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권력층에게 유용할 '그분비판방지법' 될 가능성 높아(손지원)
등록 2015.07.2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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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방심위의 통신심의규정 개정 추진 비판
권력층에게 유용할 '그분비판방지법' 될 가능성 높아

 

손지원(법률사무소 이음 변호사, 인터넷투명성보고 프로젝트 연구원)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글에 대하여, 명예훼손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신고만으로 심의를 개시하고 삭제,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즉,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10조 제2항상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 침해와 관련된 정보는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해야 심의를 개시한다”는 규정에서 ‘당사자 또는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해야’라는 부분을 개정하여,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신고 혹은 위원회의 직권 등으로 명예훼손성 글을 조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명예훼손 글 제3자 요청 삭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
 명예훼손의 당사자도, 그의 대리인이 될 수도 없는 제3자가, 자신에 대한 글도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글을 위원회에 스스로 신고하고 해당 글이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음을 소명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면서까지 나서주는 것은 대체 어떠한 경우에 ‘가능’할까? 아마도 대부분은 자발적인 지지‧비호 세력이 있는 공인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조치해야 할 때일 것이다. 또한 명예훼손 글에 대한 제3자의 신고는 ‘당사자 측이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 글들을 직접 찾아 신고하였다’는 사실로 인해 이미지나 체면이 더욱 손상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소위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동원하여 자신에 대한 비판글들을 처리하고 싶을 때 절실히 필요하다. 즉, 명예훼손 글에 대해서 제3자의 신고가 ‘가능’한 경우도, ‘필요’한 경우도,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력 계층에 대한 글들을 조치하는 것으로 사실상 한정된다.


 특히, 자신의 대한 비판글을 일일이 찾아낼 시간도 없고, 막강한 비호 기관이나 세력이 존재하는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도가 될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고 발언한 뒤, 검찰은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사범 엄정대응’을 기획하고, 서울 중앙지검에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팀’을 구성하며 ‘선제적 대응’을 유관기관에 주문한 바 있다. 텔레그램 망명사태 등 비판적 여론으로 인하여 물러섰지만, 당시 방심위의 통신심의 국장에게도 이와 같은 선제적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어진 10월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은 박효종 위원장에게 명예훼손 글의 경우 제3자의 신고나 방심위의 직접 인지 등을 통해서 심의를 개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심의규정 개정을 검토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것이 이번 심의규정 개정 추진의 발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볼 때, 결국 대통령이나 국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차단하기 위해 이번 심의규정 개정이 추진되는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방심위 “상위법 충돌이라 맞춰야” 논리
 물론 방심위 내 개정 추진 측이 주장하는 논리는 따로 있다. 형법 및 정보통신망법상의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 형식 (기소 전에 명예훼손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기소하지 않는 범죄로서, 일단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 진행 가능) 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방심위의 명예훼손 글에 대한 통신심의는 친고죄 형식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기소가 가능)으로 운영되어 상위법에 상충하기 때문에 이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개원칙’인 심의 특성상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될 수 있어
 그러나 형사법은 인적 처단을 위한 것이고, 통신심의 관련 법제는 불법정보의 확산을 예방적으로 막는 행정 목적적인 것이다. 목적, 주체, 객체, 효과 등이 전혀 다른 법체계이기 때문에, 이런 형사절차상 개념을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 또한 원칙적으로 형사절차는 당사자 개인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반면, 통신심의는 공개원칙이다.


 따라서 심의 과정에서 해당 사실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공론화되어 오히려 피해자에게 사회적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당사자 신고로 심의가 개시된다는 현행 규정은 이런 절차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런 공익적 필요성을 무시하고 다른 법률과 일치시킨다는 명목만으로 개정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여겨진다.

 

 조직적 고발 남발, 공인에 대한 비판 여론 차단 수단으로 남용될 가능성 높아
 또한 개정 추진 측은 제3자의 신고까지 가능하도록 하여 일반 개인의 권리구제도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하나,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공인이 아닌 순수한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글을 제3자가 신고하거나 위원회가 인지할 수 있는 경우를 상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결국 심의규정이 이와 같이 개정될 경우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대통령, 고위공직자, 연예인, 종교지도자, 기업 대표 등 공인들에 대한 비판글에 대하여 유관기관 혹은 지지자‧단체의 고발이 남발되어 이들에 대한 비판 여론을 신속하게 삭제, 차단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도 종교단체, 엔터테인먼트사, 병원, 기업 등의 이름으로 다수의 임시조치 신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만만회가 국정을 농단한다고 주장한 박지원 의원, 박 대통령의 풍자 그림을 그린 작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보도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모두 보수시민단체에 의하여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에 방심위가 경찰청으로부터 정부, 대통령, 경찰청장 비난 게시물에 대한 심의 요청을 다수 받았다는 보도도 있다.

정치‧경제적 권력층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자유롭게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이러한 표현들에 대한 행정기관의 검열 가능성과 권한을 넓히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들을 엄청나게 퇴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것이 시민들이 이번 방심위의 심의규정 개정에 격렬히 저항하여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