 관계 없이, ‘언론 관행 개혁’의 도화선이 됐다.
실제로 KBS는 김경록PB 보도 파문 이후 인터뷰 보도 관행의 문제점, 검증에서의 검찰 의존성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KBS 구성원의 동의하에 새로 임명된 엄경철 보도국장은 필수적인 출입처만 남기고 탐사‧심층 보도 인력을 확충하는 출입처 제도 개편, 기존 법조팀을 해체하는 수준의 대대적인 인적 쇄신도 단행했다. 검찰과의 내통이 사실무근이라는 KBS구성원들도 김경록PB 보도로 촉발된 취재 관행 개선의 필요성에는 대체로 동감하고 사후 조치에 함께 했다.
방통심의위는 ‘인터뷰 취지 왜곡’에 왜 ‘객관성 조항’을 적용했나
KBS 스스로 개혁에 나설 정도로 KBS 보도는 부적절했으며, 형식상 민간독립기구인 방통심의위가 충분히 제재를 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문제는 심의 과정이 비판의 소지가 컸다는 점이다. 우선 KBS 보도에 제14조(객관성) 조항을 적용한 점이 어색하다. 객관성 조항은 “방송은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하여 시청자를 혼동케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으로서 통상적으로 명백한 허위 보도 및 오보에 적용해왔다. 전체 인터뷰 취지의 왜곡을 ‘불명확한 내용’으로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그동안 방통심의위는 객관성 조항을 그렇게 확대 적용해오지 않았다.
이번 KBS 보도에는 제9조(공정성) 2항 “방송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여야 하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있게 반영하여야 한다”, 3항 “방송은 제작기술 또는 편집기술 등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대립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에 유리하게 하거나 사실을 오인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가 더 적합했을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많은 언론단체들은 그간 제9조(공정성) 조항이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공정성’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우려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편집에 따른 인터뷰 취지의 훼손 및 균형 상실’이라는 이번 사안의 본질에 이보다 더 적절한 다른 조항이 없다.
제재와 관련도 없는 ‘검찰 내통 의견서’, 방통심의위는 왜 불필요한 논란 자초하나
방통심의위가 김경록 PB의 의견서를 심의에 반영하면서 정작 징계 당사자인 KBS에는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은 절차의 문제도 있다. 김경록PB는 방통심의위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당시 KBS법조팀장이 수사 검사와의 친분을 거론하며 사실상 인터뷰를 강요했고, 카메라가 꺼지고 말한 소위 ‘오프더레코드’까지 검찰이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KBS-검찰 내통’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구체화한 것이다. 아직 회의 속기록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심의 과정을 방청한 후 작성된 기사들을 보면 심의위원들이 김경록PB의 의견서를 ‘인터뷰이 취지 왜곡’이라는 제재 사유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방통심의위는 반드시 KBS 측의 입장도 들어봤어야 한다.
심지어 김경록PB의 의견서가 말한 ‘검찰 내통’은 ‘인터뷰 취지의 왜곡’이라는 제재 사유와는 관련도 없다. 심의위원들이 굳이 의견서를 접수하지 않았어도 KBS 보도만으로 ‘인터뷰 취지 왜곡’이라는 제재 사유는 충분히 도출된다. 방통심의위가 불필요한 절차상 논란을 자초하여 심의 결과의 정당성까지 훼손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볼 수 있다.
사과‧정정만 해도 제재 감경하던 방통심의위, 개혁까지 한 KBS만 중징계?
이러한 심의 과정의 문제로 방통심의위의 이번 KBS 제재는 심의 정당성이라는 또 다른 쟁점을 야기했다. 하지만 그 쟁점은 비단 이번 KBS 제재에만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다. 방통심의위가 출범 당시부터 지금까지 노출하고 있는 차별적 심의, 즉 ‘종편 봐주기’까지 총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우선 방통심의위가 그간 일관적으로 사과‧정정 등 사후 조치를 한 경우 제재를 감경해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민언련이 2016년 8월 15일부터 12월 1일까지 심의 민원을 제출한 종편4사와 YTN‧연합뉴스TV의 시사 대담 방송 사례 65건 중 1/3에 해당하는 22건은 문제발언이 나와도 다른 출연자가 반론을 펴거나 제지했다는 이유로 ‘기각’ 또는 ‘문제없음’이 나온 바 있다. 반면 이번 심의에서는 KBS가 시민사회의 개혁 요구에 따라 회사 차원의 인사 개편까지 취했음에도 이 사실이 감면 요소가 아닌 중징계 결정의 근거로 작용됐다. 타사의 경우 단지 방송 도중에 반론만 펴도 제재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또한 납득할 수준이 못 된다.
