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16일 조선일보의 <파이낸셜타임즈> 비판 사설에 대한 논평
등록 2013.09.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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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무쌍’한 조선일보의 외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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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조선일보가 ‘한국 경제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외국 언론들의 보도를 거세게 비난하고 나섰다.
<‘침몰하는 한국’이라니… 외국 언론 너무 나간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먼저 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14일 기사 <침몰하는 느낌(Sinking feeling)>을 문제 삼았다.

사설은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 은행들은 미국, 영국 은행들처럼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꼼짝 못할 처지가 됐고, 내년 6월 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단기 외채가 1750억 달러에 이르고 있어 정책 입안자들이 한밤중에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관리 능력을 믿지 않고 있어 상황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썼다며 “이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대부분 한국에 다시 외환위기가 임박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조선일보는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는 맞는 내용이라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고, 과장됐거나 사실과 달라 세계를 향해 바로잡아야 할 부분도 있다”고 전제한 후 “그러나 이 기사에는 한국 은행들의 예금액 대비 대출액 비율 103%를 124%로 부풀려 보도하거나 한국 기업의 부채비율이 1997년 423%에서 지금은 93%로 떨어진 사실 등은 언급하지 않는 등 균형을 잃은 면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조선회사들이 선박 건조대금으로 받게 될 달러를 은행에 미리 파는 선물환 거래는 장부상으론 단기외채로 잡히지만 실제로는 상환부담이 없는 돈이다. 이런 돈 600억~700억 달러가 외채로 잡혀있는데도 그냥 넘어가 버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아가 “파이낸셜타임스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와 관련해 ‘분석기사’(Analysis) 면에 국가 부도 상태인 아이슬란드를 다룬 것을 빼면 특정 국가만을 다룬 경우는 한국밖에 없다”며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을 ‘표적보도’한 것처럼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파이낸셜타임즈 외에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9일 보도, 미국 다우존스 통신사 8일 보도, 인터내셜드해럴드 트리뷴 8일 보도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보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정부가 외국 언론 보도에 대해 늘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평상시 우리 경제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 왔던 데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잇따른 외국 언론들의 한국 경제 위기 보도가 ‘정부의 홍보 부족 탓’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지금 세계경제 위기의 근인은 신뢰의 결핍”이라며 “정부는 한국 경제의 신뢰가 이런 식으로 닳아져 가는 걸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정부의 홍보 강화를 주문했다.

한편 경제섹션 <조선경제> B3면에서는 <FT지의 지나친 한국 걱정… “영국, 그대 코가 석자요”>라는 조의준 기자의 기사를 실었다. 기자는 “제가 알기로는 영국의 외채도 만만치 않습니다”, “영국은 정부와 국민도 모두 빚더미에 앉아 있습니다”, “가장 악성인 것은 영국의 집값 하락 속도가 유럽에서도 가장 빠른 편이랍니다”라며 파이낸셜타임즈의 보도를 되갚아 주겠다는 듯 영국의 경제상황이 어렵다고 썼다.
또 “우리가 ‘가라앉는 느낌’이라면 영국은 ‘가라앉은 느낌’(feeling sicked)라고 할까요?”라고 비아냥대면서 “FT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각종 지표를 과장되게 해석해 다른 나라(한국) 경제를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처럼 자주 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라고 파이낸셜타임스 14일자 보도를 비판했다.

외국 언론들이 우리 경제를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데에 기분 좋을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외신의 부정적인 한국 경제 전망을 무작정 불신했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바로 1997년 IMF 구제금융 신청 직전의 상황에서다.

당시에도 조선일보 등은 “경제위기 없다”는 재경원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으나 결국 우리는 IMF를 맞았다. 외국 언론들의 한국 경제 전망이 비록 불쾌하더라도 그 내용을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늘 조선일보의 사설은 정부의 보도자료에 의존해 ‘외국 언론 너무 한다’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일보의 파이낸셜타임즈 비판, 얼마나 타당한가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한국 은행들의 예금액 대비 대출액 비율 103%를 124%로 부풀려 보도했다”, “조선회사들이 선박 건조대금으로 받게 될 달러를 은행에 미리 파는 선물환 거래는 장부상으론 단기외채로 잡히지만 실제로는 상환부담이 없는 돈이다. 이런 돈 600억~700억 달러가 외채로 잡혀있는데도 그냥 넘어가 버렸다”라고 파이낸셜타임스를 반박한 것은 14일자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공동 보도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예금액 대비 대출액 비율(예대율)은 정부나 조선일보 주장처럼 반드시 양도성예금증서(CD)를 포함해서 계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성 수신이 증가하는 수신구조의 변화를 함께 보기 위해 현지 화폐 대출금을 현지 화폐 예수금으로 나누어 구한 예대율을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CD를 포함하지 않고 예대율을 계산하면 파이낸셜타임스의 “한국 은행들의 예대율 124%”란 보도는 사실 왜곡이라 할 수 없다.

설사 정부와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반드시 CD를 포함해 예대율을 계산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103%의 예대율은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한국조세연구원 ‘조세용어사전’의 ‘오버론’(over loan, 대출과다) 항목에 따르면 은행의 적정 예대율은 90~95% 수준이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 103%는 적정 예대율을 크게 초과한 수치이다. 상식적으로 은행이 가진 돈보다 빌려준 돈이 더 많은 데 이를 정상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이와 관련해 경제전문지 머니투데이 이새누리 기자가 쓴 16일자 <[기자수첩] 리스크 관리 실패한 은행들>이라는 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기사는 “은행의 적정 예대율은 80%대라고 할 수 있다”며 “(은행 예대율 계산에) 논란의 여지는 있다. 양도성예금증서(CD)를 포함하느냐 마느냐다. CD를 포함하면 예대율은 100% 초반으로 내려가지만 포함하지 않으면 124%로 올라간다”라고 보도했다.

