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를 모셔 놓고 산다
등록 2014.06.1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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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웹진 [e-시민과 언론] 15호부터는 생활글 ‘이바구저바구’가 새롭게 시작됩니다. 그 첫번째 글은 '작은책'의 발행인 안건모 선생의 책이냐, 침대냐를 둘러싼 부부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글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 모두 '이바구저바구'에 글을 보내실 수 있습니다. 삶이 담긴 다양한 글들을 기다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이바구저바구] 책이냐, 침대냐

침대를 모셔 놓고 산다


안건모([작은책] 발행인)



이해할 수가 없다. 아내와 가끔 책 때문에 싸운다. 책이 왜 문제일까? 집에 책이 많다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정말 더는 못 참겠다.  


어제 저녁 일이다. 요즘 마감과 내가 쓰는 책 일이 겹쳐서 저녁 늦게 들어갔다. 열두 시. 오랜만에 아들도 들어와 있다. 서른한 살 먹은 아들도 요즘 일터에서 일이 많다고 늘 집에 안 들어오거나 늦게 들어온다. 오늘은 쓰레기 분리수거 날이다. 들어가자마자 아내한테, 


“쓰레기 아직 안 버렸지?”


“응, 갖다 버려야 돼. 아들! 아버지하고 쓰레기 좀 버리고 와.”


아들과 사이좋게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고 들어왔는데, 아내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침대 위에 책은 뭐야? 또 산거야?”


또 시작이구나. 아내가 소리 지르는 버릇은 평생 못 고친다. 우선 소리 지르는 데 반발심이 불끈 솟아오른다.


“왜? 아직도 회사에 내 책 많아. 갖다 놓을 데가 없어서 안 갖고 오고 있어.”


“책 좀 골라서 버려. 안 읽는 것도 많잖아. 그 많은 책 어떻게 할 거야?”



△ 안건모 선생 댁의 침대


아내가 하는 말을 이렇게 글로 옮겨 놓아서 그렇지 아마 영상으로 본다면 누구라도 싸우자고 덤비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이건 처음부터 대화가 아니다. 뭐 아내도 내가 하도 책을 사들이니까 화가 날 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성질부리면서 소리를 지르면 곱게 대꾸할 수가 없다. 게다가 저 침대를 버리고 침대 뒤에다 책장을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왜 저 침대를 놔두는 걸까? 늘 그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더 화가 난다. 비꼬는 투로 한마디 던졌다. 


“그럼 침대를 버리면 되잖아.”


“침대를 왜 버려? 책 좀 그만 사다 날라!”


“그럼, 혼자 살면 되잖아. 뭐하러 같이 살아?”


나도 목소리가 커진다. 같이 살기 싫으면 혼자 살면 될 텐데 왜 맨날 이렇게 싸우자고 덤빌까?


“혼자 사는 게 문제야? 책 좀 그만 사라니까.”


헐~ 동문서답이네. 서로 마음에 안 맞으면 헤어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은 건데 혼자 사는 게 문제냐고 반문한다. 이쯤되면 내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다. 아들은 제 방으로 들어갔지만 우리가 하는 싸움을 다 듣고 있겠지. 듣고 있거나 말거나 눈알을 부라리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럼, 혼자 살라고! 혼자 살면 그런 책 쌓아 놓은 거 안 봐도 되잖아!”


화가 더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벗었던 옷을 다시 입고 그대로 나와 버렸다. 어차피 회사에서 밤새 일하려고 맘을 먹었었는데 다시 가서 일이나 해야겠다. “어디 가?”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차를 몰고 회사로 다시 와 버렸다. 새벽 2시였다. 회사 냉장고에 있는 술을 찾아 컵에다 따라 먹었다. 아직도 화가 안 풀린다. 


