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한국 언론 경제보도의 민낯
김수정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등록 2019.05.20 15:26
조회 826

제 발등 찍힐 줄 모르나? 언론이 자본에 종속된 풍경 ‘씁쓸’

“경제신문이라고 하면 보통은 경제에 집중해서 경제에 전문성을 갖고 보도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경제신문 경제기사는 일반신문의 경제면 보다 훨씬 더 부정확할 때가 많다. 일방적으로 대놓고 기업의 편을 들고, 왜곡하는 기사를 쓴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5월 12일자) 43회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 회계사기에 눈감은 언론’ 편에 출연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는 한국의 경제신문이 기업 친화적 왜곡 보도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삼성이 주요 광고주인 언론의 입장 탓이다. 삼성에게 불편한 뉴스보다는 되도록 삼성을 좋게 보이도록 하는 뉴스를 많이 내보내서 그걸로 사태를 덮어씌우려는 호의보도를 주로 한다는 말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 <삼성 보도자료의 60%는 경제지에서도 볼 수 있다>(5월 17일) 보고서를 보면 심증이 점점 깊어진다. 지난 2월 1일부터 5월 9일까지 삼성그룹이 낸 보도자료는 총 93건이다. 삼성의 보도자료를 지면에 기사화한 경우를 모니터한 결과 한국경제 63.4%, 매일경제 59.1% 순으로 가장 많았다. 동일 기간 동안 주요 일간지를 비교하면 동아일보가 44.1%로 가장 높고, 경향신문이 32.3%, 조선일보 23.7%, 한겨레 17.2% 순이다. 경제지와 일간지의 게재율을 단순히 비교해도 경제지의 삼성 보도자료 인용 정도가 일간지에 비해 2배에서 3배에 이를 정도로 상당하다. 의외지만 중앙일보가 15.1%로 보도자료 인용이 가장 적었다. 

 

‘삼성바이오 회계사기’라고 큰소리 낸 언론사 어디일까?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관련 보도에서 가장 적극적인 언론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이다. 한겨레는 다수 언론들이 쓰고 있던 ‘분식회계’, ‘회계부정’, ‘고의분식’ 표현을 일찌감치 ‘회계사기’로 고쳐 썼다. 

 

4월 25일 한겨레는 <삼성 압박에…회계사들 ‘삼바 분식’ 덮으려 거짓 진술>을 1면에 실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이 ‘콜옵션 조항을 사전에 알았다’는 거짓말을 삼성바이오 요구로 했다고 진술을 확보했다는 내용이다. 콜옵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애초부터 알려졌다면 삼성바이오의 가치는 대폭 줄었을 테고 삼성 바이오를 소유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검찰이 이 사건을 ‘경영권 승계용 회계사기’라고 보고 수사를 진행하는 이유와 밀접하게 연관한 기사였다.

 

이날 일간지의 1면 보도에는 어떤 기사가 실렸을까? 중앙일보는 <아버지는 메모리, 아들은 비메모리>, 경향신문은 <시스템 반도체 133조 투자-삼성전자 첫 ‘이재용 플랜’>, 동아일보는 <삼성 “시스템반도체 133조 투지” 1위 승부수>를 보도했다. 삼성이 4월 24일 <삼성전자,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 투자‧1만 5천명 채용>으로 보도자료를 낸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반도체 ‘반쪽 1위’ 삼성, 비메모리 133조 투자>라는 보도를 2면 톱기사로 배치했다. 삼성 보도자료가 일간지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겨레도 삼성의 ‘반도체 2030’ 기사를 같은 날 보도하기는 했다. 지면 편집상 가장 하단에 놓인 점만 달랐다. 기사가 실렸던 15면은 경제면이었다. 경제면 톱기사는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비판 기사였다. 

 

신문매출에서 광고‧부가사업 수입과 판매수입 비중이 8:1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 신문산업 실태조사’에서 2017년 신문산업 매출액은 3조7695억 원으로 전년 대비 3.2%가 증가했다. 신문산업 매출에서 종이신문의 매출액은 86.8%였고 이 중에서도 일간지는 2억9408억 원으로 78%를 차지했다. 일간지의 매출액에서 광고수입은 60.7%였다. 부가사업 및 기타사업 수입이 20.7%, 종이신문 판매수입은 12.9%, 인터넷상의 콘텐츠 판매 수입이 5.7%로 나타났다. 신문산업이 부가사업과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구조가 심화하고 있다.

 

광고주 눈치 보는 프로모셔널 저널리즘
신문기업이 생존을 위해 기업이나 기업 제품 혹은 서비스에 대해 호의적인 보도를 내놓아서 소비자들이 기업에 우호적인 인식을 갖도록 영향을 끼치는 저널리즘 현상을 ‘프로모셔널 저널리즘(promotional journalism)’이라고 일컫는다. 프로모셔널 저널리즘은 경제기사, 특히 기업보도가 광고와 호혜적으로 교환될 수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업이 최대 광고주이니 언론보도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신문사 경영에서 광고수입과 기업을 통한 부가사업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광고주에게 불리한 기사를 내놓기가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저널리즘의 공정성 판단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사를 독자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뉴스가치로 판단하기보다 신문사 매출에 중요한 뉴스인가를 내세우게 될 수 있다.

 

장충기 문자 사건이 겹쳐진다. 언론사 간부가 삼성 핵심 인사에게 “어떻게 해야 삼성을 도울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씁쓸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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