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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 1986년의 ‘보도지침’, 2018년에도 유효한 이유
등록 2018.02.1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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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침은 언론으로 하여금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작은 것을 큰 것으로,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만들게도 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보도지침 폭로 30주년을 맞아 지난해에 발간한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에 담긴 ‘김주언 기자의 양심선언문’에서는 당시 언론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기인 1986년, 일반 대중에게 보도지침의 구체적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민언련이 기관지 <말>지 특집호 <“권력과 언론의 음모―권력이 언론에 보내는 비밀통신문” 보도지침>을 발간해서 정부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당시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은 각 언론사에 ‘보도 가(可)’, ‘보도 불가(不可)’, ‘보도 절대(絶代)불가(不可)’ 등의 지침을 하달했다. 거기에는 기사의 제목을 비롯해 내용, 지면 배치, 기사량, 사진 포함 여부 등 상세한 사항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정권홍보 기사는 ‘크게’, ‘눈에 띄게’ 등의 표현으로 특별히 강조됐고 방송뉴스는 분량과 순위까지 청와대와 문공부의 심의를 받아야 했다.(『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7) 그해 가을,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와 조선일보 신홍범 기자를 포함한 양심적인 언론인과 출판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 활동가들은 보도지침에 담긴 참담한 언론실상을 세상에 알렸다.


<보도지침>과 현재의 보도를 함께 살펴본 결과, 30년 전 언론의 보도와 현재 언론 보도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독재정권이 하루도 빠짐없이 각 언론사에 내려 보내던 보도지침은 사라졌지만 언론의 보도 행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작은 것을 큰 것으로,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만들어 보도했던 30년 전 언론은 현재 어떻게 변화했을까.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는 30년전 보도지침과 너무 흡사한 최근의 언론 사례를 비교해보았다. 

 

권력 비판은 뒷전, 권력 홍보는 여전

 

“언론은 이제 정치권력으로부터 일방적인 핍박을 받는 쪽이 아니라 현 정권과 손을 잡고 ‘홍보’ 임무를 떠맡음으로써 억압적 통치기능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525)

 

30년 전 정권의 보도지침을 충실히 반영했던 언론을 묘사한 구절은 지금도 유효하다. 정권의 ‘홍보’ 임무를 자처하는 언론 보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 형식이 받아쓰기 형태로 변했을 뿐이다. 세월호 배·보상금 관련 보도가 대표적인 예다. 해양수산부는 2015년 4월1일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학생들에 대한 배상금으로 8억2천만 원이 지급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그러나 8억2천만 원은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한 금액이었다. 정부배상금 뿐 아니라 보험금과 위로지원금이 합쳐진 액수였다. 보험금은 보험사가 위로지원금은 국민성금이므로 모금단체가 결정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액수를 키우기 위해 보험사, 모금단체와의 협의도 없이 피해 유족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금액’을 발표했다. 기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확인·검증하지 않았다. 정부기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적으며 ‘홍보’하는 데 집중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론으로부터 고립되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목적은 돈’이라는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 죽은 이유를 물어 밝히겠다는 유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돈 밝히는 사람들’이 됐다. 

 

집회·시위에 대한 혐오는 여전하다

 

“학생회 수색 “화염병, 총기 압수”로 제목 뽑을 것.”
“‘서명’이란 말 쓰지 말고 ‘학생 폭력화’라고 쓸 것.”
“오늘 학생 시위 중 외대 학생과장이 얻어맞아 중태인데 주 제목을 ‘학생 폭력화’ 등으로 할 것. ‘서명’이란 말을 뽑지 말 것. 또 입수한 사진을 사용할 것.”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586, 579)


80년대 언론은 이 같은 보도지침에 충실했다. 집회·시위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데 앞장섰다. 30년이 지났지만 집회·시위를 전하는 언론의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보도지침에선 공권력의 폭력성, 과잉진압의 문제는 숨기고 시위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부각하라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에 관한 보도를 떠올리게 한다. 


