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논란의 검찰총장 발언, 부적절한 언론관 노출된 건 아닌가검찰 개혁이 최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잇따른 실언으로 논란을 키우고 있다. 특히 발언이 모두 언론과 관련이 있어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언론관이 노출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지난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총장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와 문재인 정부를 비교하면 어느 정부가 그나마 중립적입니까?”라는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질의에 “대통령 측근과 형 이런 분들을 구속을 할 때 별 관여가 없었던 것으로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나고요. 박근혜 정부 때는 다 아시는 거고”라고 답했다. ‘MB 정부가 검찰 중립을 보장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다음날 “문재인 정부는 구체적 사건에 관해 지시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는 취지까지 말하려다 의원 질의로 답변이 끊겼다는 공식 해명까지 냈으나 ‘이명박 정부가 검찰 중립에 있어 상당히 쿨했다’는 애초 발언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현실은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정치 검찰’의 표본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의 무자비한 언론 탄압,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은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로 인해 공안 시대로 돌아간 듯 한 악몽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출범하자마자 공영방송 등 언론 장악을 시도한 이명박 정부는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을 쫓아내기 위해 ‘배임’이라는 무리한 프레임을 덧쓰웠고 검찰은 그에 발 맞춰 ‘배임’ 혐의로 정연주 사장을 기소했다. 2012년, 대법원은 정연주 전 사장 해임이 무효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고, 최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008년 당시 검찰의 기소가 “유죄판결 가능성이 없음에도 이뤄진 과오”라 확인했다.
MBC도 마찬가지다. 2008년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고발하자 이명박 정부는 전방위적인 탄압을 가했고 검찰은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려 했는데 이에 반발한 임수빈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이 스스로 검찰직을 내던지기도 했다. MBC 작가 및 PD들은 정권에 불편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출퇴근 길에서 체포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최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최교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무죄라도 좋으니 무조건 기소하라 했다’고 지시했음을 확인했다. MBC <PD수첩> 역시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네티즌들도 정권을 비판하면 검찰이 탄압에 나섰다. 인터넷 논객 박대성 씨는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2008년 하반기 리먼 브라더스의 부실과 환율 폭등 및 금융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경제 전망을 하고 설득력있는 글로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에 검찰은 허위사실 유포 전담반까지 신설해가면서 그를 긴급 체포하고 구속했으나 무리한 법 적용으로 드러났고 그는 곧 무죄로 석방되었다. 이처럼 정권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자 국제언론감시기구인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노무현 정부이던 2006년 31위, 2007년 39위에서 이명박 정부인 2009년 69위로 추락했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 당시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공영방송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데 검찰이 앞장 섰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언론 자유는 위축되고 언론인들이 암흑기를 보내는 사이 정권의 입맛에 맞춰 부당한 수사를 했던 검찰 인사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검찰 개혁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검찰의 수장이 이러한 역사를 모른다는 듯 이명박 정부를 호평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검찰총장의 언론인 고소, 또 다른 압력이다
‘무소불위’ 권력으로 언론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권위 의식을 내면화한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발언은 또 있었다. 17일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총장은 최근 자신과 관련된 의혹을 보도한 한겨레를 향해 “후속보도를 멈추고 공식 사과를 1면에 하면 고소를 재고하겠다”고 말했다. ‘사과하지 않으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식의 겁박에 가깝다. 지난 11일 한겨레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의 스폰서인 윤중천 씨 별장에 들러 접대받았다”는 윤중천 씨 진술이 있었고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 보고서에도 기록됐으나 검찰이 외면했다고 보도했다. 윤 총장은 곧바로 명예훼손으로 한겨레 및 관련 기자들을 고소했고 14일 수사가 착수됐다.
이에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 김학의사건팀은 성명서를 내 “수사를 상명하복 조직체계에 속한 검사들이 수사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검찰총장 고소와 동일한 결론을 정하고 수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검찰총장 개인 명예훼손 사건에서 검찰권 남용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언론노조도 “검찰권을 손에 쥐고 있는 검찰 수장이 형사사건으로써 이번 보도를 고소한 것은 힘으로 언론을 제압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실제로 검찰은 고소 3일만에 수사 착수, 5일 만에 내·외부 조사단원 조사 등 한겨레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의 수장이 자신을 향한 언론 보도 당사자를 즉각 고소하고 부하 검사들이 이를 즉시 수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아무리 윤 총장 개인이 억울한 점이 있다고 해도 수사‧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총장 본인의 조직이 직접 움직이는 일은 자중해야야 한다. 언론 보도로 인하여 침해되는 명예나 권리, 그 밖의 법익에 관한 다툼이 있는 경우 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제도인 언론중재 신청을 할 수도 있었으나 윤 총장은 곧장 고소를 택했다. 검찰을 앞세워 수사부터 시작한 것은 검찰권의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한겨레 보도에 문제가 있다면 김학의 사건 재수사의 당사자인 검찰이 검찰 과거사위와 함께 자료들을 다시 검토하여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면 그만이다. 정권에 발 맞춰 언론을 탄압한 전력이 생생한 검찰이 하물며 자기 조직 수장이 제기한 소송에는 오죽하겠느냐는 의심이 일 수밖에 없다.
개혁 요구 집중된 언론과 검찰, 검찰총장부터 앞장 서야
지난 두 달 간 ‘조국 정국’에서 언론은 검찰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검찰의 여론몰이에 동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 사건’ 등 언론과 검찰의 부적절한 관계는 관행으로 자리 잡은 뿌리 깊은 병폐였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검찰 역시 그 병폐의 한 축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간 검찰은 권력을 위해 언론을 이용하거나 짓밟을 수 있는 힘을 과시해왔다는 사실이다. 최근 사회적 화두로 언론 개혁과 검찰 개혁이 함께 꼽히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과 검찰 모두 개혁을 통해 거듭나야 하며 검찰 개혁에는 언론과의 건강한 관계를 재정립하는 방안도 포함되어야 한다. 윤석열 총장은 자신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검찰 개혁을 위해서라도 논란의 발언을 철회, 사과하고 언론사에 대한 소송전을 중단해야 한다. <끝>
2019년 10월 2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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