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조합원 사망’ 관련 신문·방송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
등록 2013.08.2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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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죽음’ 끝까지 외면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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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6일 ‘포스코 공권력 투입 규탄집회’에 참가한 포항건설 노조원 하중근 씨가 경찰 진압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고 뇌사 상태에 빠진지 17일만인 1일 새벽 숨을 거뒀다.


우리 단체는 지난 달 29일 논평을 통해 “수구신문들과 방송들이 하 씨의 부상을 축소하거나 아예 보도조차 않는 것은 언론으로서의 기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언론이 적극적으로 하중근 씨 문제를 다뤄줄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8월 1일 하 씨가 사망한 후에도 언론들은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이거나 이를 외면해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포항 건설노조 파업당시 공권력이 무력하다고 비난하며 강경진압을 부추겼던 수구신문들은 하 씨의 죽음에 대해 입을 닫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관련 기사를 싣지 않았고, 동아일보는 10면에 <지난달 16일 시위 중 부상 포항 건설노조원 끝내 숨져>라는 짧은 스트레이트 기사를 싣는 데 그쳤다.


포항 건설노조 파업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자세히 보도 해왔던 경향신문은 하 씨의 죽음을 보도했으나 하 씨의 사인을 둘러싼 공방을 전하는 정도였다.


경향신문은 2일 11면 기사 <숨진 건설노조원 사인 공방>에서 경찰이 부검 실시와 관련자 진술 확보 등 사인규명을 위해 수사에 착수했고, 하 조합원이 경찰의 방패에 맞았다는 민노총과 건설노조의 주장을 실었다.
다만 경향신문은 1일 사설 <노동자를 뇌사에 빠뜨린 경찰의 강경진압>을 통해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판하고 규범을 엄수할 것을 주장했다.


한겨레는 2일 10면 <“경찰 방패에 찍혔다?” 사안 공방>에서 하 씨의 사인에 대해 “경찰이 방패로 찍어 머리를 다치게 해 사망했다”는 민주노총·건설노조의 견해와 “증거가 없어 부검을 해야 한다”는 경찰 측 입장을 소개했다.
또 같은 날 사설 <건설 노동자의 한맺힌 죽음>에서 “하 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이번 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경찰의 잘못이 드러나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근본적인 대안은 “시위대의 결사적인 저항과 정부의 강경대응이라는 악순환을 끊는 것”이라며 정부가 먼저 노동자들을 자극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인 문제를 배제한 채 대치 상황만을 중계식으로 나열하거나 피해규모만을 부각하며 파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온 방송보도도 하 씨의 사망을 외면하거나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였다.


MBC의 경우 하 씨의 죽음이나 사인과 관련한 보도를 다루지 않아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줬고, SBS는 단신으로 처리했다.
KBS는 1일 <과잉진압 논란>에서 “과잉진압으로 하 씨가 사망했다”는 노조측의 입장과 “정확한 사망원인이 나오는대로 책임유무를 가리겠다”는 경찰측의 입장을 소개하고 하 씨의 사망으로 건설 노사간 교섭이 중단되고 파장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사안인 진상규명과 책임자 문책, 향후 대책 등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에서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민변 등으로 꾸려진 자체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하 씨의 사망원인인 뇌손상이 경찰의 방패로 머리 우측 뒷부분을 가격 당하여, 이로 인한 충격으로 뇌 우측 ‘대측손상’을 입게 되면서 출혈성 뇌좌상과 뇌부종으로 뇌사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과 노조측 인사가 포함된 진상조사단의 조사가 끝나야 정확한 진실이 규명되겠지만, 하 씨가 부상당할 당시 다른 노조원들도 머리와 얼굴이 방패에 찍혀 15명이 부상당했다는 점을 미뤄볼 때 또 한번 ‘공권력에 의한 죽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위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찰의 강경진압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경한 대응만을 부추기는 수구언론의 태도는 최소한의 인륜조차 저버린 행태다.


또 노조의 폭력성만을 부각시켜 파업의 본질을 흐리면서 경찰의 폭력성에는 눈을 감는 방송보도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중근 씨가 속했던 포항 건설노조의 요구는 불법하도급 철폐, 주5일제 근무 등이었다. 하지만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이면서 하청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다단계 하청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적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해결하기 위해 생존권적인 요구를 내걸었지만, 협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을 때 포항 건설노조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싸움을 선택하는 것은 열려진 논의구조가 노사관계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없기 때문이다. 포스코를 비롯한 대기업과 하청업계와의 관계, 그릇된 노조관, 사회적 논의구조 부재 등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불행한 사건은 반복될 우려가 크다.


지금까지 언론들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거나 사안을 왜곡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구조와 진압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못하고 물리적 강경대응이라는 잘못된 문제해결방식을 부추기거나 묵인한다면, ‘제2의 제3의 하중근씨’가 나올 수밖에 없다. <끝>

 


2006년 8월 3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