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국민중투쟁단의 WTO 각료회의 저지 저시 및 ‘무더기 연행’ 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12.20)
등록 2013.08.2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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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장면 부각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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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부터 홍콩에서 열린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를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던 ‘한국민중투쟁단’ 1000명이 홍콩경찰에 의해 18일 새벽 무더기로 연행됐다. 이 가운데 11명은 즉결재판에 기소당했고 나머지는 석방됐다. 이번 일을 두고 일부 신문들은 마치 한국시위대가 ‘나라망신시킨 폭도’인양 매도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안’에서 새던 바가지가 ‘바깥’에서도 샌 꼴”이라는 비아냥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에 비해 방송들은 시위대의 연행사실을 중심으로 보도하며 홍콩경찰에 의한 인권침해 논란도 다루는 등 일부 신문과는 차별적인 보도태도를 보였으나, ‘폭력시위’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보다 시위대와 경찰의 격렬한 충돌모습만 부각하는 등 아쉬움을 남겼다.


1000명이 한꺼번에 연행된 이번 사태는 한국민중투쟁단이 각료회의 폐막을 앞둔 마지막 협상을 저지하기 위해 컨벤션센터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빚은 후 발생했다. 13일 WTO 각료회의 개막에 맞춰 홍콩에서 ‘WTO 반대’, ‘DDA 협상 저지’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인 한국투쟁단은 그 동안 바닷물에 뛰어드는 해상시위, 삼보일배 시위 등으로 홍콩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폐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강대국들이 ‘협상타결’ 압박수위를 높여 가는 가운데, 절박함을 느낀 시위대가 강도 높은 투쟁에 나섰고, 홍콩경찰도 그 이전의 방어적 대응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진압에 나서면서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맨몸으로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 했던 시위대에게 경찰이 곤봉으로 머리를 내려치고 최루액을 살포하는 등 강경하게 진압에 나섰고, 이 와중에 시위대가 근처 공사장에서 구해온 각목과 가로수 지지대 등으로 대응하자 홍콩경찰은 홍콩 시위 역사상 30년 만에 처음으로 최루탄을 발사하고 고무총탄까지 쏴 시위는 더욱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에 대해 방송들은 18일 “시위대가 회의장 입구까지 접근하자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강제 진압에 들어갔다”(KBS), “시위 현장으로 접근하는 모든 길을 이처럼 경찰이 막고 있어 출입 자체가 불가능…최루탄과 고무총까지 나왔고 농민 60여 명이 다쳤다”(MBC), “우리 시위대는 경찰의 과잉 진압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지만, 성공적인 시위였다고 평가했다”(SBS)고 보도하는 등 기자의 리포트에서 홍콩경찰의 강경한 대응을 지적했다. 하지만 화면에서는 경찰을 향해 각목을 휘두르고, 바리케이트로 경찰저지선을 밀어붙이는 시위대의 모습이 자주 등장해 시위대의 ‘과격함’을 사태의 원인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었다.
한편 SBS는 17일 보도에서 “한국 시위대는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면서도 삼보일배 행진과 풍물패 공연 등 강온양면 전략을 보여줌으로써 현지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고 전하며 “한국농민들 얘기에 공감한다. 그들은 매우 진실되고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기 때문”이라는 홍콩시민의 인터뷰를 소개하는 등 시청자들이 시위양상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내용을 차분하게 보도했지만, 무더기 연행이 발생한 18일에는 “홍콩 경찰은 이번 시위를 묵과할 경우 홍콩 시위문화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아래 강경 처리방침을 밝혔다”며 “농민들의 생각은 존중하지만, 위법행위에는 찬성할 수가 없다”는 홍콩시민 인터뷰를 소개했다.


일부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홍콩경찰의 연행자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에 대해서 방송들은 18일 “특히 오늘 새벽 연행 과정에서 옷이 벗겨지고 뺨을 맞는 등 인권이 침해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MBC), “홍콩경찰은 연행과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부 연행자들은 인권 침해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KBS), “연행 과정에서 홍콩경찰이 시위대를 구타했다는 인권침해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SBS)며 즉각 보도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실상을 전하기에는 부족했다.
다행이 KBS가 19일 <“인권침해 있었다”>에서 “석방된 시위자들은 홍콩 경찰이 자신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며 상세히 보도했다. KBS는 “심지어 화장실조차 수갑을 찬 채 이용했다며 모멸감을 표현”, “우리나라 시위대는 홍콩 당국에 서면으로 인권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 “천얏큔 홍콩 천주교 주교는…지난 홍콩 경찰 당국을 비난”, “홍콩당국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서면 접수된 인권침해 주장에 대해 독립기구를 통한 공식 조사에 착수” 등 인권침해 논란과 관련한 내용을 전했고,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증언도 소개했다.
SBS도 “여성시위대는 경찰이 연행과 수사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며 피해자의 증언을 소개하고 우리 정부의 문제제기 방침을 전했다. 이에 비해 MBC는 “연행 과정에서 인권유린을 당했다는 주장도 제기돼 홍콩 경찰이 진상 파악에 나섰고 우리 정부도 이를 홍콩 당국에 요청할 계획”이라는 정도에 그쳤다.


외국에서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이 1000명이나 무더기로 연행을 당하고, 그 가운데 11명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예사 사태가 아니다. 물론 다른 나라의 법을 어긴 점에 대해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하겠지만 외교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시위과정에서 발생한 홍콩경찰의 폭력적인 진압과 연행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별다른 책임을 묻지 않고 시위대만을 ‘폭력사태’의 주범인 것처럼 몰아가는 홍콩경찰의 행태와 국내 수구신문들의 태도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홍콩의 언론매체 ‘명보’에 의하면 현지의 여론이 ‘한국 농민들의 시위를 받아들일 수 있다’가 57%이며, 인터넷의 찬반양론도 뜨거워 우리나라의 일부 신문들이 전하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 도처의 반세계화 시위현장에서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격렬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9년 WTO 각료회의가 열렸던 미국 시애틀에서의 시위다. 2년 전 멕시코 칸쿤에서는 우리나라의 농민 이경해씨가 자결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미국과 WTO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하고 절박하다는 것이다. 이번 홍콩시위에 나선 한국민중투쟁단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들이 농민과 노동자들의 절박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의 격렬함에만 초점을 맞춘 채 ‘글로벌 스탠다드’를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이들이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방송들만은 이번 사태를 정확하게 보도하고 홍콩경찰에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촉구해주기 바란다. 아울러 이들이 왜 홍콩까지 가서 시위를 벌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알리는 데에도 적극 노력해주길 바란다.(끝)

 


2005년 12월 20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