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호] [민언련과 나] 깊고 한결같던 이사장님을 그리며…
등록 2015.10.1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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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과 나]

깊고 한결같던 이사장님을 그리며…

 

 

 

김시창 회원

 

나는 사람 복이 많다. 과분할 정도로 많다. 그래서 내 인생이 특별히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어렵고 힘든 일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늘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아픔을 나눠가지는 사람들이 있었고, 즐겁고 기쁠 때 행복함을 나누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그 가운데 오십 가까이 살아오면서 특별히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생각하니 민언련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했을 때가 단연 떠오른다.

 

왜 행복했을까
좋은 사람들이 넘쳐날 정도로 많아서였다. 한국 언론운동의 산 역사이신 많은 해직언론인 선생님들이 계셨고, 그 분들을 존경하고 지지하는 언론인들과 교수, 전문가들이 지원군처럼 함께 있었다.
다양한 직업과 일을 가진 뜻있고 올곧은 시민회원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그분들은 몸과 마음을 다해 신명나게 활동을 했다. 그리고 젊음을 바쳐 열성적으로 일한 아름다운 사람들, 상근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런 분들 속에서 함께 일을 했으니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겠는가. 모두가 더 가져갈 생각을 않고, 더 갖다놓을 생각들을 하니, 하루하루가 감동의 나날이었다.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지 못함을 미안해했다. 교육이나 행사가 있을 때는 자원봉사하겠다는 회원들이 기다렸다는듯이 늘 주변에 있었다. 시민회원들은 상근자들을 도와주면서도 고마워했고, 교수와 현업인들은 강의와 글쓰기 또는 토론이나 정책 제안 등을 통해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태주면서도 나서지 않고 겸손해했다. 그 큰 흐름속에는 성유보(이룰태림) 전 이사장님이 계셨다.

 

‘깊고 푸른 강’, 성유보 전 이사장님

 

 

 


평생을 언론개혁과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살아오신 분. 자리와 직위, 나이를 앞세워 말씀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던 분. 겉과 속, 말과 행동, 눈빛과 마음, 모든 게 한결같았고, 배려와 이해심은 누구보다도 높았지만 사심과 이익추구 따위에는 누구보다도 어울리지 않으셨던 분.


내가 일했던 당시 민언련에는 성유보 전 이사장님이 ‘깊고 푸른 강’처럼 계셨다. 그 분 앞에서는 누구랄 것 없이 존경과 배움의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성유보 전 이사장님은 지난 1998년부터 5년 동안 민언련 이사장을 역임하셨다. 그 때는 언협에서 민언련으로 전환하던 때였다. 나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5년 동안 상근 활동가로 일했다. 그래서 성유보 이상님은 그 이후로 숱한 호칭을 가지셨지만 내겐 언제나 이사장님이셨다. 성유보 이사장님, 이사장님, 이사장님….


살아오면서, 가까이에서 함께 일하고 이야기 나눈 사람들 가운데 이 분만큼 ‘깊고’ ‘한결같은’ 분을 아직까지는 더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민언련에 대한 기억은 성 전 이사장님의 눈빛처럼 한결같고 깊다. 그 눈빛이 있었기에 민언련에서 상근자로 일했던 시간들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리라. 

 

잠들어 있지 않아요. 천개의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날고 있죠.
지난 해 10월 8일, 성유보 전 이사장님이 타계하셨다.
그날 민언련으로부터 온 부고 문자를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세브란스 장례식장에서 절을 하고 나서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1년이 다 된 지금도, 돌아가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아직 내 핸드폰에는 성 전 이사장님의 예전 번호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냥, 영원히 지우고 싶지 않다. 언젠가 한 번 눌러보면 변함없이 반가운 톤으로 답해주실 것 같다. “어, 나여, 오랜만일세.”하며.


지난 해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민언련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노래를 불렀다. 특히 그 가운데 성유보 전 이사장님 추모곡으로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죠”
노래를 부르다보니 꼭 성유보 전 이사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어 있지 않다’고, ‘자유롭게 날고 있다’고.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
민언련에서 일할 당시에는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 민언련 창립 30주년 때가 되면 세상이 참 많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 안타깝고 비참하다.
타계하시기 바로 전까지 한반도의 통일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새로운 꿈을 꾸시던 성 이사장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평생을 한국 언론민주화 운동을 위해 살아오신 성 전 이사장님이 계셨다면 지금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는 원풍 모방 해고 노동자 박순희씨의 말을 듣고 그 길로 <원풍 모방 노동 운동사>(삶창, 2010)를 구해 읽어봤다는 성 전 이사장님. 안타까움과 비참함을 넘어 비관적이기까지 현실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마치 지금, 그 말씀을 또 하시는 듯 하다.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