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적폐청산 없이 EBS 바로 세우기는 불가능하다
박근혜 청와대 지시로 프로그램 만들고도 큰 문제 아니라는 EBS 부사장, 한심하다
등록 2019.01.1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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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가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 홍보를 위해 청와대 지시를 받아 프로그램을 제작·방송한 사실이 미디어오늘 보도(2018/12/10 https://bit.ly/2TzS6O6)로 드러났음에도 EBS 경영진의 인식 수준은 안이하기만 하다. 관련 사실이 드러난 이후 열린 시청자위원회 회의에서 진상 조사 관련 질의가 위원으로부터 나왔지만, 조규조 부사장은 “큰 문제없는 사안”이라며 공영방송의 경영진 입에서 나올 수 없는 한심한 답변을 내놨다.

2018년 12월 21일 EBS 시청자위원회 회의에서 김현식 시청자위원이 미디어오늘 보도와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발표한 논평(2018/12/12 https://bit.ly/2LeuKKI)에 대해 질의했다고 한다. E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라는 문제제기와 함께 이 사안은 결코 가볍게 넘기거나 묻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분명히 하며, 적폐 청산을 위한 내부 계획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의 지적처럼 이 사안은 과거의 일이라는 이유로 슬쩍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공영방송 EBS의 제작 원칙과 정체성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하청업체 짓 해놓고 진상규명과 뼈 아쁜 반성 내놓지 않는 EBS

미디어오늘 보도 직후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 전국언론노조 EBS지부(2018/12/27 https://bit.ly/2VJDKfO)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5년 7월 EBS 관계자 3인과 청와대 관계자 3인이 청와대에 모여 EBS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정책 성과를 집중 홍보해 따뜻한 대통령 상(像)을 보여주기로 합의하고 <희망나눔 캠페인-드림인>이란 제목의 프로그램을 3년에 걸쳐 33편 제작하기로 했다.

이 방송 제작은 외부 프리랜서 PD가 맡았는데, 전국언론노조 EBS지부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초기 <지식채널e>에서 제작을 맡아달라는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지만 제작진에서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자 EBS는 이 작업을 외주로 넘겼는데, 이 과정에서 내부 PD가 연출을 맡은 것처럼 서류를 작성하고 별도 계약서도 없이 외주에 일을 넘기며 제작비 선금에 대한 부담까지 떠넘기는 갑질 수준의 편법 계약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방송 제작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아이템 기획부터 원고 검수, 촬영 대상 선정, 최종 완성본 검수까지 매 단계마다 청와대 담당자에게 직접 승인받는 과정까지 거쳤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영상 말미 대통령 사진을 넣으라는 요구까지 했는데, 실제 제작을 맡은 외주 PD가 반대를 했음에도 EBS에서 청와대 뜻에 따르자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한 질문을 시청자위원으로부터 받았음에도 조규조 EBS 부사장은 영상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청와대 지시 여부 등 논란의 핵심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조 부사장은 “그동안 EBS는 프로그램에서 특정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거나 정치적인 인사들이 와서 경영한 회사가 아니고, 그에 대해 EBS 구성원들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EBS 구성원들은 적폐청산보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EBS의 사명을 더 구체화하고 방송목표를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희망나눔 캠페인’은 공익에 기반한 국가정책홍보 캠페인”이라고 강조하며 “다만 EBS가 국가정책에 대한 공익 캠페인 협찬 사업을 할 때 공영방송사로서 정치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그와 관련한 자체 지침이나 규정이 필요한 것인지를 이번 기회를 통해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지시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구체적인 폭로가 나온 상황에서 시청자, 그리고 EBS 구성원들이 확인하고픈 건 제작 원칙을 송두리째 무너트리는 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에 의해 발생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EBS에서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인데도 겨우 이런 수준의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EBS 직원이 이명박 청와대에 파견갔다 복귀하는 황당한 일도

더 충격적인 게 있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홍보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EBS 대외협력부 소속 김모 기자는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출입기자로 있다 이명박 정부 말 E휴직하고 청와대 대변인실 행정관으로 2년가량 근무하다 다시 EBS에 복귀한 인물이라고 한다.(2018/12/28 미디어오늘 https://bit.ly/2TK5X4y)

당시 EBS 측은 EBS의 상급기관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로 보고 방통위에서 청와대로 파견을 간 것이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EBS 방송강령 행동준칙에선 EBS 구성원이 어떠한 경우에도 외부기관에 고용돼 대가를 받고 용역을 제공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EBS 설립과 운영의 근거인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에서 EBS는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에 해당하지 않으며, 방통위를 EBS의 상급기관으로 볼 수 없다. 사실상 EBS가 ‘관영방송’ 역할을 자처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런데도 조규조 부사장은 논란과 의혹의 핵심에 해당하는 모든 내용을 건너뛴 채 그동안 EBS는 정치적인 곳이 아니었고 그래서 적폐청산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한가한 소리만 늘어놨다. 도저히 공영방송의 책임 있는 경영진의 태도라고 볼 수 없다.

 

EBS 이사회, 이번 사안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조치 계획을 내놔야

EBS 경영진과 구성원들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조 부사장의 말과 달리 현재까지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EBS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정치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라고 결코 볼 수 없다. 이 사안이 아니더라도 이명박 정권 시절이었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 당시 광우병을 소재로 채택한 <지식채널e> ‘17년 후’ 편에 대해 EBS는 결방을 결정하고 담당 PD였던 김진혁 PD(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에 대한 부당 인사 등으로 논란을 빚었으며, 우종범 전 사장 선임 과정엔 ‘국정농단’의 주범 가운데 한 명인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EBS 역시 다른 공영방송들과 마찬가지로 적폐정권 시절의 부역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EBS 구성원들에게 있어 최우선 과제는 적폐청산이 아니라는, 현실 부정의 생각 없는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조 부사장이 강조한 EBS 사명의 구체화와 효과적인 방송 목표의 구현은 적폐청산이란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요구한다. EBS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지시로 정권 홍보 프로그램을 제작한 경위와 그 과정에 참여한 의사결정자 등에 대한 감사를 진행해야 한다. 감사 결과가 나오면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또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발생한 또 다른 정권 개입 사례가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과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특히 현재 EBS는 사장선출 공모 중이기에 EBS이사회의 역할이 주요하다. EBS 이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손 놓을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제13조(이사회의 설치 및 운영) 1항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EBS이사회는 “교육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고 공사의 업무에 관한 중요 사항을 의결”하는 곳이다. 이 사안에 대해 빠르게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하라. 마침 전국언론노조 EBS지부가 “부끄럽고 참담한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밝히겠다”며 경영진 측에 노사동수 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EBS 구성원 모두가 이 사안의 엄중함에 걸맞게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끝>

 

1월 1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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