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_ 여는글

민언련이 나아갈 길
등록 2017.11.0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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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중.jpg지난 9년 동안 부당한 권력은 공영방송을 장악했다. 이제 그 유산을 청산하고, 공영방송이 시민을 위한 방송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의지와 시민 여론을 고려하면 정상화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본다. 절대 다수의 KBS, MBC 구성원들이 파업으로 적폐 세력의 청산을 요구하고 매주 진행하는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방송의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법적 절차에 따라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또 공영방송 정상화는 적폐 세력의 청산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다시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유린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완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민언련은 이명박 정부가 공영방송 경영진을 불법, 편법으로 내쫓고, 날치기로 미디어 관련법을 통과시켜 종편을 도입하는 등 언론을 유린하는 것을 비판하고 이에 저항했다. 하지만 막지 못했다. 무도한 정권이 시민의 목소리를 들을 리 만무했다. 결국 95:5라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언론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언론은 권력을 비판 감시하기는커녕 광우병, 4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에서 국정농단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비어천가, 박비어천가만을 불렀다.

 

이명박근혜 정부 당시 민언련은 모니터를 통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버린 언론이 왜곡된 보도로 시민들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고 있는지 알리려 애썼다. 권력의 언론 장악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논평과 성명, 기자회견 그리고 항의 집회 등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고 바꾸려 애썼다. 불의한 권력이 무너진 지금은 그 연장 선상에서 공영방송의 남은 적폐를 청산하고 정상화를 주장하는 돌마고에 집중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부당한 권력에 장악됐던 공영 언론들이 정상화되면 민언련의 소임은 끝날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공영언론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 정권의 유산이고 아직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여러 종편들이 남아 있다. 물론 민언련이 꾸준히 그 문제점들을 지적해온 수구 보수 신문들의 왜곡된 보도 행태 역시 여전하다. 정상화된 공영언론들이 백 퍼센트 완벽한 보도를 하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수용자인 시민을 대신한 민언련의 언론 감시 운동은 언론이 존재하는 한 안타깝게도 그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앞으로는 가짜 뉴스의 폐해가 더욱 커질 것이고, 이 피해를 줄이려면 기존 언론의 진실 보도를 요구하는 민언련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야 할 것이다.

 

민언련의 사업이 모니터만으로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제도개선, 정책 제안은 오랜 민언련의 사업이었다. 비록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이전 정부 지우기의 대상이 되고 말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방송 개혁이나 참여정부 시절 신문 중심의 언론개혁운동은 민언련의 주요 사업이었다. 이제 공영방송이 1단계로 부역 경영진들을 청산하고 나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장 등 경영진의 민주적 선임 제도와, 더욱 중요한 언론인들의 편성 자율성 확보가 그것이다. 민언련은 ‘2017 언론개혁 제안’에서 정치적 요인보다는 전문성과 대표성을 반영한 공영 언론 이사 선임 제도를 제안한 바 있다. 여야 정치권이 이사를 추천하더라도 기자 피디를 대표하는 조직이나 구성원 전체 의사를 반영한 이사 선임의 필요성을 제안한 것이다. 물론 전문성과 대표성을 반영한다면 구체적인 방법은 달라질 수도 있다.

 

편성 자율성 확보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설사 민주적 선임 과정을 거친 사장이라도 그가 독단적으로 공영방송 경영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진실을 전달해야 할 보도나 프로그램이 사장이나 사장이 임명한 경영진들의 일방적 지시에 따라 왜곡돼서는 안 된다. 언론에서는 현장 진실에 근접한 언론인들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노사가 상호 견제할 수 있도록 편성규약이나 편성위원회를 법제화하고, 보도 편성 책임자 선정에 현장 언론인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공영 언론은 당연히 관영 언론이 아닐 뿐만 아니라 공영 언론인들만의 것도 아니다. 시민의 권리를 대변하는 공영 언론은 시민의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한다. 또 시민의 참여도 확대해야 한다. 시청자 위원회가 형식적이지 않고 명실상부하게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고, 지상파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의 편성 확대를 이루어야 한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이미 시민의 소통 참여는 확대되고 있지만 기존 매체 역시 시민과 소통을 확대해야 매체, 시민 모두 발전할 수 있다.

 

이외에도 방송규제기구, 종편, 수신료 제도, 광고제도 등 개혁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민언련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과제는 아니지만 시민언론운동단체로서 민언련이 적극 추진해야 할 과제들이다. 언론의 경영진이나 언론인들이 사회 기여 활동을 하려면 그게 가능한 제반 여건을 갖추는 것이 꼭 필요하다.

 

민언련이 지향하는 민주 언론은 전통적인 매체에 한정할 수는 없다. 여전히 전통적인 매체들이 우리 여론 지형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중요하기는 하지만 수용자들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직접 민주주의 방식의 소통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음에도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혁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데는 SNS 등 새로운 플랫폼과 그 이용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들 새로운 플랫폼을 마냥 긍정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가짜 뉴스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플랫폼 역시 구글이나 페북에서 보이듯 자본의 탐욕 대상으로 전락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접 민주주의 소통을 강화하는 건강한 독립미디어의 지원 제도를 확충하는 일도 필요하다.

 

언론을 장악했던 과거 정권과 달리 촛불 혁명으로 세운 민주 정권 아래서 민언련이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제도다. 과거 정권의 폐해를 정리하는 것보다 민주 사회 완성을 위해 할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민언련 회원들의 책임도 그만큼 크다.

 

김서중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