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2019년 6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에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6/17) ‘민간인 학살과 사찰 2부 – 대물림 된 국가폭력’을 선정했다.
2019년 6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 심사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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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
‘민간인 학살과 사찰 2부 – 대물림 된 국가폭력’ 매체 :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보도일자 : 6/17 |
선정위원 |
공시형(민언련 활동가),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박진솔(민언련 활동가), 엄재희(민언련 활동가), 이광호(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이봉우(민언련 모니터팀장) 임동준(민언련 활동가), 정수영(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 조선희(민언련 활동가) |
심사 대상 |
6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7개 방송사의 탐사보도‧시사 프로그램 (KBS <시사기획 창>‧<추적 60분>‧<저널리즘 토크쇼 J>,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당신이 믿었던 페이크>‧<PD수첩>, SBS <그것이 알고 싶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TV조선 <탐사보도 세븐>, 채널A‧MBN 없음.) |
선정사유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앞선 5월 13일 방송에서 이승만 정권 차원에서 설립과 가입을 주도한 보도연맹에 속했던 사람들이 한국전쟁이 일어나며 ‘이적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학살되었다는 사실을 알린 데 이어, 이번 6월 17일 방송에서는 학살 피해자의 유족들이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 중반까지도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전했다. 이처럼 <스트레이트>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르고 주목하지 않았던 국가폭력의 진상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자행된 보도연맹과 요시찰인제도가 일제의 잔재였다는 사실을 알린 점에도 의미가 있다. 뿌리 뽑지 못한 친일세력들로 인해, 친일의 잔재가 독립운동가나 평범한 양민, 그들의 가족들을 옥조여왔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지적한 것이다. 또한 2기 진실화해위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2기 진실화해위 출범을 위한 법안이 자유한국당에 의해 심사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잘못한 사람이 명확한데도 ‘논란’을 붙여가며 잘못한 주체를 밝히기를 꺼려하는 언론이 많은데, <스트레이트>는 그와 달리 잘못의 주체를 명확하게 밝혔다. 이에 민언련은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6/17) ‘민간인 학살과 사찰 2부 – 대물림 된 국가폭력’을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에 선정했다. |
우리들이 잊고 있던, 혹은 잘 몰랐던 국가폭력을 파헤치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앞선 5월 13일 방송에서 이승만 정권 차원에서 설립과 가입을 주도한 보도연맹에 속했던 사람들이 한국전쟁이 일어나며 ‘이적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학살되었다는 사실을 알린 데 이어, 이번 6월 17일 방송에서는 학살 피해자의 유족들이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 중반까지도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전했다. MBC <스트레이트>는 이처럼 보도연맹 학살 희생자와 희생자의 가족들이 겪은 2차 가해에만 주목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권력이 이들에게 휘두른, ‘보도연맹’과 ‘요시찰인제도’로 대표되는 폭력이 모두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일제의 잔재에서 비롯됐음을 명확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MBC <스트레이트>는 보도연맹 학살 희생자의 유해 발굴과 희생자 유족의 2차 가해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2차 진실화해위 출범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MBC <스트레이트>는 앞선 5월 13일 방송을 통해 이승만 정권에서 평범한 양민이나 독립운동가를 ‘보도연맹’에 가입시킨 다음, 학살한 사건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1949년에 조직된 국민보도연맹(일명 ‘보도연맹’)은 일제강점기 때의 ‘보국연맹’을 본뜬 것이었다. 일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는 데도 한계가 있었기에 이들을 전향시키고자 만든 것이 바로 ‘보국연맹’이었다. ‘보도연맹’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좌익 사상범이나 이승만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아 전향시키겠다고 만든 단체였다. 정권 차원에서 만들고, 쌀이나 고무신 등을 준다며 사람들을 가입시켰지만, 정권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보도연맹원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적행위를 할 수 있다며 학살했다. 학살당한 희생자 중에는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이 상당수 포함됐으며, 약산 김원봉 선생의 가족들도 포함됐다. 당시 학살에 참여했던 사람의 상당수는 친일파였다. MBC <스트레이트>는 이들이 처벌 받지 않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권력과 명예를 누렸다고 지적했다.