자세한 내막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책 좀 그만 사들이라는 아내 말만 들으면, 내가 만날 책만 사들여 우리 집에 책이 무지무지 많은 줄 착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물론 다른 집보다 많기는 많다. 지금 비어 있는 작은 방에 책장 다섯 개에 책이 꽉 차 있고 바닥에도 쌓여 있다. 그리고 아들 방 베란다에 책장이 두 개, 거실에 세 개, 모두 책들이 꽂혀 있다. 또 거실 베란다 쪽으로 허리만큼 쌓아 놓은 책들이 있다. 그곳은 베란다 창문이 있는 곳이라 길다란 책장을 놓을 수가 없다. 아참, 식탁 위에 올려놓은 탁상용 책꽂이에도 책이 한 열 권 있다. 그리고 내가 자는 안방에 앉은뱅이책상이 있는데 거기에도 책이 허리만큼 쌓여 있다. 하지만 아직도 놓을 자리가 많이 있다.


안방은 작은 방이 아니다. 그런데 장농놓인 자리 말고 정확히 침대가 방을 반 차지하고 있다. 이 침대는 1993년에 여기로 이사올 때 큰돈 들여 사놓은 것이다. 처음에 이 침대를 살 때 나는 반대했다. 침대에서 잘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달라 며칠 자 보니까 허리가 아팠다. 나같이 천한 놈들은 역시 맨바닥에서 이불 깔고 자야 된다. 우리 민족이 다 그렇지 않을까? 아내도 별로였던지 침대 위에서 자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 침대는 쓰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요즘 아내는 거실에서 혼자 맨 바닥에서 자고 나는 침대가 있는 방바닥에서 잔다.(섹스리스 부부인가 궁금해 하지 마시라.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침대 오른쪽에는 앉은뱅이책상이 하나 있다. 그 책상 위에도 책이 있다. 책상 뒤쪽으로는 창문이라서 긴 책장을 놓을 수가 없다. 


침대 위엔 기타와 악보, 그리고 내가 놓아둔, 요즘 보는 책들이 늘 서너 권정도 있다. 책을 꼭 한 권만 집중해서 보는 게 아니라 싫증나면 이것저것 보는 편이라 보던 책을 거기 올려놓는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이 침대 위에 뭐가 있는 꼴을 못 본다. 일주일에 하루는 침대 위에 있는 책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기타는 문 뒤에 세워져 있다. 아내가 치우는 것이다. 


우리 집엔 책이 남들보다 조금 많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놓을 때가 많다. 어떤 이들은 우리 집 거실을 보고 “아니, 왜 이렇게 썰렁해. 빈집 같애.” 한다. 가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거실엔 4인용 소파와 맞은편 벽 쪽에 텔레비전 올려놓는 긴 받침대 정도밖에 없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결론을 맺자. 나는 책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집에 들어가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바라보는 그 느낌이 좋다. 침대 위에도 이불 위에도 늘 책이 몇 권 뒹굴고 있다. 책 제목만 봐도 가슴이 뛴다. 청탁받은 원고 주제나, 내일 할 일을 책 제목에서 영감을 얻을 때도 있다. 궁금하면 그 책을 뽑아 펼친다. 그러다가 재미있으면 바로 몰입이 된다. 


한 가지 의문. 왜 우리가 서양인들이 쓰는 침대를 ‘모시고’ 살아야 하나. 가만히 생각하면 1993년부터 2014년까지 20년 넘게 우리가 침대를 모시고 산 격이다. 우리 몸에도 안 맞고, 자리만 차지하고, 따뜻한 방바닥의 온기도 느낄 수 없는 침대를, 왜 20년 넘게 방안에 놔두고 살아야 하나. 텔레비전에서 멋진 침대에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는 광고를 보고, 그런 침대가 방안에 하나쯤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침대가 놓여 있으면 삶이 우아해진다고 착각하는 건가? 혹시 허례허식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다음날 저녁,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 바닥에 누워 있던 아내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묻는다.


“밥 먹었어?”


“먹었어.”


“식탁 위에 빵 먹어.”


식탁을 보니 생협에서 사 온 빵이 있다. 웬일이래? 배가 고프지 않아 그냥 잔다고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씻고 침대 옆 바닥에 누웠다. 기지개를 켜느라 침대 밑으로 손을 뻗었는데 뭐가 잡힌다. 이게 뭐지? 아, 책이다. 아내 몰래 감춰 둔 책이 열댓 권이 있다. 이거 아내가 보면 또 싸우자고 덤빌 텐데 어쩌지? 내가 무슨 책을 여기다 넣어놨을까? 보다가 나는 또 그 책에 빠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