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호] [여는글] 보도지침 폭로 30년, JTBC의 역할과 언론 운동의 과제
등록 2016.12.2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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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은 군사정권이 언론을 직접 통제하던 방식의 하나다. 보도지침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도 행해졌지만,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년 9월 폭로되면서 세상에 그 실체가 확인되었다. 언협(민언련의 전신)이 폭로한 보도지침은 전두환 정권의 폭압성과 기만성을 만천하에 폭로했고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의 하나가 되었다.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시달한 584건의 보도지침에는 정치권력이 무슨 기사를 보도할 것인지 아닌지와 그 크기, 그 내용, 지면이나 방송 보도 순서 등을 세세히 통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보도지침 대상은 정치·경제·사회·문화·외교·국방·남북관계·국제문제 등 전방위에 걸친 기사와 사진 등이었다.  

 

보도지침이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비밀리에 전국 서점에서 판매되면서 전두환 정권의 언론탄압과 여론조작은 물론 정권 차원의 범죄나 비리 축소 은폐, 공안정국으로 몰아가기 위한 공안 사건 조작 등의 실체가 밝혀졌다. 전두환 정권은 정부 비판 성명서에 대해서도 체포 구금을 당연시하는 등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탄압하고 언론을 정권 하부 선전 홍보기구로 악용했다. 

 

보도지침 폭로는 전두환 정권에 완전히 장악됐던 ‘제도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하지 못해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받았던 현실을 폭로해 시민사회의 분노를 끌어내고 군부 통치 종식을 외치는 결정적 기폭제의 하나가 되었다. 당시 신군부에 저항하던 노동, 시민사회 단체의 민주화 운동이 치열했다. 언협의 보도지침 폭로는 군부 통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지 구체적으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보도지침 폭로 이후 수 개월 만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알려지면서 군부 통치 종식을 외치는 범사회적 민주화 투쟁이 전국에서 발생했다. 

 

보도지침은 정권이 언론을 정권의 나팔수로 여기고 제 마음대로 주무르고 이용하는 수단이었다. 보도지침으로 상징되는 군사정권의 언론통제 형식과 내용은 ‘이명박근혜’ 정권 등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정권을 거치면서 진화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정부 기관이 일상적인 업무의 하나로 보도지침을 내려보냈지만 시민사회의 민주화 투쟁으로 사회 전반에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그 방식은 매우 교묘해지고 간교해졌다. 

 

군사정권에서는 보도지침을 내려보내는 정부기관이 정보부나 언론담당 행정부처 등 전방위적으로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보도지침은 정보기관원이나 경찰, 보안사 소속 직원이 언론사에 상주하고 정권이 맘에 들지 않는 기사 등을 보도한 언론인을 연행, 구금하거나 사주를 시켜서 부당한 인사를 강요하는 방식과 같은 다양한 통제 방식과 함께 악용되었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조중동이 정권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고, 군부 독재 시절과 같은 언론 통제는 사라졌다. 그렇지만 낙하산 사장 내려 보내기는 여전했다. 
‘이명박근혜’ 정권 기간 동안 정치권력의 언론통제는 매우 사악하고 간교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선거 참모 출신 전직 언론인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내려보내 인사와 경영을 통해 방송사 내부를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했다. 허수아비 언론사 사장이 청와대 등에 의해 원격 조종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사장이나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처럼, 정권에 의해 투하된 낙하산 사장이 청와대 지시를 보도국에 강요하는 형식이다. 과거 군사정권처럼 정부의 기관원 등이 앞장서 보도지침을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언론사에 투입된 정권 협조자를 수단으로 삼아 언론을 통제했다. 이런 방식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에게는 부당징계나 해직을 자행해 다수 언론인을 위협해 침묵하게 만들었다. 

 

MBC, YTN 등은 공정보도와 진실 보도를 외치는 언론인에게 갖가지 불이익을 주는 인사 조처를 남발하고 부당해고 당한 언론인이 승소해도 원상회복을 시키지 않고 대법원까지 밀어붙이는 식의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 불법해고도 언론통제의 한 방식으로 악용하고 있다. 언론인 불법해직 방식도 정권에 따라 진화하는데 그 방식이 악랄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정희 정권은 동아, 조선일보 기자들의 언론 자유 투쟁에 대해 투쟁에 앞장선 기자들만 전원을 해직시킨 데 비해 80년 신군부는 광주항쟁 당시 저항한 언론인들과 함께 부패 기자를 포함했다. 이른바 언론자유 투쟁 구심점을 약화하려는 음모적 발상이다.  

 

박근혜 정권과 언론의 관계는, 박근혜 게이트가 폭로된 뒤 박 대통령이 두 차례의 담화를 통해 자기변명과 거짓말,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기자들이 질문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받아쓰기만 한 것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질문지를 사전에 받는 식의 기자회견도 거의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을 하는 담화 발표 방식의 기자회견만을 해왔다. 언론이 대통령의 확성기로 악용된 것이다. 후퇴하는 한국 언론 자유 현황을 국내외에 드러내는 국가적인 치욕이다. 

 

1986년 보도지침이 나온 그 다음 해 체육관 대통령 선거가 저지되고 대통령 직선제가 관철되는 시민혁명이 폭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되는 올해 JTBC가 폭로한 태블릿 PC가 박근혜 정권의 치부를 폭로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을 ‘공범, 피의자’로 전락시키는 결정타를 가했다. 30년 전 보도지침을 폭로한 <말>은 반독재 저항언론이었고 JTBC는 언론 악법에 의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종편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실감케 한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은 그 속성상 언론의 감시 대상이라는 철칙에 비춰 21세기 한국형 언론운동은 정교하고 탁월한 논리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고승우 이사장 konews8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