언론은 시위 진압에 공권력이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점, 경찰이 물대포 사용 지침을 위반했다는 점 등엔 집중하지 않았다. 대신 시위대의 폭력성만을 부각했다. 시위대가 불법적인 방식으로 시위를 했기 때문에 경찰이 물대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경찰이 시위대의 행진을 막기 위해 차벽을 쳤다는 사실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차벽을 위헌 결정한 바 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국민 기본권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시위대는 잘못됐다’는 프레임은 모든 책임이 시위대에 있다고 주장한다. 시위대가 잘못됐기에 시위 또한 잘못됐다는 인식을 불러온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계기가 된 촛불집회에도 이 같은 프레임을 적용했다. 2016년 11월19일 4차 주말 촛불집회 이후 집회가 계속될 경우 좋지 않은 대외 경제 상황을 한국이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집회·시위에 대한 혐오 정서를 자극하는 전형적인 주장이었다. 

 

계속되는 비보도

 

“‘고문당했다’ 보도하지 말 것(김근태 공판)”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571)

 

보도지침의 핵심은 ‘권력에 불리한 보도’는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언론의 관행은 여전히 유효하다. 독재정권 시절 비보도 원칙은 주로 정치권력에 적용됐다. 지금은 경제권력에 대한 비보도가 이뤄지고 있다. 경제 권력을 비판하는 기사가 보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외려 경제권력을 옹호하려는 보도가 생산되고 있다. 


이 부회장이 특검에 출석한 날(2017/1/12)부터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틀 뒤(2017/1/21)까지인 열흘간 조선일보는 이 부회장 관련 보도를 61건 내놨다. 반면 삼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삼성전자 직업병 관련 보도는 40건에 그쳤다. 반올림이 출범한 2007년 11월20일부터 2017년 2월15일까지의 보도량이다. 만 9년 3개월간 반올림 관련 보도는 40건이었던 반면 열흘 동안 진행된 이 부회장 관련 보도는 61건이었다. 30년 전 인권을 무시하는 <보도지침>에 충실했던 언론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언론도 노동자의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직업병을 앓다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주목하지 않는다. 억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보도하는 관행

 

“이 지침은 언론으로 하여금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작은 것을 큰 것으로,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만들게도 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663)

 

<보도지침>은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보도하도록 지시했다. 왜곡보도를 하라는 독재정권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왜곡보도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은 것’이 마치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보도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보도한 대표적인 사례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과 관련된 사안이다. 언론은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경제가 무너지고 한국을 떠받치고 있는 삼성이 경영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식의 보도를 지속적으로 생산했다. 이 부회장 1인을 ‘삼성’으로, 나아가 ‘한국 경제의 축’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는 법률과 증거라는 사실에 따라 결정될 일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이 부회장의 사회적 지위를 기준으로 ‘구속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의 존재감을 부풀리고 이를 통해 그를 지키려다 보니 언론은 자신의 역할을 망각했다. 언론은 법률과 증거라는 ‘사실’에 집중하지 않았다. ‘위기론’과 같이 검증되지 않은 허상만을 부각했다. 사실보다 허상에 무게를 두니 언론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던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근본적인 자기부정 필요

 

“이 나라 언론이 근본적인 자기부정 없이는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껍질을 깨는 아픔이 없이는 언론에 대한 희망은 배양될 수가 없는 것이다.”

 

<보도지침>을 최초로 폭로한 김주언 기자의 양심선언에 담긴 내용이다. 30년 전 언론에 보내는 일침이었지만 이는 지금까지 유효하다. 30년 전과 지금, 변하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보도지침>은 사라졌다. 그러나 언론 보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언론의 ‘근본적인 자기부정’이 부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30년 전 보도지침을 검토하며 지금의 언론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지금,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을 다시 펼쳐 읽어볼 때다. 
 

문의 김규명 활동가(02-392-0181) 정리 나경렬(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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