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_
[시민비평공모-금상] 괴벨스의 부활을 경계하다
등록 2013.09.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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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단체가 주최하고 <오마이뉴스>가 후원한 <시민비평 공모 - 시민, '좋은 방송'을 말하다>에 참여해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현 정부들어 위기에 처한 공영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가치를 알리자는 취지로 기획된 이번 공모에 48편의 글이 들어왔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이중 8편을 선정했고, 그 수상작을 싣습니다.


[금상] 괴벨스의 부활을 경계하다

‘EBS 지식채널e - 괴벨스의 입’ / 김미영

 

▲ < EBS 지식채널e > 괴벨스의 입


8년여 전, 대학입시를 앞두고 문제풀이나 보러 틀곤 했던 EBS다. 대학 입학 후 공짜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어진 나는 오랫동안 EBS를 보지 않았다. EBS엔 왠지 촌스럽달까 구태의연하달까 하는 안 좋은 인상이 있었다. 그러나 <돌발영상> 하나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YTN처럼 EBS는 <지식채널e> 하나로 나를 돌려세웠다. 사회인이 된 나는 <지식채널e>를 통해 재교육을 받고 있다. 정답/오답의 교육 아닌 열린 생각을 키우는 교육이다.

관심의 발단은 <지식채널e>의 '17년 후'였다. 청와대 전화를 받고 경영진이 결방 시켜 논란이 일었고, 이에 반발한 김진혁 PD가 보복성 짙은 인사발령을 당하게 된 문제작이다. 영국의 광우병 파동을 사실에 입각해 다뤘을 뿐인데도 문제작이 됐다. 왜? 정부가 광우병이라면 미친 듯 싫어했으니까. 마음에 안 들면 방송을 통제해 버리는 시대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그리고 김진혁 PD는 '괴벨스의 입'(8월 4일 방송분)을 끝으로 <지식채널e>를 떠났다. 과거로의 회귀, 언론통제 시대 도래에의 암시를 던지고 말이다.

'괴벨스의 입'은 '라디오와 TV 등을 정치에 활용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를 다룬다. 괴벨스는 라디오를 전 국민에게 보급해 매일 히틀러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며 대중을 지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괴벨스 때문에 국민은 패색이 짙어가는 전쟁에서도 승리를 확신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고, 괴벨스 자신 역시 히틀러의 자살 이후 가족과 함께 자살함으로써 파국에 이른다.

혹자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떠올렸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서 방송과 인터넷을 관할하며 무한한 충성심을 보이려는 최시중 위원장과 괴벨스가 사뭇 비슷하기도 하다. 판공비를 쓰며 시도 때도 없이 언론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YTN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고, KBS 정연주 전 사장을 몰아내고, <PD수첩>을 징계하는 데 권력의 입김이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의 방해물들을 제거해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언론을 만들어가기 위해 말이다.

그리고 온순해진 언론을 통해 우리 이명박 대통령께서 나타나신 거다. 그 본격적인 시작은 '대통령과의 대화'(9월 9일)라는 이름을 달고 오밤중에 시도한 대화이다. 장미란 선수를 요청하는 등 패널 선정부터 청와대의 외압 논란이 있었고, 지상파 3사와 보도전문채널들이 모두 방송을 하기로 해 전파 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던 진짜 '문제작'이었다. 국민과의 대화 아닌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권위적인 제목은 차치하더라도 민감한 질문에 눙치듯 답변하며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자 후속편으로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10월 13일)라며 월요일 아침을 열었다. 소통을 강조하다 별반 소득을 얻지 못하자 전략을 바꿔 일방통행식 연설을 위해 라디오로 옮겨간 것이다. 여당에서는 '아날로그화법으로 IT 시대의 감성을 어루만졌다'라고 자화자찬한 이 연설에도 비판은 쏟아졌다. 인터넷과 같은 쌍방향 미디어를 활용하지 못하고 올드미디어에 기대어 국민을 설득하려 한다는 거다. 루스벨트의 노변정담을 멋지게 벤치마킹하고 싶었으나 되레 시대착오적이라고 면박만 당한 셈이다. 게다가 노변정담도 아니라 노변한담이란다.

시기적으로 '괴벨스의 입' 방송 후 일어난 위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김진혁 PD의 선견지명에 씁쓸한 감탄을 자아내며 프로그램을 곱씹게 했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라던 괴벨스의 말도 자꾸 떠올랐다.

작금의 언론 상황은 '나에게 한 번만 걸려라, 그러면 누구든지 숙청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YTN 노조는 대량 해직사태를 맞았고 KBS 사원행동은 사실상 인사숙청을 당했다. <PD수첩> 광우병 사태를 다룬 PD들은 검찰 출석을 거부한 채 여전히 농성 중이고, 김진혁 PD는 낯설게나마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을 게다. 괴벨스의 오만이 부활하는 듯하다.

어쩌면 김진혁 PD는 '괴벨스의 입'을 통해 언론이 권력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언론의 자유가 퇴보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다룬 '잃어버린 33년'(2007년 2월 12일)에는 PD의 이런 바람과 함께 두려움이 묻어 있다.

"본 편을 제작하면서 잠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시 나중에 세상이 바뀌어서 이 영상물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나쁜 일을 겪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이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처음 봤을 때엔 뜬금없는 자막에 놀라고 이젠 그의 탁월한(!) 선견지명에 놀란다. 사실을 바탕으로 <지식채널e>를 만들어 왔으나 그럼에도 가끔씩 느껴지는 두려움. 세상이 나쁘게 변하면 진실을 말하는 자는 고통 받게 된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느낀 두려움일까.

그럼에도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진실을 알리는 자, 진실을 배우는 자, 그리고 진실을 좇는 자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간다. EBS의 <지식채널e>는 이들이 한 데 모이는 장으로서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를 전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비록 김진혁 PD는 <지식채널e>를 떠났지만 그가 남긴 많은 작품들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마지막 작품인 '괴벨스의 입' 역시 그러하다. 그가 없더라도 <지식채널e>가 추구하는 지향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껏 그래 왔듯 300초짜리 프로그램으로 300초 이상의 감동과 깨달음이 있는 지식을 전해 주길 바란다. 우리가 학교를 졸업했더라도 끊임없이 EBS를 찾고 배워나갈 수 있도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