△ 보도연맹 학살 피해자 유족들의 2차 가해 문제 짚은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6/17)
한국전쟁 당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 외에, 이승만 정권 차원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살 사건은 잊었거나 모르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매년 한국전쟁이 시작된 6․25가 다가올 때마다, 전쟁 속에서 희생된 국군과 일반인들은 조명되지만, 이처럼 전쟁 중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이 조명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MBC <스트레이트>는 언론의 조명에서 소외된 희생자들을 주목하고 진상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희생자 유족들이 겪었던 2차 피해의 참혹함 전해
한국전쟁 중 국가권력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보다 언론의 관심에서 더욱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희생자들의 유족일 것이다. MBC <스트레이트>는 6월 17일 방송에서 바로 학살 피해자 유족에 주목했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학살된 피해자의 가족들이, 전쟁 이후에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MBC <스트레이트>는 한국전쟁 당시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선생의 형제 4명도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되었고, 살아남은 가족들이 4․19 혁명 이후에야 죽은 이들의 유해를 추슬렀다고 전했다. 그러나 5․16 쿠데타에 성공한 군인들이 어렵사리 모신 유해를 파헤치고, 회수해갔다는 사실을 알렸다.
실제로 경남 밀양의 김 씨 일가 선산에 가면, 보도연맹 학살 희생자의 유해가 600여 구 정도를 묻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600여 구나 있을 만한 큰 묘지가 보이지 않았고, 당시를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주민들은 “(5․16 쿠데타 성공 이후) 정부에서 묘지 할 필요 없다. 빨갱이니까 가치 없다”고 하며 무덤을 없애버렸다고 증언했다.
또한 MBC <스트레이트>에서는, 군사정권에 의해 수차례 재판에 선 유족들이 최고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 중, 학살 피해자의 유족이 학살 희생자의 유해를 수습하고 위령제를 열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받기도 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유족에게 징역형을 내린 이유였던 위령제에는 법원장과 경찰서장까지 참석했다. 사실상 국가기관에서 인정해준 것으로 볼 수 있었던 위령제를 가지고, 군사법정에서는 징역형을 선고한 것이었다.
일제의 잔재가 고스란히 희생자와 유족 옥죄는 국가폭력으로…
MBC <스트레이트>에서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에 이르는 동안, 국가권력이 일제의 잔재인 ‘요시찰인 제도’로 학살 피해 유족들을 감시해왔다는 사실도 전했다. 앞선 이승만 정권의 ‘보도연맹’이 일제강점기의 ‘보국연맹’을 본뜬 것처럼, 요시찰인 제도는 식민시절 일제의 탄압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일제 경찰의 기록에는 김구 선생의 종교는 물론 성격과 표정까지 나와 있는데, 해방 이후에는 (친일 경찰이 계속 득세하면서) 이런 감시기술이 진화하여 기록이 더욱 자세해졌다. 기록에는 사찰인물이 사는 집안의 구조는 물론, 유사시 사찰인물을 감시하는 기관인들이 매복할 지점까지 나와 있었다.
요시찰인 제도에서 ‘요시찰인’은 시찰이 필요한 사람, 즉 사상·보안 문제와 관련하여 당국의 감시를 받는 사람을 말한다. 요시찰인 제도는 특정 인물을 일정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감시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초반 만들어져 1920년대에 완성되었다. 이처럼 요시찰인제도는 명백히 일제의 잔재를 본떠 발전시킨 것이었고, MBC <스트레이트>는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한 것이다.
