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속으로] 방심위의 <개그콘서트> '민상토론'과 <무한도전> 제재 비판(2015 8월호)
등록 2015.09.09 17:32
조회 299

 

TV속으로ㅣ 방심위의 <개그콘서트> '민상토론'과 <무한도전> 제재 비판

방심위는 언론 자유를 억압하려 하는가

 

 

김석주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

 

지난 6월 24일, KBS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았다. ‘민상토론’(6월 14일)이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책을 풍자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민상토론’에 대해 심의를 요청한 단체는 ‘인터넷미디어협회(대표 변희재)’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과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이나 사진을 직접 노출하면서 비방성 발언을 하여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방통심의위 방송소위에서 공방이 있었으나 ‘의견 제시’ 조치를 내렸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 유지) 5항에 적시된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한편 방심위는 MBC <무한도전>에 대해서도 행정지도를 내렸다. ‘무한뉴스’ 코너에서 출연자 유재석씨가 “메르스 예방법으로는 낙타, 염소, 박쥐와 같은 동물 접촉을 피하고 낙타고기나 생 낙타유를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표현한 부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방심위는 <무한도전>에 대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 위반을 근거로 ‘의견제시’ 제재를 의결했다. 제14조(객관성)는 “방송은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하여 시청자를 혼동케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이다. 방심위는 <무한도전>이 위험지역을 ‘중동’이라고 밝히지 않아 엉뚱한 오해와 피해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개그·예능 프로그램은 정치를 풍자하는 역할을 꾸준히 담당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정권에 대한 정치 풍자를 제재하는 방심위의 모습은 친정부적 관점에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한다.

 

심의 규정 적용의 문제
우선 두 프로그램 제재에 적용된 규정이 적합한지 의심스럽다. 방송심의 규정 제27조(품위 유지)와 제14조(객관성)는 <개그콘서트> ‘민상토론’과 <무한도전>을 각각 제재하는 근거로 부족해 보인다. ‘민상토론’의 ‘정부 메르스 대책 풍자’에 대해 방심위는 “특정인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며 ‘품위 유지’ 규정을 적용했지만 이는 터무니없다. 과거 방송 프로그램이 제27조 ‘품위 유지’로 제재를 받았던 것은 대부분 과도한 성적 표현 혹은 욕설 때문이었다. 정치에 관한 것으로는 2015년 1월 11일에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부엉이’ 코너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연상시킨 사례, 같은 방송의 2013년 1월 16일에 방송한 ‘용감한 녀석들’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두고 반말을 한 사례 등이 있다. 이 사례들의 경우 특정인을 직접적으로 비방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 ‘민상토론’의 정부 메르스 대책 풍자는 특정인을 비방했다고 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내용이 메르스 사태 대응에 미흡했던 정부의 대처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 예의에 어긋난 표현, 성적 표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메르스 사태에 미흡한 대응을 보인 정부의 허술함을 꼬집고 국민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국민들을 위해 힘써달라는 메시지를 정부에 던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방심위의 제재에 의하면 ‘민상토론’ 때문에 누군가 불쾌감을 느꼈다는 것인데 과연 누구란 말인가? 정부의 방역실패로 고통 받은 국민인가, 아니면 정부를 풍자했다고 기분 나빠하는 민원인인가?

 

<무한도전>의 메르스 방송에 대한 제재도 규정 적용에서 미흡한 점이 다분하다. 제14조 ‘객관성’에 관해 제재를 받은 사례를 보면 아예 왜곡된 사실을 방송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되었다. 2013년 6월 21일 tvN의 〈강용석의 고소한 19>에서 음주 운전자에 대한 해외 처벌사례를 사실과 다르게 언급한 것, 2013년 10월 16일 MBN의 〈신세계>에서 살아있는 연예인 ‘구봉서’의 사진 아래에 ‘故 구봉서’라고 자막 표시한 것이 그 사례다. 방심위는 <무한도전>이 ‘중동’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국내 염소 농가 등이 의도치 않은 피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한도전>이 언급한 내용은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다시 전한 것뿐이며 ‘중동’이란 표현이 빠졌을 뿐 불명확한 사실을 전달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문제가 된 발언 직후 출연자 한 명이 “도대체 낙타를 어디서 봐?”라고 소리쳐 누가 봐도 낙타 관련 예방법이 한국과 무관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중동이란 단어가 빠졌다며 항의한 염소농가협회에 대한 공식 사과와 재방송 편집도 빠르게 이뤄졌다. 앞서 제시한 사례와 달리 객관성에서 크게 문제가 없는 방송을 무리해서 제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행정조치라도, 이 정도의 가벼운 정치풍자에 대해서까지 방심위의 징계를 내린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정치풍자가 금지된 것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명예훼손성 막말과 카더라 이야기가 쏟아지는 종편 시사토크쇼에 솜방망이 징계를 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 <개그콘서트> ‘민상토론’과 <무한도전>에 대한 징계는 터무니없이 과하다. 시사 보도프로그램에 적용해야 할 객관성 조항을 예능 뉴스그램에 적용시켜 사실과 조금만 달라도 징계가 내려지는 것 역시 지나치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더 처참한 한국 언론자유의 현주소
 

그렇다면 해외 개그 예능 프로그램의 정치풍자는 어떨까? 미국의 코미디센트럴 <데일리 쇼>는 정치풍자를 통해 정치인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심의 제재를 받은 적이 없다. 심지어 정치인들은 조롱받을 것을 알면서도 이 쇼에 출현하고 싶어 한다. 오바마 대통령도 ‘데일리 쇼’에 여러 번 출현해 조롱을 받은 적이 있다. 프랑스 카날플뤼스의 정치 풍자 방송 <레 기뇰 드 랭포>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은 날카로운 정치 풍자로 사랑받아왔는데, 프로그램이 종영을 앞두자 이를 막기 위해 한때 조롱의 대상이었던 정치가들부터 시민들까지 청원을 내고 있다.

 

이런 모습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정치풍자가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품위유지나 객관성과 관련한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스와 달리 사실을 재해석 하여 현실을 풍자하고 권력자를 희화화하는 것은 개그·예능이라는 장르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이다. 방심위의 ‘민상토론’ 및 <무한도전> 제재는 한국 사회에 그러한 개그·예능 프로그램은 있을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에 뉴스보도에나 적용할 법한 객관성을 요구한다면 이는 더 이상 코미디가 아니며, 방송 소재가 정부를 겨냥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문제가 된다면 정치 풍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민상토론’과 ‘무한도전’에 가해진 제재에서 드러나듯이,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제재는 방심위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방심위가 정권에 편향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역시 다시 확인되었다. 방심위가 언론 자유를 향한 도정의 시금석인지,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의 도구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