방통심의위의 본질적 한계는 ‘종편 봐주기’에 있다
방송사마다 들쭉날쭉한 제재의 비일관성도 빼놓을 수 없다. 민언련이 2017년 5월 1일부터 2019년 12월 31일까지 2년 7개월 간 방통심의위에 접수된 보도‧시사 프로그램 심의 의결 결과를 분석한 결과,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 간 중징계 비율에 큰 차이가 있었다. 종합편성채널의 ‘법정제재’ 비율은 8.2%에 그친 반면, 지상파는 12.1%에 이르렀다. 반대로 ‘문제없음’의 비율은 종편 25.9%, 지상파 21%로 종편이 높았다. 방통심의위가 종편에만 가벼운 제재를 내리거나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공영방송과 지상파의 사회적 책무가 큰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종편이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문제 방송을 내놨을 때 ‘봐주기 심의’를 했다면 차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번 KBS제재가 과도하다거나 심지어 언론 자유 침해라 주장하기 위해서는, 방통심의위가 그간 보수세력의 특혜로 태어난 종편만 감싸주고, 종편의 언론 자유만 과하게 보장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종편 봐주기 심의’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방통심의위는 이번에 KBS가 인터뷰 대상자의 전체 취지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객관성 조항을 위반했다며 무려 ‘관계자 징계’를 내렸지만 “오산 미군 기지 앞에 고정간첩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허위 주장을 한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2018/11/15)은 심의 안건에 올리지도 않았다. “우리 군이 병사들에게 정훈교육하면서 주적관 없애고 일분을 주적으로 은근히 돌리고 있다”는 허위 주장이 나온 채널A <뉴스TOP10>(2018/11/14)는 ‘다양한 의견’이라며 행정지도인 ‘권고’에 그쳤다. 이런 사례들이 과연 KBS의 인터뷰 왜곡보다 가벼운 사안이었을까?
이러한 불균등한 심의의 역사는 오래됐으며 지상파 방송사는 오히려 별 문제가 없는 방송에서 제재를 받곤 했다. KBS <저널리즘토크쇼J>(2019/8/5)는 “조선일보 유료부수 120만부라는데 믿을 수 있나”라는 상식 수준의 의문을 던졌다가 이것도 ‘객관성 위반’이라며 ‘권고’를 받았다.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2017/11/24)은 국민의당 자체 여론조사를 ‘자체 여론조사’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진행자가 ‘하하’ 웃었다는 이유로 ‘객관성 위반’이라며 무려 법정제재 ‘경고’를 맞았다. 이번 KBS ‘김경록 인터뷰 보도’에 내려진 ‘관계자 징계’ 역시 앞선 사례들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엄중한 심의였다. 이렇게 엄격한 심의를 한다면 적용 조항과 절차에 아무 하자가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으니 방통심의위가 과거의 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KBS 제재가 남긴 과제들, 언론 개혁 목표 아래 이행하자
요컨대 KBS의 ‘김경록 보도’는 KBS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분명 부적절했으며, 제재가 불가피했다. 동시에 방통심의위의 의결 과정과 절차 역시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KBS는 이번 제재에 재심을 신청하겠다고 밝혔으니, 방통심의위는 각계의 문제제기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현명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 더불어 방통심의위가 보여줬던 심의의 일관성 부재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종편에게는 사실상 ‘봐주기 심의’를 일상적으로 반복하면서, 이번 심의처럼 지상파에게만 과도한 제재를 가한다면, 방통심의위 심의의 정당성과 언론자유 침해 논란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2020년 2월 2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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