MBC <스트레이트>에서 지적한 학살 피해자 유족들이 겪은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유족들은 죄를 지을지 모르는 사람을 미리 잡아둔다는 ‘예비검속’으로 법원 영장도 없이 수시로 잡혀갔다. 간첩 누명을 쓰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며, 경찰들은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금품을 갈취하기도 했다. 유족이 여성일 경우에는 빨갱이의 딸, 빨갱이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성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MBC <스트레이트>는 이처럼 각종 관련 자료에 의해 학살 피해자 유족들이 겪었던 피해 사실을 전하는 한편, 실제 유족들을 만나 “1990년대 중반까지도 (국가권력에 의해) 감시를 당해왔다”는 증언을 듣고, 이를 통해 유족들이 겪었던 피해를 알리기도 했다.
보도연맹 학살 가해자, 사건 관련성 인정하기도
MBC <스트레이트>에서는 지난해 발표된 반헌법행위자 열전에서 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학살 책임자 23명을 살펴봤다. 이들은 국무총리, 국회의장, 장차관, 국회의원 등 정부 요직에 올랐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 중 절반 이상 친일이력이 있으며, 특히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이 5명이나 됐다. 가해자 거의 모두가 나이가 많고 세상을 떠났지만, 유일하게 접촉이 가능했던 사람이 바로 장경순이라는 사람이었다. 장경순은 한국전쟁 당시 육군특무부대 차장이었는데, 최근 보수단체 집회(일명 태극기집회)에서도 연사로 등장해 “역대 대통령 중 돈을 모르는 사람이 딱 3명 있다.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다. 이 빨갱이들이 이런 정국을 만드는데 우리가 지면 안 된다. 계엄령을 선포해서 좌익들을 모두 체포해야 한다”면서 극우 발언을 쏟아냈다. 장경순은 본인이 “육군특무부대 본부장과 박정희 장군과 술 먹는 친구 사이”였다며 박정희와의 친분을 말하는 데는 거리낌이 없었지만, 보도연맹 학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치적을 말하는 부분에서 “빨갱이 잡는 데 1등”이었다며 결국 보도연맹 학살 사건과의 관련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MBC <스트레이트>는 이처럼 보도연맹 학살과, 학살 피해자 유족들의 2차 피해를 전하면서, 이미 공개된 자료에만 의존하여 보도하지 않았다. 공개된 자료에서 학살 가해자 중 접촉이 가능한 사람을 추적하고 직접 만나서, 사건 관련성에 대한 답을 듣고자 노력했다.
2차 진실화해위 출범을 막는 주체 명확히 지적
보도연맹 학살 피해자의 유족들은 2기 진실화해위 출범을 호소 중이다. 2005년 출범했던 1기 진실화해위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흐지부지 끝나게 되었다. 보도연맹 피해자들의 유해 매장지는 전국 168곳이나 되지만, 발굴은 1기 진실화해위 활동 당시 13곳만 이뤄졌고, 1기 진실화해위 활동이 이명박 정부 들어 2010년 끝나게 되면서 13곳의 유해 발굴마저 중단되었다.
MBC <스트레이트>는 2기 진실화해위 출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진실화해위 활동 재개를 위한 법안이 7년째 발의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기는커녕 법안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MBC <스트레이트>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국가가 행한 폭력을 국가는 외면하고 피해자는 울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래야 하느냐고 지적하며 끝을 맺었다.
MBC <스트레이트>는 무자비하게 자행된 국가폭력을 알렸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르고 주목하지 않은 국가 폭력을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서 휘두른 폭력이 일제의 잔재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을 알린 점에도 의미가 있다. 뿌리 뽑지 못한 친일세력들로 인해, 친일의 잔재가 독립운동가나 그의 가족, 평범한 양민이나 그의 가족들을 옥죄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지적한 것이다. 또한 2기 진실화해위 출범을 위한 법안이 자유한국당에 의해 심사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잘못한 사람이 명확한데도 ‘논란’을 붙여가며 잘못한 주체를 밝히기를 꺼려하는 언론이 많은데, MBC <스트레이트>는 그러지 않고 명확하게 잘못의 주체를 밝힌 것이다. 이에 민언련은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6/17) ‘민간인 학살과 사찰 2부 – 대물림 된 국가폭력’을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에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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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박진솔 활동가(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