또 “예대율이 높든 낮든 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있다. 어쨌든 100% 넘는 예대율은 건전성을 자신할 수만은 없는 수준이라는 점”이라며 “정부와 금융당국은 연일 시중은행들 변호에 전력을 쏟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 소리 없는 메아리보다 은행들의 리스크관리가 현재로선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은행의 예대율이 급등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해 왔다. 예를 들어 한국금융연구원 노형식 연구위원은 <주간 금융 브리프> 17권 26호(2008. 6.28~7.4)에 기고한 <최근 일반은행 예대율 추이와 향후 과제>에서 최근의 은행 예대율 증가를 두고 “경제 내 생산활동 증가에 따른 대출성장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으로의 자금유입 등으로 은행권이 자금난을 겪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노 연구위원은 CD를 포함하지 않은 우리나라 일반은행의 예대율 상승속도가 2004년 말 이후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중국, 브라질, 스페인, 한국,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체코 등 비교대상 12개 국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대율 상승이 시장성 수신에 의한 대출재원 조달을 의미하는 경우 수익성 약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외부 충격에의 취약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자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조선일보의 ‘용감한 사설’

한편 조선일보는 조선회사들의 선물환 거래 600~700억 달러가 “장부상으론 단기외채로 잡히지만 실제로는 상환부담이 없는 돈”이라며 파이낸셜타임스가 이를 무시한 채 “(한국이) 내년 6월 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단기 외채가 1750억 달러에 이르고 있어 정책 입안자들이 한밤중에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고 보도한 것으로 몰아 붙였는데, 이는 기사 원문을 제대로 보았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비난이다.

이 부분에 해당하는 파이낸셜타임스 14일 보도 기사 원문은 “South Korea has some $175bn in
external short-term debt that has to be rolled over by the end of next June. Of this, perhaps $80bn relates to foreign banks’ on-shore branches and can be deducted (on the assumption that the banks’ head offices will make dollars available). It is the balance that has Korean policymakers sweating at night - and which lies behind the pleas for access to dollar credit lines.”이다.

기사 원문은 “한국은 내년 6월 이전 만기가 도래하는 1750억 달러의 단기 외채를 갖고 있다. 이 중 아마 800억 달러는 외국 은행의 한국 내 지점과 연관된 것으로 상계될 수 있다(그 은행들의 본점들이 달러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 차액(950억달러)이 한국의 정책입안가들을 한밤중에 땀흘리게 하는 것이고 달러 크레딧 라인에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배경이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파이낸셜타임스는 '내년 6월 이전 만기가 도래하는 외채 1750억 달러가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을 한 밤중에 식은 땀 흘리게 만들고 있다'고 쓰지 않았다. 1750억 달러 중 외국 은행의 한국 내 지점과 연관되어 상계되는 800억 달러를 제외한 950억 달러의 단기외채가 만기 연장이 되지 않아 외환보유고로 방어하기 힘들 경우에 대한 지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파이낸셜타임스가 마치 단기 외채 규모를 1750억 달러로 부풀린 양 몰아 붙이면서 조선업계의 선물환 거래 규모를 들먹인 것이다.

더구나 조선업계의 선물환은 최근 들어 환차손으로 은행권에 잘 공급되지도 않는 상태이다. 16일 머니투데이 기사 <‘선물환 암초’에 흔들리는 조선업계... 환헤지의 역습, 이익내고도 자본잠식>을 보자. 조선업계들이 환율폭등으로 “환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선물환에 가입했는데 일시적으로 자본이 줄고 그만큼 부채가 증가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올해 초까지 계속된 원화 강세로 은행권에 선물환을 공격적으로 매도했던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조선업체들로부터 은행으로 달러 공급이 줄어들면서 이것이 외환 시장의 달러 부족으로 연결되고, 그 때문에 다시 환율이 폭등하면서 조선업계의 선물환 매도 평가손이 더욱 확대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한국 은행들의 유동성 확대와 외환시장 안정에 조선업계가 보유한 6~700억달러의 선물환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허둥지둥 선물환 거래로 피해를 본 조선업계 구제책 마련에 나선 상태가 아닌가.

오늘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의 상황은 가히 충격적이다. 원-달러 환율은 1997년 12월 31일 이후 최대 폭인 133.5원이 폭등해 1373원으로 마감했다. 주가도 코스피지수가 126.50P(9.44%) 폭락한 1,213.78으로 거래를 종료, 한국증시 사상 최대의 폭락을 기록했다.

우리도 파이낸셜타임즈의 한국 경제 전망이 빗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런 외신 보도를 꼼꼼히 살펴서 다시 한번 우리 경제 상황을 진단해 보고 필요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자료를 그대로 베껴 쓰며 무조건 “해외 언론들 너무한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이성적인 태도가 아니다. 지금은 이명박 정권을 감싸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불안한 경제 상황에서 한 가지라도 ‘약’이 될 수 있는 처방이 있는지 찾고, 이를 실행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그럴 역량이 없다면 이미 우리가 제안했듯 제발 한국 경제에서 손을 좀 떼 주면 좋겠다.
조선일보의 사설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끝>



2008년 10월 16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