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토달기]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분석(2015 9월호)
등록 2015.09.10 13:16
조회 484

 

[신문 토달기]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분석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을 읽는 네 가지 키워드

 

강선일 신문모니터분과 회원

 


지난 5월 30일, 조선일보는 김대중 주필(고문)의 기자생활 50주년을 기념하여 인터뷰기사 <“아부 안 해도 되고,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신문기자로 산 게 좋았다”>를 내놨다. 보도는 그를 “역대 대통령들이 ‘치워버리고 싶어 한’ 직필”, “좌우를 막론하고 권력자를 비판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았다”고 칭송했다. 과연 그는 이런 영예를 받을만한가?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는 이런 의문을 갖고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지금까지 썼던 그의 칼럼을 모니터했다. 그 결과 <김대중 칼럼>에는 그의 왜곡된 네 가지 관점이 담겨 있었다.

 

북한과 ‘종북세력’은 상종 못할 집단?
<김대중 칼럼>에서 가장 많이 드러나는 관점은 그의 뿌리 깊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였다. 그에게 북한은 결코 상종해서는 안 될 호전세력이고, 남북관계 개선 및 통일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북주의자’일 뿐이다. 김대중은 <문제는 북한의 核이다>(2013.06.11.) 도입부에서 북한이 항상 “도발로 위기를 조성하고 그 해소책으로 접촉 내지 회담을 연 뒤 원조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무슨 꼬투리를 잡거나 사단을 내 상황을 결렬시키고 대결 모드로 되돌아가는”걸 반복해 왔다고 말한다. 당시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 관련 회담은 우리 정부가 북측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회담에 나와야 한다고 고집하여 대화 결렬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크다. 대화 상대의 ‘격’을 따지며 회담이 결렬되게 만든 것은 남북대화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일이었지만 이런 언급은 없이 북한만 비판한 것이다.

 

△ 2013년 10월 22일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남북 간에 홍역을 치르던 지난해에는 <북한病>(2014.10.28.)에서 “북한은 지난 60여 년 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면서, ‘우리 정부가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닌다’고 해석했다. 우리가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못 버리는 것에 대해 ‘북한병’이란 표현했다. 그의 이런 문제의식은 남한 내 정권 비판적인 인사들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 연결된다. 그는 <박 대통령의 실책 하나, 종북 좌파에겐 기회 열 개>(2013.10.22.)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규탄하는 시민들과 법외노조 판결에 반발하는 전교조 등을 ‘종북 좌파’라고 몰았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은 다시금 고개를 바짝 치켜든 종북 좌파의 ‘딴죽’에 시달리고 있다”라거나, 북한 ‘김정은 집단’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 “박 정부를 시비하는 종북 좌파 공세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들과 북한 지도부의 행위를 도매금으로 묶어 색깔론으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행태이다.

 

역사를 정확히 기술하면 ‘반(反)대한민국 세력’?
김대중은 <‘이석기’는 배우일 뿐, 감독은 ‘역사 교과서’다>(2013.09.17.)에서 김대중은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은 자기 나라의 건국에 자부심을 갖고 건국 과정을 미화하는 것이 정도(正道)”거나 “나라 세움의 뿌듯함을 물려주는 게 민족의 자긍심”이란 주장을 펼친다. 그러면서 당시 논란을 일으켰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한 학자들을 ‘반(反)대한민국’ 세력이라 매도한다. 그러나 해방 후 친일청산 실패, 보도연맹 사건과 제주4.3항쟁 등에서 일어난 민간인 대량 학살 등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일어난 불행한 역사는 사실이다. 이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자는 것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건국 세력을 ‘친일’로 매도하고 따라서 건국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의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생각이 더 심각한 왜곡이다.

시민의 권리행사는 혼돈스런 ‘데모 천국’을 만든다?


정권이나 권력의 불합리한 모습에 대해 집회·시위 등으로 의견 표명을 하는 것은 헌법 제 21조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전국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하는 집회가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김대중은 이런 집회를 비판하며 시민들의 기본권을 부정하고 있다. <‘데모 천국’과 ‘데모 망국’>(2014.10.14.)에서는 ‘세월호 유족회’의 집회 때문에 서울 도심이 “밤낮으로 교통 혼잡에, 확성기 고성에, 음식 냄새에 시달린다”면서 집회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보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왜 거리에 나왔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저 정권의 강력한 법적 대응을 주문할 뿐이다.


<분향소와 ‘노란 리본’>(2014.07.29)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더 매달리지 말고 경기 활성화에 나서자”,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야당에 대해서는 ‘세월호 정치’를 펼친다고 비판하며, 유족들의 ‘순수한 마음에 생길 균열’을 우려했다. 김대중이 정말 ‘권력자를 비판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았다’면, 세월호 참사는 물론이고 현재 빚어지는 많은 사안에 대해 대통령 등 권력자들을 강하게 비판했어야 마땅하지만, 그는 시민만을 꾸짖고 있다.

 

입으로는 용미, 사실상 숭미(崇美)
김대중은 <‘병자호란’을 읽는데 시진핑이 왔다>(2014.07.15.)에서 우리의 역사가 중국과 일본에 늘 시달리던 역사였다고 평가하면서, 그 시달림을 벗어난 게 미국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에 대해 “(중국·일본과는 달리) 적어도 우리 땅을 빼앗을 욕심을 부린 적은 없다”고 평한다. 이어서 우리가 5천 년 동안 가난했는데 미국의 도움으로 광복 후 먹고 살게 되었다는 사대주의적 인식을 보인다. 그는 20세기 초 미국이 일본과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일 각각 필리핀과 조선을 식민지배하기로 합의한 것은 모르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현재 미국이 미·일 동맹을 강화하여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종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 비판이 없다. 오히려 <북핵에 당하면 중국이 지켜줄 수 있나>(2015.03.17.)에서 김대중은 한국의 외교 방책으로서, 미·중 양국 중에서 확실하게 미국 편을 들자고 주장한다. “미국의 손에 이끌려 비로소 ‘중·일’의 감옥에서 탈출”, “한국은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서 실천” 등의 표현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맹목적으로 미국을 믿는지 알 수 있다. 김대중은 여러 칼럼을 통해 우리는 미국을 ‘이용’하자며 ‘용미’를 말하지만, 실제 그는 ‘미국은 중국, 일본과는 다르니까 무조건 그들 편에 서야 한다’는 ‘숭미’를 반복하는 셈이다.

 

보수 편파신문 조선일보와 김대중 주필, 참 어울린다.

 


우리는 김대중 주필이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은 권력자를 비판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서가 아니라, 권력자들이 좋아할 글,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역행하는 글들을 써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무정부 상태 광주’ 1주>(1980.5.25.)와 같이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폭동’으로 매도하는 기사가 있었고, <인간 전두환>(1980.8.23.)과 같이 광주의 학살자를 낯 뜨겁게 찬양하는 기사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위 두 기사는 조선일보도 부끄러웠는지 아카이브에서 삭제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김대중의 언론인 인생 50주년을 기념한다며 민망한 찬양 기사를 내놓았다. 고 베트남 전쟁 참전을 비판한 리영희 선생을 사실상 강제해직시키고, 조선투위 기자와 같이 같은 양심적이고 권력 비판적인 이들을 길거리로 내쫓았던 조선일보가 김대중을 언론계 최상층의 지성으로 추앙하는 모습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